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육아휴직의 정착은 가정 및 사회에서 육아의 양성평등을 실현하는데 있어 중요한 과제입니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맹위를 떨치던 폭염의 기세가 한풀 꺾였습니다. 날씨가 살만해져서 그런지, 저희 아이는 요즘 더 잘 잡니다. 저녁 8~9시만 되면 잠자리에 들어서 중간에 한 번 정도 분유를 먹고 아침 5~6시까지 다시 자곤 합니다. 효녀 덕분에 아내와 저 모두 조금이나마 저녁이 있는 삶을 되찾게 됐습니다.

오늘은 지난번 주제였던 ‘여성 경력단절’의 연장선상에서 ‘남성 육아휴직’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우선 남성도 여성과 마찬가지로 육아휴직이 보장됩니다. 현행법상 기본적으로 1년이 보장되고, 각 기업별로 더 주어지기도 하죠. 육아휴직은 여성만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근로자 모두에게 주어지는 권리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선 남성 육아휴직이 익숙지 않은 존재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육아휴직자 수는 9만123명이었는데 이 중 남성은 1만2,043명에 불과했습니다. 전체 육아휴직자의 13.4%만이 남성이고, 86.6%는 여성이었죠. 이마저도 과거에 비하면 눈에 띄게 증가한 것이지만, 여전히 유명무실한 편에 속합니다.

이는 단순히 남성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육아를 여성에게만 맡기고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수치입니다. 저조한 남성 육아휴직과 심각한 여성 경력단절은 별개의 사안이 아닌 서로 얽혀있는 문제인 거죠. 육아에서의 양성평등은 아직도 갈 길이 멀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남성 육아휴직 확대가 여성 경력단절 문제 해결의 중요한 해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장담컨대, 향후 여성 경력단절이 감소한다면 남성 육아휴직 증가와 궤를 같이할 겁니다. 저출산 문제 해결이 가까워질 거고요.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양성평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려줄 겁니다.

남성 육아휴직자 수는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전체 육아휴직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적은 수준입니다. <뉴시스>

먼저, 가정의 측면에서 살펴볼까요. 부부 중 남편도 육아휴직을 사용하게 되면 아내는 직장과 관련해 선택의 폭이 한층 넓어집니다. 적어도 두 돌 때까진 부부가 번갈아가며 육아를 책임질 수 있게 되니, 불가피한 퇴사 선택이 크게 줄어들겠죠. 둘째나 셋째를 낳는 경우는 더욱 그렇고요.

직장 내에서도 남성 육아휴직 확대는 양성평등 실현으로 이어집니다.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남성 중심 사회입니다. 특히 위로 올라갈수록 그런 현상이 심해지죠. 기업 임원의 절대다수가 남성이라는 점이 이를 뚜렷하게 보여줍니다.

다 이유가 있습니다. 지난번에 살펴봤듯, 여성의 상당수는 일단 결혼·출산·육아와 함께 경력이 단절됩니다. 행여 육아휴직 후 복직한다 해도 남성과 비교하면 경력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습니다. 똑같이 아이 둘을 낳는다고 가정했을 때, 일반적으로 여성은 약 2년의 휴직이 발생하지만 남성은 공백기가 없습니다.

만약 남성 육아휴직이 늘어난다면 어떨까요. 우선, 여성은 직장 내에서 ‘육아’라는 핸디캡 없이 좀 더 공정한 여건에서 경쟁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엄마라는 이유로 승진경쟁에서 불평등을 겪거나 밀리는 일이 없어지겠죠. 육아휴직 등 각종 육아 지원제도를 향한 직장 내 부정적 인식을 크게 개선시켜 실효성을 높여줄 거고요. 더 많은 이들이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면, 일과 가정의 양립은 그만큼 더 빨리 이뤄질 겁니다.

그렇다면 남성 육아휴직이 저조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첫 번째는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바로 경제문제죠. 육아휴직 기간엔 급여가 크게 줄어드는데요. 월급을 500만원 넘게 받던 이들도 100만원 안팎으로 감소하게 됩니다. 여성을 ‘육아 희생양’으로 만드는 중요한 요인입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선 먼저 기존 급여와 육아휴직 급여의 격차가 줄어들도록 각종 제도를 개선해야 합니다. 물론 돈이 드는 문제다보니 단기간에 해결은 어렵겠지만, 상한액 적용을 다양화시키거나 세제혜택을 추가하는 등의 여러 방법을 강구해볼 필요는 있습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남아있는 남성과 여성의 ‘임금차별’도 근본적으로 철폐해야 하고요.

두 번째는 사회적 인식입니다. 남성은 밖에서 돈을 벌어오고, 여성은 집에서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이 뿌리 깊게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원시시대처럼 사냥을 하거나 조선시대처럼 농사를 짓는 시대가 아닙니다. 남성과 여성이 경제활동과 육아 모두 함께 분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같은 인식은 가정에서 뿐 아니라, 직장 내에서도 하루 빨리 개선돼야 합니다.

이와 관련해 칭찬할 기업이 있는데요. 롯데그룹입니다. 롯데그룹은 지난해부터 모든 계열사에 대해 ‘남성 육아휴직’을 의무화하고 있습니다. 최소 1개월은 육아휴직을 사용하도록 못박아둔 겁니다. 또한 롯데그룹은 육아휴직 첫 달엔 기존의 급여를 똑같이 받을 수 있도록 지원도 해주고 있습니다.

효과는 상당합니다. 지난해 남성 육아휴직을 사용한 롯데그룹 소속 직원은 1,100명에 달했습니다. 국내 남성 육아휴직 사용자 10명 중 1명이 롯데그룹 소속이었던 것입니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900명이 사용했다고 합니다. 제가 직접 만나본 롯데그룹 직원은 “그룹 경영진 차원에서 내려진 결정이다 보니 눈치 볼 일이 없어졌습니다. 특히 육아휴직 후 돌아온 직원들의 만족도가 상당해 앞으로 좋은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더군요.

물론 이는 대기업이기에 가능한 측면이 있습니다. 대기업 소속이 아닌 대다수에게 남성 육아휴직은 더욱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죠.

다만, 저는 유명무실한 제도에 실효성을 불어넣은 롯데그룹의 시도를 꼭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 남성 육아휴직 제도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제대로 쓰이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죠. 좋은 제도가 실제로 좋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방법을 찾고 실행하는 것.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자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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