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벌어진 기이한 장면. < SBS스포츠 중계방송 화면 캡처>

[시사위크=김선규 기자] 지난 10일, 두산 베어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프로야구 경기가 열린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장면이 두 가지나 포착됐다.

먼저, 베테랑 포수 양의지가 투수의 평범한 연습투구를 놓쳤다. 양의지를 통과한 공은 뒤에 서 있던 심판으로 향했고, 심판은 가까스로 공을 피했다. 배트에 스친 파울볼이나 폭투가 심판을 때리는 일은 간혹 있지만, 이처럼 평범한 공을 포수가 놓쳐 심판에게 향하는 일은 드물다.

이어진 장면은 더욱 눈길을 끌었다. 두산 베어스 김태형 감독이 덕아웃에서 양의지를 불러 세웠다. 베테랑 양의지는 두 손을 공손히 뒤로 모은 ‘열중 쉬어’ 자세로 김태형 감독의 말을 들었다. 정확히 어떤 말이 오갔는지는 알 수 없으나, 무언가 다그치는 모습이었다. 신인급 선수라면 모르겠지만, 국내 최고의 포수로 불리는 양의지였기에 더 놀라운 장면이었다.

이 두 장면을 이해하기 위해선 앞선 장면을 살펴봐야 한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두산 베어스가 6대0으로 앞서고 있던 7회초 1사, 타석에 들어선 양의지는 상대 투수 임현준의 두 번째 공이 스트라이크로 선언되자 불만을 표시했다. 심판에게 직접적으로 항의를 하거나, 배트를 집어던지는 등의 과격한 행동은 없었지만 그의 표정은 불만으로 가득했고, 이어진 헛스윙에도 그런 감정이 담긴 듯한 모습이었다.

양의지의 투구 놓침과 김태형 감독의 다그침은 그 직후 공수교대 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즉,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은 양의지가 일부러 공을 놓쳤고, 이 같은 행동을 김태형 감독이 다그친 것으로 해석된다.

양의지는 경기 이후 공을 일부러 놓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순간적으로 공이 보이지 않아 벌어진 일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여러 정황상 고의성이 짙다는 지적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양의지가 국내 최고의 포수인 점, 투수의 공이 평범했던 점, 판정 불만을 제기한 직후였던 점, 그리고 무엇보다 포수 출신인 김태형 감독이 이를 지적했다는 점이 그렇다. 정종수 심판 역시 볼이 빠진 뒤 다소 황당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진실은 양의지만 알 것이다.

이 같은 사건은 최근 불거지고 있는 스트라이크-볼 판정 시비의 연장선상에 있다.

프로야구는 지난 수년간 오심논란으로 몸살을 앓았다. 너무나도 명백한 오심이 이어지고, 승부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면서 논란이 커졌다. 급기야 오심에 화가 난 관중이 경기장에 난입해 심판을 폭행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결국 이 같은 논란은 비디오판독 제도의 도입 및 확대로 이어졌고, 덕분에 오심 시비가 크게 줄어든 상황이다.

하지만 스트라이크-볼 판정 논란은 시즌 초반부터 계속되고 있다. 양의지의 같은 팀 동료인 오재원도 얼마 전 심판 판정에 항의하다 퇴장당한 바 있다. 롯데 자이언츠의 베테랑 채태인은 배트를 던지며 강하게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흔히 스트라이크-볼 판정은 심판 고유의 권한이라고 말한다. 아웃-세이프 판정과 달리 비디오판독이 적용되지 않을 뿐 아니라, 기본적으로 심판의 주관이 작용되는 판정이다. 실제 우리나라 뿐 아니라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심판에 따라 스트라이크 존이 조금씩 다르다. 몸쪽 공을 더 많이 인정해주는 심판이 있는가하면, 낮은 공에 인색한 심판도 있다. 이러한 차이가 충분히 인정되는데, 다만 일관성이 중요하다는 게 통념이다.

그런데 올 시즌을 앞두고 KBO는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측에 ‘경기 중 선수단 행동지침’을 전달했다. 여기엔 ‘경기 중 심판위원에 질의 금지→감독만이 질의 및 어필 가능하며 선수가 어필할 경우 규칙에 의거하여 퇴장 조치’라는 항목도 들어가 있다. 이는 오재원이 그다지 격하게 항의하지 않았음에도 퇴장을 당한 근거로 적용됐다.

선수협은 지난달 개최한 이사회에서 행동지침을 검토한 결과, ‘질의 금지’ 항목은 선수들의 표현의 자유를 너무 심하게 억압한다는데 의견이 모였다고 밝혔다. 또한 심판의 판정이 존중받아야 하지만, 행동지침의 의사결정 방식 및 근거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기 이해당사자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행동지침이 결정됐고, 야구규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수들의 이러한 지적엔 충분히 일리가 있다. KBO와 심판위원회가 선수들과의 소통을 조금 더 중요시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일방적으로 만들어져 통보된 행동지침이 오히려 선수와 심판 사이의 갈등과 반목만 부추기는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진정한 존중은 일방적인 강요가 아닌 소통을 통해 나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의지의 이번 행동은 진한 씁쓸함이 남는다. 양의지는 행동지침에 어긋나는 ‘질의’를 하지 않았다. 대신 ‘교묘한 복수’의 향기가 짙은 행동을 남겼다. 양의지는 아니라고 밝혔으나, 만약 고의성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이는 스포츠 정신을 완전히 잃은 것이다. 정말로 고의성이 없었다하더라도, 양의지의 행동은 선수와 심판 사이의 불신을 키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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