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남녀 임금차별, 이대로 괜찮나

똑같은 일을 하는데 받는 임금은 다르다. 성별로 따지면 ‘여성’이 그 피해자다. 같은 일을 하고도 적은 임금을 받는다는 얘기다. 임금을 주는 이도 딱히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성별에 따른 임금격차는 법으로도 금지돼 있지만 작동이 멈춘지 오래다. ‘불평등’이 당연한 듯 똬리를 튼 이유다.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자행되는 차별. 뭔가 잘못됐다. 대한민국 남녀임금차별, 이대로는 안된다. [편집자주]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성별에 따른 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5년 전부터 본격화 됐다. 한국YWCA를 비롯한 행동하는여성연대, 미래여성네트워크, 역사여성미래, 한국청년유권자연맹 등 여성·시민사회단체들은 2014년 ‘동일임금의 날’ 제정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시작으로 남녀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실질적 행동을 모색해왔다. 이들 단체는 ‘동일임금의 날’ 제정이 실질적인 여성 권한 확대와 남녀평등 사회로 가기 위한 다양한 조치 가운데 가장 실질적인 방안이 될 중요한 시도라고 보고 있다.

◇ ‘동일노동 동일임금’과 5월 23일

“한국 여성이 남성과 같은 임금을 받기 위해서는 1년 중 5개월 23일을 더 일해야 한다.”

한국YWCA를 비롯한 여성·시민단체가 5월 23일을 ‘동일임금의 날’ 기념일로 정한 이유다.

‘동일임금의 날’은 나아지지 않은 남녀 임금 격차에 대한 문제의식을 확산 시키고, 공식적이고 신뢰할만한 통계자료를 수집·연구해 대안을 모색하자는 취지다. 여성·시민사회단체들은 ‘동일임금의 날’ 제정 법안을 통해 차별을 당연시 하는 우리 사회 관행들을 법과 제도로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지난 3월 노동존중 정신의 기록화, 전 국민의 일할 권리와 노동3권 보장, 적정임금 및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노동자의 경영참여 및 이익균점권 복원 등의 내용을 담은 '공동개헌요구안'을 발표했다. <뉴시스>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풀어쓰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이다. 즉 같은 가치를 지닌 노동에 대해서는 성별 연령 신분 등에 따라 차별하지 말고 같은 임금을 줘야 한다는 얘기다. 과거엔 동일노동을 ‘똑같은 노동(same work)’라고 좁게 규정했지만 최근에는 대부분 ‘동일가치노동( equal work)’로 범위가 넓어졌다.

1951년에는 국제노동기구가(ILO)가 제100호 조약(The Equal Remuneration Convention)을 통해 동일가치 노동에 대한 남녀 동일보수에 대한 원칙을 세웠다. 영국에서는 이미 19세기 말에 남녀 동일임금의 요구라는 형태로 노동조합에서 거론되었고, 1919년에는 국제노동헌장에서 ‘남녀의 동일한 가치를 가지는 노동에 대하여는 동일한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한국은 1989년에 도입됐다. 당시 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에서 처음으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법률에 명기했다. 이후 1997년 12월 해당 조약에 비준했다.

특히 2013년 강창희 전 국회의장이 5월 넷째주 월요일을 ‘동일임금의 날’로 하자는 내용이 포함 법안을 발의하면서 사회적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러나 이 법은 19대 국회에서 임기 만료로 폐기 됐다. 제20대 국회에서는 2016년 김명연 자유한국당 의원에 이어 지난해 신용현 바른미래당 의원이 관련법을 대표 발의했지만 논의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 ‘동일임금의 날’, 성별임금격차 축소하는 가장 중요한 제도적 기반

OECD 성별임금격차에 따르면 대한민국 여성과 남성의 임금 차이는 36.7%다. 대한민국 여성은 연간 근로일 기준 95일을 더 일해야 비로소 남성과 같은 음금을 받을 수 있다.

여성단체들은 ‘동일임금의 날’ 제도가 성별임금격차를 축소하는 가장 중요한 제도적 기반이라고 보고 있다.

지난 23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된 ‘2018 동일임금의 날 좌담회’에서도 성별임금격차에 대한 현주소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뜨거웠다. 특히 19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된 동일임금의 날 제정 법안이 20대 국회 전반기가 지나도록 논의조차 되지 않는 상황에 대한 엄중한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이날 김은경 한국YWCA연합회 성평등위원장은 “한국사회는 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며 “각 당에서 여러 정책을 내놓긴 했지만 모두 말 뿐이다. 현장의 변화가 전혀 없다. 국회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순희 한국노총 여성본부장은 ‘동일노동’ 문제가 그 사회의 ‘성평등’과 무관치 않다고 지적했다. “우리사회는 민주주의는 ‘작업장’에서 멈췄다”고 운을 뗀 김 본부장은 “갑질은 노동현장에서 벌어지고 그 최하위에서 피해를 보는 이들이 여성”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성별임금격차는 시급히 해결돼야 할 문제임에도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정부의 제도적 정책적 의지가 결여돼 있는 만큼 남녀임금격차 축소를 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력단절 여성들의 노동시장 재진입을 위한 논의도 이뤄졌다.

