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이를 둘러싼 세대간 갈등 양상도 심화되고 있습니다. <그래픽=이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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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지난 주말은 제 딸아이의 100일이었습니다.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처음 만났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0일이라니, 새삼 뭉클하더군요. 짧지만 길었던, 그리고 참 많은 일들이 있었던 100일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갔습니다.

백일잔치는 양가부모님과 형제만 초대해 조촐하게 치렀습니다. 장인·장모님이 부산에 살고 계셔서 서울역과 가까운 시내의 한 중식당을 이용했는데요. 백일잔치 손님은 처음이라며 공간과 시간을 넉넉히 내주셔서 무척 감사했습니다. 많은 고민 끝에 선택한 백일상 대여도 만족스러웠고요.

다만, 아무래도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곤 하다 보니 별도의 방이었음에도 다른 손님에게 민폐가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더군요.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이 있는데요. 대부분 백일잔치는 저희처럼 조촐하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공공시설의 적당한 장소를 개방해 제공하는 것은 어떨까 입니다.

저는 특히 학교를 이런 식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갈수록 줄어드는 학생 수 때문에 학교 내에 남는 공간도 늘어나고 있으니 그 공간을 소규모 백일잔치 및 돌잔치 장소 또는 셀프 스튜디오로 꾸미는 거죠. 학교는 각 지역별로 있을 뿐 아니라 접근성도 좋고, 식사가 필요하다면 도시락을 이용하면 되니 충분히 가능한 아이디어 아닐까요. 물론 예산과 인력이 필요하지만, 이를 통해 부모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좋은 문화를 확산시킬 수 있을 겁니다.

서두가 길었네요. 오늘은 출산을 둘러싼 세대갈등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얼마 전 사회적 논란이 있었던 사안이기도 하죠.

제 아내가 누구에게나 정말 듣고 싶어 하지 않는 말이 있습니다. “둘째 낳아야지”, “얼른 얼른 낳아 키워”, “셋째까지 낳아봐, 요즘엔 혜택도 많다던데” 이런 부류의 말입니다. 저나 양가 부모님이 빈말이라도 비슷한 말을 꺼내면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짐)’가 되곤 했죠. 또 어쩌다 마주치게 되는 지인이나 어르신들이 으레 건네는 말이라도 무척 스트레스를 받더군요. “아이를 키워줄 것도 아니면서”, “아이 낳다가 망가지는 내 몸은 어떻게 하라고” 주로 이런 반응이었습니다.

진통을 하는 내내 함께 분만실에 있었고, 현재 아이를 키우며 고생하고 있어서 그런지 아내의 말이 무척 공감됩니다. 남의 일이라고 그렇게 쉽게 이야기할 문제가 아니라는 건 분명하거든요. 듣는 이에겐 극도의 스트레스와 상처가 될 수도 있고요. 그래서 전 되도록 조기진화에 나서곤 합니다. 행여나 누군가 아내 앞에서 그런 말을 꺼내면 얼른 화제를 돌리거나 하죠.

백일잔치 다음날엔 아내의 친구들을 만났는데요. 그 중 한 친구가 이런 고민을 털어놓더군요.

“지금 남자친구가 너무 좋고 결혼까지 하고 싶어. 근데 남자친구 부모님과 친척들을 만날 일이 있었는데, 대뜸 혼인신고부터 하고 아이부터 가지라는 거야. 너무 당황스럽더라고. 남자친구가 아닌 가족 때문에 결혼이 고민되기 시작했어.”

이 친구의 이야기도 제 아내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당연히 아내는 격분했고요.

벌써 100일이라니, 믿어지지 않습니다.

얼마 전 큰 논란이 된 김학용 자유한국당 의원의 발언도 이러한 맥락과 닿아있습니다. 김학용 의원은 “요즘 젊은이들은 내가 행복하고 내가 잘사는 것이 중요해서 애 낳는 것을 꺼리는 것 같다. 아이를 여럿 낳는 게 중요하다는 기존 가치관이 바뀐 것 같다. 청년들이 가치관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출산지원금이 적다며 각종 복지적 금전지원을 출산부부에 집중하자는 제안도 했고요. 심지어 이 같은 발언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주최한 포럼에서 나왔습니다.

청년들의 반응은 싸늘합니다. 전형적인 ‘꼰대적 발언’이란 반응입니다. 저출산의 근본원인인 각종 사회구조적 문제를 물려준 기성세대가 청년들의 가치관을 지적하니 분노하지 않을 수 없겠죠. 돈 몇 푼 더 쥐어주면 아이를 낳을 거라 생각하는 근시안적이고 단편적인 접근도 마찬가지고요.

물론 손주를 더 보고 싶은 부모님들의 마음이나 아이를 많이 낳아 다복한 가정을 꾸리라는 의미의 덕담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김학용 의원의 언급 역시 많이 양보해서 기성세대 중엔 그런 시각을 가진 분들도 있겠다 싶고요.

문제는 이 같은 생각차이가 갈등을 낳고,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 저출산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기성세대가 어떤 마음과 가치관으로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렸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세상은 많이 변했습니다. 결혼하면 곧장 줄줄이 아이를 낳고, 남편은 야근하며 돈벌어오느라 바쁘고, 아내는 평생 가정주부로 사는 시대가 아닙니다. 반면, 자아실현의 욕구는 훨씬 높아졌는데 열심히 할 기회를 잡는 것조차 어려운 시대가 됐죠.

기성세대는 지금의 청년들이 왜 저출산 문제를 겪고 있는지 진정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높은 경제성장을 누린 뒤, 지금의 어려운 현실을 남겨 준데 따른 책임의식도 가져야 하고요. 저출산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청년 취업난, 불안정한 소득과 일자리, 높은 집값 모두 기성세대가 남긴 유물 아닙니까.

“가치관이 문제”라거나 남의 일처럼 내뱉는 “아이 낳아야지” 같은 말보단, 지금 청년들이 아이를 낳는데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고 답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으레 건네는 “둘째 가져야지” 같은 말 대신 “아이 낳아 키우느라 고생이 많다. 참 고맙다”가 더 좋을 겁니다.

국가·사회적 차원에서도 출산을 둘러싼 세대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국회의원조차 처참한 인식을 드러내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니까요.

부디 모든 세대가 힘과 지혜, 마음을 합쳐 저출산 문제 해결을 향해 발을 맞춰 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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