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경제적 이익을 최우선 목적으로 추구하며 사회적 가치를 거스르기 쉽다. 반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각종 공익단체나 활동가들은 늘 경제적 문제에 부딪히곤 한다.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는 것이 바로 사회적기업이다. 서로 대척점에 서 있는 자본주의와 공익의 맹점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특히 초고령화사회와 4차산업혁명시대를 맞는 우리 사회에선 그 역할과 가치가 더욱 강조될 전망이다. <시사위크>가 국내에서 활동 중인 다양한 사회적기업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본다.

 

영셰프스쿨에 입학한 친구들은 요리를 통해 자신의 자아와 진로를 찾아가고 있다. <오가니제이션 요리 제공>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해도 인류에겐 변치 않는 고민이 있다. “오늘 뭐 먹지?”다. 점심시간 사무실을 나가 식당을 고르는데도 한참 걸리는데, 식당에 들어가면 다시 메뉴 고민이 시작된다. 짜장면-짬뽕을 놓고도 매번 고민하지 않던가.

이는 그만큼 먹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속담부터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 아니냐”라는 시쳇말까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이처럼 소중한 한 끼 식사, 음식으로 조금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사회적기업이 있다. ‘오가니제이션 요리’다.

오가니제이션 요리의 사업분야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다만, 두 분야는 ‘음식’이란 공통주제 아래 있고,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기도 하다.

먼저 외식사업이다. ‘슬로비’라는 이름으로 케이터링 사업과 카페(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서 슬로비는 ‘Slower but better working people’에서 따왔다. 한영미 대표는 “바쁜 세상 속에서 느리지만 천천히 자신의 일을 더 잘 해내는 사람을 의미한다. 단순히 음식을 팔아 돈을 버는 식당이 아니라, 더 좋은 음식을 제공하고 주변을 살피며 돌보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음식을 통해 더 좋은 문화를 확산시키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다.

인기가 높은 편인 케이터링 서비스는 오가니제이션 요리의 핵심 사업으로 자리매김한 상태다. 오가니제이션 요리 관계자는 “품질이 좋기로 입소문이 났을 뿐 아니라, 우리가 가진 좋은 취지에 공감해 더 많이 찾아주시는 것 같다”며 “현재도 예약이 줄줄이 차있다”고 말했다.

오가니제이션 요리의 핵심사업으로 자리매김한 슬로비 케이터링 서비스. 높은 품질로 인기가 많다. <오가니제이션 요리 제공>

슬로비 카페의 경우 한때 홍대와 제주 등에 매장을 운영하기도 했으나, 다른 외식업계와 마찬가지로 임대료 및 원재료 비용 상승에 따른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공덕 및 수원 매장에서 뜻깊은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슬로비 카페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메뉴는 따뜻한 집밥을 떠올리게 하는 ‘그때그때 밥상’이라고 한다. 소소한 반찬과 국 또는 찌개로 이뤄진 메뉴다. 이곳에서는 도시락 주문판매와 요리교실 같은 문화강좌가 진행되기도 한다.

이처럼 케이터링 서비스와 카페 운영을 통해 발생하는 수익 중 일부는 청소년요리대안학교인 ‘영셰프스쿨’ 운영에 투입된다. 품질 좋고 따뜻한 마음까지 담긴 음식을 먹는 일 자체가 또 다른 기부 및 좋은 문화 확산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슬로비 카페 공덕점(왼쪽 위)와 그곳에서 만날 수 있는 음식들. 엄마를 생각하게 하는 소박한 밥상이다. <오가니제이션 요리 제공>

영셰프스쿨은 오가니제이션 요리 사업의 또 다른 한 축이다. 17~22세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영셰프스쿨은 학교라는 틀을 벗어나 요리로 자아를 실현할 수 있도록 이끄는 2년제 대안학교다. 소정의 입학금을 제외하면, 2년간의 모든 교육은 무료로 진행된다. 2010년부터 본격 운영되기 시작해 올해 9기 친구들이 새로 합류했다.

