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올리언스와 LA에서 각각 6년씩 뛰었던 크리스 폴은 이번 여름 휴스턴과 4년 계약을 맺었다. 남은 선수생활 동안 휴스턴에서 좋은 성적을 낸다면 NBA 역사상 3번째로 3개 구단에서 영구결번되는 것도 가능하다. <뉴시스/AP>

[시사위크=하인수 기자] 여름 이적시장의 진정한 승자는 르브론 제임스도, 드마커스 커즌스도, 카와이 레너드도 아니다. 모름지기 프로는 몸값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며, 이 기준에 빗대보면 휴스턴 로켓츠와 4년간 1억6,000만달러에 재계약한 크리스 폴이야말로 최고의 선수다. 작년 여름, 뉴올리언스와 LA에서의 12년을 뒤로 하고 ‘휴스턴 맨’이 됐던 크리스 폴은 이번 계약으로 만 37세가 되는 2022년까지 그대로 휴스턴에 남게 됐다.

다소 이른 감이 있지만, 크리스 폴이 은퇴 후에 어떤 평가를 받을지 상상해보는 것도 재밌는 일이 될 듯하다. 우승반지도 MVP 트로피도 없는 폴이지만 적어도 소속팀에서만큼은 뚜렷한 족적을 남겨왔다. 뉴올리언스 펠리컨스(당시 호네츠)와 LA 클리퍼스에서 구단 역대 최고성적을 올렸으며 작년에는 휴스턴을 서부지구 결승으로 이끌었다.

은퇴한 선수의 등번호를 아무도 사용할 수 없도록 지정하는 ‘영구결번’은 선수가 팀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경의다. NBA 역사상 3개 구단에서 영구결번된 선수는 단 두 명, 윌트 체임벌린과 피트 마라바치 뿐이다. 폴은 자신의 소속팀들에서 모두 영구결번될 수 있을까?

◇ 뉴올리언스 펠리컨스: 확정적

한 선수가 팀의 승리에 얼마만큼 기여했는지를 뜻하는 윈쉐어(WS)는 뉴올리언스의 짧은 역사에서 크리스 폴이 차지하는 위상을 잘 보여준다. 크리스 폴의 뉴올리언스 시절 윈쉐어는 76.4로 구단 역사상 가장 높다. 단 6년 동안 뛰면서, 그것도 뉴올리언스에서 데뷔한 신인선수로서 올린 기록이다.

폴의 윈쉐어 기록은 멀지 않은 미래에 앤써니 데이비스(윈쉐어 62.5)에게 따라잡힐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뉴올리언스가 구단 역사상 최고승(56승)을 올리고 유일한 디비전 타이틀(2008년)을 획득했던 전성기를 이끈 것이 폴이었다는 사실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는다. 아마도 뉴올리언스는 폴의 은퇴 소식을 듣자마자 영구결번식 날짜를 잡을 것이다.

◇ LA 클리퍼스: 확정적

내세울 것이 없기로는 클리퍼스도 뉴올리언스에 뒤지지 않는다. 같은 구장을 쓰는 LA 레이커스가 리그 최고의 명문 팀인 반면 클리퍼스는 만년 약체였다. 클리퍼스가 서부지구의 강호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1년 크리스 폴을 영입하면서부터다.

2016/17시즌까지 6년 동안 LA 클리퍼스에서 뛴 폴은 이곳에서도 누적 윈쉐어 1위(78.2)에 올라있다. 그리고 올해 여름 디안드레 조던(윈쉐어 76.3)이 댈러스로 이적하면서 2위의 추격을 받게 될 가능성도 사라졌다. 버팔로 브레이브스와 샌디에이고 클리퍼스 시절까지 포함한 48년 역사에서 클리퍼스가 6할 승률을 기록한 것은 단 6번뿐이며, 이는 모두 크리스 폴의 시대에서 일어난 일이다. 두 개의 디비전 타이틀(2013·2014년)도 마찬가지다.

클리퍼스는 아직까지 영구결번이 없다. 레이커스의 ‘골드 앤 퍼플’ 유니폼으로 도배된 스테이플스 센터의 천장에 크리스 폴의 흰색 유니폼이 걸리지 않을 가능성은 하나밖에 없다. 클리퍼스가 새 구장을 지어서 나가는 것이다.

◇ 휴스턴 로켓츠: 우승컵 필요

뉴올리언스나 클리퍼스와 달리 휴스턴 로켓츠에서 인정받는 것은 만만치 않다. 이제껏 하킴 올라주원과 모제스 말론, 트레이시 맥그래디 등 많은 스타플레이어들이 휴스턴의 유니폼을 입었으며 그만큼 영구결번의 문턱도 높다.

지난 시즌 휴스턴으로 이적한 폴은 경기당 18.6득점과 7.9어시스트를 기록했으며 윈쉐어는 10.2였다. 앞으로 5년 더 휴스턴에서 뛴다고 가정하면 누적 윈쉐어 기댓값은 61 정도다. 부족하진 않지만, 특별하지도 않다.

90년대 NBA 스타였던 클라이드 드렉슬러는 폴의 좋은 비교 대상이 될 수 있다. 드렉슬러는 휴스턴에서 단 4시즌만을 뛰었으며 활약상도 평범한 편이었다. 드렉슬러 본인 역시 휴스턴보단 포틀랜드의 에이스로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렉슬러의 등번호 22번이 휴스턴에서 영구결번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휴스턴이 1994/95시즌 우승컵을 거머쥘 당시 팀의 핵심 멤버였기 때문이다.

휴스턴 로켓츠는 팀 역사를 통틀어 단 두 번 우승을 차지했으며 이는 모두 1990년대 중반, 하킴 올라주원의 시대에서 일어난 일이다. 폴이 팀에 21세기의 첫 우승 트로피를 선물할 경우 로켓츠 구단은 기쁜 마음으로 그의 등번호 3번 유니폼을 홈구장 도요타 센터의 천장에 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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