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 5일 대대적인 저출산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태어나서 처음 7월을 살고 있는 제 딸은 요즘 첫 ‘폭풍의 시기’를 보냈습니다. 마침내 ‘등 센서’가 켜진 거죠. 안아줘도 울고, 눕히면 자지러지고, 그러다 지쳐 잠드는 게 하루 일과였습니다. 마사지도 해주고, 음악도 틀어주고, 온갖 방법을 다 써봤지만 답은 못 찾았습니다. 그러다 6주차에 접어드니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순한 천사가 됐네요. 결국 시간이 약이라는 온라인상 육아선배님들의 말만 실감 중입니다.

원래 이번 편에선 육아휴직 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연재를 시작하자마자(?) 정부가 대대적인 저출산 대책을 발표했더군요. 그래서 오늘은 그 이야기를 먼저 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좋은 이야기부터 해보죠. 정부의 이번 발표 중 긍정적인 측면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정책 변화 방향입니다. 다섯 가지 지점에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는데요, 그 내용은 아래 그림과 같습니다.

정부의 이번 발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정책 패러다임의 변화입니다.

단순히 출산율만 바라보던 정책 패러다임은 아이와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으로 시야를 키웠습니다. 이를 통해 청년문제, 주거문제, 여성문제 등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를 복합적으로 풀어나갈 방침입니다. 캠페인을 통한 인식 개선에 머물던 접근 방식이 제도 및 구조 개혁을 통한 개인의 선택 장려로 바뀐 점과 기존 제도의 활용 폭 확대로 실천 전략을 세운 점도 인상적입니다.

특히 저출산 문제의 원인을 ‘우리 사회 전반의 삶의 질이 악화된 결과’로 진단하고, 보육 위주가 아닌 주거, 일·생활 균형 등으로 재정 투자를 확대하기로 한 것은 정확한 문제인식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제시된 주요정책 중 고용보험에 적용되지 않는 특수고용직 및 자영업자에게 출산휴가급여를 지원하기로 한 것과 1세 아동 의료비 사실상 제로화, 아이돌보미 지원대상 확대 및 정부지원 강화 등은 더 늦지 않고 이제라도 이뤄진다니 다행입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많습니다. 가장 먼저 물음표가 붙는 건 실효성입니다. 제 아무리 좋은 정책과 제도도 현실에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면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죠.

정부가 발표한 저출산 대책 중 ‘일·생활 균형’에 해당하는 주요 정책입니다. <뉴시스>

정부 정책이 발표된 뒤 주변의 육아 중인 부모나 신혼부부와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었는데요. 공통적인 반응은 “남의 이야기”라는 것이었습니다. 

주로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확대, 아빠 육아휴직 보너스 인상, 유급출산휴가 확대 등 ‘일·생활 균형’에 관련된 정책들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이 나왔죠. 

공무원이나 대기업 직원이 아닌 이들은 “상대적 박탈감만 더 커지는 것 같다”고 말하더군요. 그 중 중소기업에 다니는 한 지인의 말을 옮겨보겠습니다.

“대기업이야 업무가 철저히 분화돼있고 매뉴얼이 잘 잡혀있으니 대체인력을 투입하거나 서로 백업해주기가 쉽겠지. 하지만 우리 같은 회사는 직원 하나하나가 멀티플레이어고, 맡고 있는 업무 비중도 크다고. 누가 와서 대체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자기 할일 바빠서 도와줄 여력도 없어. 그런데 며칠씩 휴가를 쓰고, 몇 달씩 휴직을 한다? 그러면 회사 자체가 돌아가질 않게 돼. 내가 애 키우겠다고 회사가 망하면? 나도 실직자 되는 거야. 그걸 나부터 너무 잘 알거든. 그런데 육아휴직이니 뭐니 늘어난다한들 쓸 수 있겠어? 근로시간 단축? 야근하기 바쁜데 정시에 퇴근이나 하면 다행이다.”

물론 모든 정책이 일순간에 전면 활성화되기란 불가능합니다. 공공부문과 대기업에서부터 점진적으로 변화를 확대해나가는 것이 일반적이죠.

다만,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과 시급성을 고려한다면 조금 더 현실적인 대책이 빨리 마련돼야겠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의 80% 이상이 중소기업 소속인데요. 결국 이들이 아이 낳고 살기 좋은 사회가 돼야 저출산 문제를 비롯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할 수 있겠죠.

취업난이 극심하다는 지금도 인력난을 호소하는 중소기업이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비용을 일부 지원해줄테니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단축근무를 늘리라고 하면 이를 곧이곧대로 따를 수 있는 중소기업이 얼마나 될까요. 있으나마나한 정책이 될 뿐이겠죠.

그보단 중소기업도 직원의 출산과 육아를 반갑게 여기고 장려할 수 있도록 만들어줄 과감한 지원 및 혜택, 그리고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될 육아복지 확대가 시급하다고 봅니다.

끝으로 ‘돈’ 이야기를 덧붙일까 합니다.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정책은 아직 뚜렷한 예산 확보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마련된다 해도 국회라는 산을 넘어야하죠. 부디 정부 차원에서의 원활한 예산 확보와 국회 차원에서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길 바랍니다. 저출산 문제는 다른 어떤 문제보다 시급하고, 정쟁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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