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촌 세종문화음식거리에 위치한 옛 궁중족발 가게 모습. <조나리 기자>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이 집이구나. 그 족발집.” “아 망치 사건? 진짜 난리가 났었네.”

막 점심을 마친 중년 남성 3명이 옛 궁중족발 가게 앞을 지나던 중 발길을 멈추고 한 마디씩 했다. 이들뿐 아니라 대부분 행인들은 한 번씩은 가게를 쳐다보고 지나갔다. 그곳이 어딘지 몰라도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외관이기도 했다. 옛 궁중족발 가게 유리벽은 온통 접근금지를 알리는 서류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꼭 일주일 전 궁중족발 가게 주인 김모 씨의 살인미수 혐의 1심 선고가 나왔다. 주변 상인들과 이곳을 찾은 시민들은 이 사건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외부 곳곳에 붙어있는 각종 서류들. 철거 과정 깨졌던 유리벽은 비닐로 막아 놨다. <조나리 기자>

◇ 피로도 쌓인 상인들.. 안타까움 반 걱정 반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서촌 세종문화음식거리에 위치한 옛 궁중족발 가게를 찾았다. 간판은 사라졌지만 굳이 묻지 않아도 그곳이 옛 궁중족발 가게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곳 사장 김씨가 손가락 부분 절단을 당하고 쫓겨난 날 파손됐던 유리벽은 비닐로 임시조치가 돼있었다. 궁중족발 가게 바로 맞은 편 냉면집 직원은 사건에 대해 질문하는 기자에게 “아무런 말을 할 수 없다”며 손을 내저었다.

그는 “직원이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지만 가게 주인이 오셔도 아무 말 하시지 않을 것”이라며 “사건이 너무 커져서 함부로 얘기할 수 없다. 이곳 상인들 모두 말을 조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궁중족발 인근 20m만 넘어가도 주변 상인들은 “이쪽은 그 사건에 대해 모른다”고 잘라 말했다. 일부 상인들은 상권이 피해를 볼까 걱정하는 분위기 였다.

세종문화음식거리 초입에서 30년째 장사를 하고 있는 반찬 가게 주인은 “요즘 들어 그런 사건들이 생기는 거 같다. 이제 여기 누가 오겠냐”며 다소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는 “지금 몇몇 가게들이 자리가 나가지 않아서 이동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자꾸 이런 소식이 나오면 좋을 일이 뭐가 있겠냐”며 우려했다.

다만 대부분 상인들과 이곳을 자주 찾는 시민들은 궁중족발 사건이 상권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진 않았다고 전했다. 세종문화음식거리 끝자락에 위치한 고기집 주인은 “손님이 줄거나 하진 않았다”면서도 “가까이 있는 상점들은 당시 소음 때문에 불편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이어 “3년 째 장사를 하고 있는데 남일 같지는 않았지만 나라면 못 버텼을 것 같다”며 “억울하더라도 일단 챙겨야 할 가족들이 있으니까. 법이 그렇지 않은가. 내가 이길 수 없으니까”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상인들은 건물주의 ‘인심’에 기대는 분위기였다. 고기집 사장은 “몇 년 전에 젊은 분들이 와서 장사를 하다가 똑같은 상황에 처했다가 결국 떠난 분들이 있었다”면서 “궁중족발집도 끝까지 버티다가 안 좋게 된 거 같다. 다행히 저희 건물주는 좋은 분 같아서 큰 갈등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건물 왼쪽 끝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옛 궁중족발 가게의 흔적. <조나리 기자>

실제 사건이 한창일 당시 궁중족발 가게에 대해 ‘운이 나빴다’는 평도 적지 않았다. 시민단체 ‘맘편히 장사하고픈 상인들의 모임’ 활동가 ‘쌔미’는 지난 6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경기가 계속 어려운 상황에서 5년이라는 기간은 막 자리를 잡기 시작한 단계에 불과하다”면서도 “대부분 건물주들은 상인들이 계속 장사를 하길 바란다. 일부 터무니없는 욕심을 부리거나 비싸게 건물을 팔 계획을 가지고 있는 건물주를 만나면 꼭 문제가 터진다”고 꼬집었다.

◇ 시민들 “상인들 안타까워.. 골목상권 지켜지길”

궁중족발 사장 김씨의 1심 재판이 열린 지난 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이영훈)는 김씨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재판에서 재판부와 배심원 전원은 김씨에게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반면 검찰은 줄곧 김씨에 대해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며 징역 7년을 구형했다.

그러나 상인들은 궁중족발 사장 김씨를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궁중족발 맞은편 채소 가게 주인은 “사람들이 착했다. 상인들과도 갈등이 없었다”면서 “궁지에 몰리니까 사람이 순간적으로 실수를 저질렀다”며 씁쓸해했다. 그러면서 “상권이 뜨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서로 간에 대화로 풀어야 하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세종문화음식거리에서 종종 점심 식사를 하는 직장인 여성 A씨도 “(궁중족발 가게를)지나갈 때마다 안타깝다”면서 “주변 상인분들은 워낙 시끄러웠기 때문에 지나쳤다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자주 찾는 손님으로썬 냉정하게 볼 수만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옛 궁중족발이 들어섰던 건물은 현재 전 층이 비워져 있다. 2층에 위치했던 PC방도 계약 만료 후 자리를 비웠다. <조나리 기자>
유리벽을 통해 들여다본 옛 궁중족발 내부 모습. 바닥은 모래로 뒤덮여 있다. <조나리 기자>

현재 궁중족발이 있던 건물은 전 층이 비워진 상태다. 건물주도 최근엔 보이지 않는다는 게 상인들의 설명이다. 건물주 이모 씨는 궁중족발 사장 김씨의 재판에 출석해 “부지에 대해 연구를 해봤는데 개축을 하든가 새로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면서 애초부터 세입자들과 재계약을 할 생각이 없었다고 밝혔다.

궁중족발 사장 김씨와 부인 윤씨는 2009년 5월 궁중족발을 개업하면서 이전 가게(슈퍼) 주인에게 권리금 3,000만원을 주고 수도와 가스 등을 자비로 설치했다. 2014년에는 빚을 내 가게 리모델링을 하고 2015년 5월에 이전 건물주와 1년 재계약을 했다. 그러나 같은해 12월 건물을 인수한 지금의 건물주가 건물 리모델링을 명목으로 퇴거를 요구했고, 공사 이후 재계약 조건으로 보증금 1억 원, 월 임대료 1,200만 원을 요구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당시 김씨는 보증금 3,000만원에 월 297만원의 임대료를 내고 있었다. 궁중족발 사장 김씨는 보증금을 낼 돈도, 다른 곳에 새로 정착할 돈도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후 해당 건물에 대한 감정평가 결과 적절 임대료는 월 304만원이었다. 감정평가는 건물주 이씨가 법원에 요구해 이뤄졌다.

서촌 세종문화음식거리를 통학로로 이용하는 한 대학생은 “상인분들도 불안해하시는 분들이 많다. 이곳이 강남 상권처럼 변해버리면 갈 곳이 없다고 하셨던 말도 들었다”고 말했다. <조나리 기자>

서촌 세종문화음식거리가 통학로라는 한 대학생은 “학생들은 사태 과정을 다 지켜봤기 때문에 뉴스에 나올 때마다 걱정을 했다”면서 “상인분들도 불안해하시는 분들이 많다. 이곳이 강남 상권처럼 변해버리면 갈 곳이 없다고 하셨던 말도 들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들어서면 편해질 거라고 보는 분들도 있겠지만, 대신 이곳의 상징인 골목상권은 사라지는 것”이라며 “좋은 일인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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