일상생활과 경제활동 모두 전산화가 이뤄진 세상이지만, 태생이 수리적인 통계지표에 개인의 주관적 성향을 담기 위한 노력도 이뤄지고 있다. <픽사베이>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UN 행복지수 56위, OECD 더 나은 삶 지수 5.9점(평균 6.5점). ‘행복지수’나 ‘삶의 질 지수’는 뉴스와 인터넷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지표들이다. 한국의 순위에 다소 불만족스러운 사람도 많겠지만, 이의를 제기하고 싶다면 먼저 한국이 왜·어떤 항목들에서 낮은 평가를 받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들은 무슨 이유로 내가 속한 사회가 행복하지 않다고 재단했을까. 주관을 객관화하기 위해선 그만한 근거가 필요하다.

◇ 평가항목, 그냥 정해지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 수십 개 국가와 단체에서 수백여 개의 행복지수를 만들어왔지만, 개별지수 간 평가항목은 제각기 다르다. 일반적인 지표들이 무시하는 ‘언론비판지수’나 ‘소음지수’를 평가항목으로 채택한 지표가 있는가 하면, 보건 분야를 평가하기 위해 영아사망률과 5세 미만 유아사망률을 모두 사용한 지표도 있다. 십여 년 전 한국에서 만들어진 한 행복지수에는 ‘자신의 신체적 외모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정도’라는 척도도 있다.

‘고유값(eigen value)’은 지표의 평가항목을 선정하는데 자주 쓰이는 개념이다. 연구자들은 수많은 평가항목 후보군 중 비교적 덜 중요한 변수를 제거하거나, 비슷한 의미를 가지는 변수들 중 하나를 골라내기 위해 요인분석을 수행한다. 개별변수가 설명하는 변량의 크기를 나타내는 고윳값은 이 요인분석을 수행하기 위해 자주 쓰이는 수치다. 당연히 값이 클수록 더 큰 영향력을 가지며, 일반적으로 평가지표를 선택하기 위해선 고윳값이 1을 넘어야 한다. 물론 연구자에 따라 보다 느슨한 기준을 적용하는 경우도 있다.

더 편리한 방법을 사용하는 지표도 있다. 소비자가 체감하는 물가변동률을 측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생활물가지수는 소비자의 구매내역 자료를 이용한다. 총 지출액의 1만분의 1 이상을 차지한 항목이 생활물가지수의 대상이 된다. 평가항목 후보군들이 이미 수치화됐기 때문에 가능한 방법이다. 소고기와 돼지고기 등 일반적으로 같은 기능을 맡는 상품들도 충분한 소비량이 뒷받침됐다고 입증됐기 때문에 함께 생활물가 평가항목에 포함될 수 있다.

◇ 원활한 비교 위해선 기준점이 필요

좌우가 대칭이고 분산이 1인 표준정규분포는 서로다른 변수들을 통합하기 위해 자주 사용된다. <픽사베이>

정보를 수집했다면 서로 다른 평가항목들의 길이를 맞추는 작업이 필요하다. 제각기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 정보들을 표준정규분포에 맞추는 작업이다. 표준정규분포는 그 모양이 평균을 중심으로 대칭이고, 평균과 표준편차가 일정할 뿐 아니라 중요 통계이론들의 핵심이기 때문에 거의 모든 표본조사자들에게 애용되고 있다.

충분한 양의 자료가 확보됐다면, 대수의 법칙에 따라 원 자료가 정규분포를 따른다고 가정할 수 있다. 이 문제가 해결됐다면 표준정규분포로 다시 변환하는 것 또한 어렵지 않다. 개별요소들에서 전체평균을 빼고, 집단의 변동성을 나타내는 표준편차로 나눠주면 평균이 0, 표준편차가 1인 정규분포가 탄생한다. 음수를 사용하기 싫다면 100을 더해 기준점 100을 중심으로 지표가 오르내리게 만들면 된다.

한편 기준점을 미리 정해놓는 방법도 있다. 홍콩중문대학(CUHK)이 2002년부터 제작·발표하는 삶의 질 지수에서는 21개 평가항목의 2002년 값이 모두 4.76이다. 총 합을 100으로 고정시켜두기 위해서다. 2002년 이후로 발표되는 모든 지표는 전년 대비 변화율을 계산해 4.76을 중심으로 상방·하방으로 움직인다.

여기에는 주의할 점이 있다. 평가항목으로 GDP와 물가 등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레 볼륨이 높아지는 수치를 사용할 경우 홍콩 시민들이 정말 예전보다 행복해진건지, 단순히 경제성장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건지 판가름하기가 힘들다. 제작진은 ‘GDP 대비 교육예산의 비중’이나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실질임금 등의 비율지표를 사용함으로서 이 위험을 해소했다. 앞서 예를 든 생활물가지수의 경우 5년에 한 번씩 품목이 바뀔 때마다 기준치를 100으로 재설정한다.

기준점으로 삼은 년도가 역사적 분기점에 해당해도 곤란하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IMF 사태가 터졌던 1997년을 중심으로 행복지표를 만들 경우 2000년대 대부분의 시간 동안 한국은 매우 행복한 나라라는 결과가 도출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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