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의 임신 기간 중 겉으로 티가 나지 않는 초기가 가장 힘들고 중요한 시기입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 평소처럼, 혹은 평소보다 더 일하는 임산부가 적지 않습니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푹푹 찌는 더위가 시작됐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주말마다 계곡이니 바다니 잘도 돌아다녔을 텐데, 올해는 ‘꼼짝마라’ 입니다. 아기와 함께 ‘방콕 피서’를 보내고 있죠. 신생아가 있는 가정은 전기세가 30% 감면된다는 점을 믿고 에어컨 빵빵하게 가동하며 열심히 육아 중입니다.

오늘은 임신 기간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저희가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건 지난해 추석이 막 지났을 무렵이었습니다. 병원에서 확진을 받기 전부터 이미 어느 정도 확신을 갖고 있었는데요. 뭐든 잘 먹던 제 아내가 확 달라진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죠.

사실, 저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단골로 쓰이는 임신 표현 장면(식사 등을 하다 ‘욱’하며 헛구역질을 하면, 상대방이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이 식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 아내가 임신하고 난 뒤 지극히 현실적인 장면이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습니다.

다행히 제 아내는 입덧이 아주 심한 편은 아니었는데요. 그래도 임신 초기엔 좀처럼 입맛이 없어 하고 힘들어 했습니다. 특히 고기를 마다하는 게 정말 신기했고, 과일과 샐러드를 선호했죠. 한 번은 매운 것이 먹고 싶다기에 평소 저희가 좋아하던 무교동 낙지볶음을 공수해왔는데, “느끼하다”는 충격적인 말을 했던 것도 기억에 남네요.

이렇듯 임신 초기에 급격하게 달라진 점은 먹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잠이 많아지고, 평소보다 금방 지치는 등의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났죠. 임신 기간 10개월을 돌이켜보면 2개월을 전후로 한 초기가 가장 힘든 시기였던 것 같고, 아내도 그렇게 말합니다. 비슷한 시기에 임신과 출산을 한 제 친구도 이 시기에 늘 점심식사 후 속을 게워냈다고 하고요. 아마 어머니들이 공감하실 겁니다.

문제는 가장 힘든 이 시기에 정작 임산부로서 배려받기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임산부라는 티가 겉으로 잘 나지 않기 때문이죠. 보통은 배가 불룩 나온 만삭 임산부가 가장 힘들 거라 생각하고, 저 역시 그랬습니다.

물론 만삭 때가 힘들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배가 뭉칠 때면 손만 대고 있는 저도 고통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다만, 호르몬 등 신체적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나고, 심리적 안정이 필요한 임신 초기의 힘듦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단순히 힘들기만 한 것도 아닙니다. 유산 등의 가능성이 높은 시기이기도 하죠. 겉에선 보이지 않지만, 안에선 한 인간이 한창 만들어지고 있을 시기입니다. 그것도 가장 중요한 기초공사 중이겠죠.

그런데 이 같은 임시 초기를 지나 안정권에 접어드니, 또 거짓말처럼 아내의 컨디션이 좋아졌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그때도 식성이 달라진 부분은 있었지만, 먹는 거나 활동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임신 5~6개월이 지나 배가 제법 나왔을 때도 임신 초기 때보단 힘들어하지 않더군요.

이처럼 임신 전체 기간 중 초기는 무척 중요하고 힘든 시기입니다. 이 시기 임산부들을 위해 현재 우리나라엔 ‘임신 기간 근로시간 단축 제도’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정상 임금을 받으면서 하루 2시간까지 근로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근무시간이 8시간 미만인 경우엔, 6시간까지만 근무할 수 있고요. 적용 기간은 임신 초기 12주까지와 임신 말기에 해당하는 36주 이후입니다.

제 아내도 이 제도 덕을 톡톡히 봤습니다. 지금도 “그때 단축근무를 해서 참 좋았다”고 말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엔 임신 기간 중 근로시간 단축 제도가 모든 사업장에 적용되고 있습니다만, 유명무실한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제도가 있으나마나한 곳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얼마 전 전국보건의료노조가 임신·출산을 경험한 병원 근로자 4,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한 결과, 33.2%가 임신 중 하루 8시간 이상 초과근무를 했다고 답했습니다. 16.6%는 야간근무까지 했다고 하네요. 반면, 임신 기간 근로시간 단축을 사용한 비율은 11.4%에 그쳤습니다.

비단 병원만의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대체인력이 없어서, 바빠서, 눈치가 보여서 등 갖가지 이유로 쉴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초기 임산부가 많습니다. 심지어 야간근무를 시키며 동의서를 강요하는 일도 있다고 합니다. 이건 단순히 배려가 부족한 게 아니라, 범죄입니다. 또한 이러한 제도가 있는 줄 몰라서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저출산 문제와 관련해 사회적 인식 개선이 얼마나 필요한지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제도는 이미 마련돼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이 같은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면, 어떻게 우리 사회가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당장 2시간의 업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것이 임산부의 적절한 휴식입니다.

얼마 전 아내와 이와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아내가 “외국은 어떨까”라고 묻더군요. 그래서 해외에서 근무 중인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봤습니다. 그 친구의 답입니다.

“문화의 차이랄까. 한국은 업무를 빨리 처리하는 게 목숨만큼 중요해. 그런데 여긴 아니야. 담당자가 휴가거나 임신을 해서 일찍 퇴근했다고 하면, 다음 날 다시 전화해서 업무를 처리하면 돼. 물론 그래서 일이 오래 걸리기도 하지. 처음엔 불편하기도 하고 적응하기 힘들었는데, 이제는 나도 여기 방식에 맞춰진 것 같아. 이게 맞는 것 같고. 사람이 중요하지 일이 중요할까.”

사회적 인식 개선은 결국 정부의 노력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초기 임산부가 만삭 못지않게 힘들다는 것, 그렇기에 많은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을 더 널리 알려주기 바랍니다. 어쩌면 몰라서 배려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아울러 임신 초기에 사용할 수 있는 휴가도 점차 도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대부분 연차를 쓰는 경우가 많은데요. 연차는 근로자로서의 권리고, 임산부로서의 권리는 별도로 보장해줘야 합니다. 출산전후 휴가를 늘리고, 임신 초기에 분할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방법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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