이들은 1년차인 1·2학기엔 서울혁신센터에 마련된 식당을 함께 운영하며 요리 및 메뉴구성 등을 배운다. 이어 오후엔 직접 농사를 짓는 체험부터 음악, 인문학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이어 2년차인 3학기엔 슬로비 카페 등 실제 현장에서 인턴실습을 실시하게 되며, 4학기엔 자립은 위한 ‘졸업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학교 밖 아이들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이 있는데, 영셰프스쿨에 오는 친구들은 소위 ‘문제아’가 아니에요. 자신의 자아나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요리를 선택한 친구들이죠. 요리사가 꿈인 친구들도 있지만, 꼭 진로를 위해서가 아니라 요리가 재밌고 요리에 관심이 있어서 시작한 친구들도 있어요. 수업도 식품영양학이나 화려한 요리보단 스스로 생각하고 경험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됩니다.” 영셰프스쿨의 담임선생님인 이선숙 선생님의 설명이다.

영셰프스쿨 친구들이 점식식사 준비로 분주하다. <오가니제이션 요리 제공>

서울혁신센터 공유동 5층에 마련된 식당에서 만난 영셰프스쿨 친구들은 점심 준비로 분주했다. 또래와 마찬가지로 앳된 얼굴이었지만 요리를 향한 집중은 어느 프로 요리사 못지않았다. 어떻게 보면 평범한 ‘치즈계란말이’를 정성을 다해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절로 군침이 돌았다. 12시에 맞춰 일사분란하게 음식을 준비하면서도 밝은 표정을 잃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다. 요리와 식당 운영을 진정으로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대부분 갖기 마련인 학업·입시·진로에 따른 스트레스의 그늘이 요리에 빠진 이들에게선 보이지 않았다.

12시가 다다르자 하나 둘씩 손님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조용하던 식당에서도 이내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음식을 준비하던 영셰프스쿨 친구들은 손님을 맞이하며 직접 배식에 나섰다. 어느덧 식당을 가득 채운 사람들은 소박하지만 정성이 가득 담긴 점심식사를 내내 행복한 표정으로 즐겼다. 자신들이 직접 만든 음식을 배식하고, 이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영셰프스쿨 친구들 역시 한껏 들뜬 표정이었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모두 익숙한 듯 한쪽에 마련된 개수대에서 ‘셀프 설거지’를 했다. 다소 번거로울 수 있는 일이지만, 누구도 불평하거나 대충하지 않았다. 이 식당에서는 손님이 그저 단순한 ‘고객’이 아닌, 좋은 뜻을 함께 나누는 또 하나의 구성원이었다.

분주하지만 모두가 행복한 표정이다. 무척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뜻한 점심시간이었다. <시사위크>

기자도 배식을 받아 영셰프스쿨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어떤 식당 못지않게 맛이 좋았다. 함께 자리한 8기 친구는 “얼마 전까지 슬로비 카페에서 인턴을 하고 왔다”며 “이곳에서와는 또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요리로 입시를 준비할 계획인 친구, 그냥 요리가 좋아서 하는 친구, 영셰프스쿨에 와서 처음 요리를 해보게 된 친구 등 다양한 색의 친구들이었다.

영셰프스쿨을 졸업한 뒤 이들의 행보도 각양각색이다. 대학에 진학하기도 하고, 어엿한 요리사로 자리 잡기도 한다. 전혀 다른 길을 걷는 경우도 있다.

이선숙 선생님은 “영셰프스쿨을 운영하면서 어려움도 많았어요. 입학하자마자 관두겠다는 친구나 잘 하다가 결국 떠나는 친구가 늘 나오죠. 실제로 입학해서 끝까지 함께하는 친구들이 보통 절반 정도에요. 그래도 고무적인 건, 시간이 지나면서 선순환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는 거죠. 영셰프스쿨 초기 친구들 중엔 이태리 레스토랑의 헤드 요리사로 활동 중이거나, 요리공부로 유학까지 다녀온 경우가 있어요. 이제 그 친구들이 영셰프스쿨로 돌아와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해요. 과거엔 스승과 제자의 관계였다면, 이제는 동료가 되고 있는 거죠”라고 말했다.

음식으로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오가니제이션 요리. 그들이 만드는 음식은 유난히 더 맛있고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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