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키퍼의 후반 추가시간 동점골로 역사적인 1부리그 첫 승점을 기록했던 베네벤토. <뉴시스/AP>

[시사위크=김선규 기자] 팀마다 8~9경기를 남겨둔 현재, 이탈리아 세리에A 꼴찌는 베네벤토 칼초다. 27경기를 소화하며 3승 1무 23패 승점 10점을 기록하고 있다. 19위 헬라스 베로나와의 차이도 12점이나 난다. 기적이 아니라면 세리에A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 하지만 이들은 어딘가 모르게 기적을 꿈꾸게 한다.

낯선 이름의 이 팀은 1929년 창단해 올 시즌 처음으로 세리에A 무대를 밟았다. 2부리그를 평정하고 1부리그에 오른 ‘멋진 승격’은 아니었다. 지난 시즌 2부리그 5위에 이름을 올린 뒤 험난한 플레이오프를 통과해 승격 티켓을 거머쥐었다.

1부리그 무대의 벽은 역시 높았다. 현재 성적부터가 이를 말해준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무척이나 처절했음을 알 수 있다. 베네벤토는 자신들의 첫 1부리그 시즌에서 개막 후 14연패를 당했다. 14경기에서 기록한 골도 6골에 불과했다. 잉글랜드의 맨체스터 시티와 스페인의 바르셀로나가 무패행진을 달리는 동안, 베네벤토는 연패행진을 달려야했다. 1930-31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기록했던 개막 이후 최다연패(12연패)를 넘어선 베네벤토다.

하지만 베네벤토는 그렇게 무너지지 않았다. 결정적인 순간 극적인 역사를 쓰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전통의 강호 AC밀란을 만나 첫 1부리그 승점을 따낸 이야기부터 엄청나다. 홈에서 열린 15라운드, 1-2로 뒤지던 베네벤토는 후반 추가시간 막판 세트피스 상황에서 공격에 가담한 골키퍼가 헤딩 득점에 성공하며 승점 1점을 따냈다. 베네벤토 선수들과 홈 팬들은 마치 우승이라도 한 듯 기뻐했다.

1부리그 첫 승의 기쁨도 해를 넘기기 전 찾아왔다. 18라운드에서 키에보를 홈으로 불러들여 1-0 승리를 거둔 것이다. 자신감을 되찾기 시작한 베네벤토는 새해 첫 경기에서 삼프도리아를 3-2로 꺾고 1부리그 첫 연승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물론 베네벤토의 성적과 순위는 형편없다. 규모도 보잘 것 없다. 선수 이적료가 수천억원에 달하고, 수만 명을 수용하는 초대형 경기장이 즐비한 요즘 유럽축구 흐름과 그리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의 행보는 오히려 스포츠의 본질을 떠올리게 하며 뜨거운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베네벤토의 좌석점유율은 리그 성적과 정반대인 1위다. 1만2,000여석의 아주 작은 구장이지만, 경기가 있는 날이면 팬들의 열기로 가득 찬다. 팬들의 애정과 열정은 그 어느 팀도 부럽지 않다. 베네벤토가 연패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이들에게 자극제가 된 것은 팬들이었다. 팬들은 자칫 1부리그의 높은 벽에 좌절할 수 있는 선수들을 강하게 독려했다. 이러한 팬들의 채찍질은 첫 승점과 첫 승리, 첫 연승으로 이어졌다.

지난 2월엔 아스널, 맨시티 등 빅클럽에서 활약했던 바카리 사냐가 베네벤토에 전격 합류했다. 여전히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도 마땅한 소속팀을 찾지 못하던 사냐를 움직인 것은 베네벤토의 간절함과 진심이었다.

베네벤토가 올 시즌 꼴찌와 강등을 피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 하지만 후반 추가시간 최후의 보루인 골키퍼가 동점골을 기록했듯, 베네벤토가 또 다른 기적을 쓸지 말란 법은 없다. 얼마 남지 않은 시즌, 베네벤토에게 눈을 뗄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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