배정미 한국YWCA연합회 중점운동국 국장은 “30대 여성의 경력단절 이후 중장년 여성들의 노동시장 재진입은 경제활동참가율 제고는 물론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 △노동복지적 차원에서의 정책적 배려 △중장년여성의 선호직종 개발을 위한 국가 차원 지원 △여성인력센터의 역할과 기능 재조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날 좌담회에 참석한 신용현 바른미래당 의원은 정책 수립을 위한 근거, 즉 ‘통계’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통계가 없으면 여성·시민단체들의 주장이 불평불만으로 들린다는 게 신 의원의 지적이다.

황인자 젠더국정연구원 대표 역시 80년대 주부의 가사노동가치를 매기는 문제가 논의된 사례를 언급하며 “초창기에는 너무 어려웠고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다양한 층이 참여해 이 문제를 끌고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임금차별은 불법'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보장을 촉구하는 ‘2018 동일임금의 날 좌담회’가 열렸다. 김은경 한국YWCA연함회 성평등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좌담회는 김미진 한국청년유권자연맹 사무총장, 김순희 한국노총 여성본부장, 배정미 한국YWCA연합회 중점운동 국장이 각각 △청년여성의 임금차별 △여성노동자의 고착화된 저임금 문제 △중장년여성의 저고용 문제 등을 주제로 대담을 진행했다. 신용현 바른미래당 의원, 박인숙 정의당 여성위원장, 차인순 국회 입법심의관, 황인자 대표, 김난주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토론자로 나서 남녀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법제도 마련에 대해 논의했다. <시사위크>

◇ #미투 이어 #페이미투(#Pay MeToo)

김미진 한국청년유권자연맹 사무총장은 ‘동일임금 동일노동’에 대한 왜곡된 해석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김 사무총장은 “한 토론프로그램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사회주의적 생각’이라고 발언한 모 여성 의원의 발언에 충격을 받았다”며 “이런 주장들은 일부 정치권을 비롯해 일각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조항을 반대하는 근거로 통용되고 있다. 지금도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연관검색어로 마르크스 노동가치론이 떠있을 정도다. 이런 주장들은 교묘한 말장난”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실 이 문제의 직접적 대상인 미래세대, 즉 청년들의 문제”라면서 “청년들이 평등이나 공정함에 대해 어떤 정서를 갖고 있는지도 동일임금 확산을 위해 고려해야할 지점이다. 동일한 가치의 노동이 무엇을 뜻하는지, 청년세대의 수준가 눈높이에 맞는 맞춤형 설명자료들이 개발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좌담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임금차별 문제의 기저가 ‘남녀차별’이라는 데 한목소리를 냈다. “남녀차별에 대한 의식이 변화되지 않고는 해결이 힘든, 굉장히 더딜 수밖에 없다”는 것. 이에 지속적인 여론 환기, 각계의 관심과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한국YWCA연합회를 비롯한 여성·시민단체는 성폭력 및 성희롱 행위를 폭로하는 ‘미투(me too)’ 운동의 뒤를 이어 ‘페이미투(#Pay MeToo)’ 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사진은 가디언에 실린 스텔라 크리시 영국 노동당 의원의 인터뷰 기사. 스텔라 크리시 의원은 ‘페이미투’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가디언 4월 2일자 인터뷰 기사 화면 갈무리>

이날 한국YWCA연합회는 신용현 의원을 비롯한 국회의원 3명에게 동일임금의 날 제정 촉구를 위한 거리캠페인을 통해 받은 서명을 전달했다. 캠페인은 5월 넷째주 고용평등주간을 맞아 서울, 인천, 수원, 천안, 대구, 진주, 광주 등 21개 지역YWCA에서 진행됐다.

한국YWCA연합회를 비롯한 여성·시민단체는 성폭력 및 성희롱 행위를 폭로하는 ‘미투(me too)’ 운동의 뒤를 이어 ‘페이미투(#Pay MeToo)’ 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페이미투(#Pay MeToo)’는 영국에서 임금 성차별을 바로잡겠다는 목표로 시작된 운동으로, 2018년 1월 영국 BBC의 한 여성 편집장이 남녀 임금차별 개선을 촉구하며 돌연 보직을 사퇴한 것이 발단이 됐다.

‘페이 미투’ 운동을 주도하는 스텔라 크리시 노동당 의원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성별임금격차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면 관련 데이터를 공표하는 것 이상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면서 “이 문제가 어떻게 개선될지 (우리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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