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민생경제연구소 공동기획]

소처럼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살림살이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지갑은 갈수록 얇아지는 듯하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민생 경제’ 위기는 단 한가지 원인으로 귀결될 수 없다. 다양한 구조적인 문제들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 중에는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각종 불공정한 시스템도 중심축 역할을 한다. <본지>는 시민활동가인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과 주요 민생 이슈를 살펴보고, 이 구조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고민해보고자 한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생각해야 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말이다. [편집자주]

 

편의점 업계가 생존 위기에 시달리면서 근본 해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분이 결정되자 편의점 가맹점주들이 들썩이고 있다. 편의점업은 고용 인력 특성상 최저임금 인상 이슈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업종이다. 인력 보수를 최저임금에 맞춰 지급하고 있는 만큼 가장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에 최저임금 인상으로 그야말로 생존권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며 집단 반발 움직임도 거세다.

◇ 편의점 4만개 시대… 누가 이들을 무한경쟁으로 내몰았나  

그렇다면 최저임금 인상 결정이 철회되면, 현 편의점주들의 겪고 있는 경영난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아마 대부분의 가맹점주들은 이 질문에 쉽게 ‘그렇다’ 답변을 하지 못할 것이다. 현재 편의점주들의 경영난은 여러 구조적인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 초래된 문제이라는 일반적인 시각이다.

시민활동가로서 소상공인 이슈에 주목해온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안타까운 시선을 보냈다. 안 소장은 “편의점 점주들도 인건비 문제가 핵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며 “다만 당장 부담으로 다가오니 반발을 하고 있는 것인데, 그 심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근본적인 문제를 놓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안 소장은 편의점주를 비롯한 소상공인들의 경영난을 가중시킨 4대 원인으로 ▲과당경쟁 ▲카드수수료 ▲본사 로열티 폭리 ▲높은 임대료 등을 제시해왔다. 그 중에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제시된 것이 ‘과당경쟁 구조’였다.

국내 편의점 시장은 그야말로 ‘포화상태’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 소속 편의점 5개사(CU·GS25·세븐일레븐·미니스톱·씨스페이스)의 총 편의점수는 지난해 말 기준 3만6,834개에 달했다. 회원사가 아닌 이마트24까지 합하면 숫자는 더 늘어난다.

편의점산업협회가 발표한 2010~2017년까지 편의점 점포수 증가 추이 및 점포당 인구수 변화 <그래픽=이선민 기자> [사용된 이미지 출처:프리픽(Freepik)]

편의점 업계에 따르면 국내 편의점 점포수는 올해 처음으로 4만개를 돌파했다. 이는 국민 1인당 매장 수는 ‘편의점 왕국’으로 불리는 일본에 비해서도 2배 이상 많은 수준이다.

국내에 처음으로 편의점이 생긴 것은 1989년이다. 세븐일레븐은 그해 5월 국내 편의점 1호(올림픽선수촌점)을 오픈하며 편의점 시대를 열였다. 이후 편의점 점포수는 완만한 증가세를 보이다 2000년대 접어들면서 증가세가 가팔라졌다. 2000년 2,826개였던 점포수는 5년만인 2005년 9,085개로 불어났다. 2007년 1만 개를 넘어서더니 2011년 2만개가 넘어섰다. 2016년에는 3만개 이상으로 불어났다.

점포 증가세가 가팔라진데는 크게 세가지 원인이 거론된다. 우선 고령층 세대들의 은퇴와 연관이 있다. 비교적 소자본을 투자해 제 2의 인생을 설계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은퇴자들이 대거 편의점 창업에 나섰다. 여기에 편의점 본사들이 공격적으로 가맹점을 모집하며 편의점수 증가를 부채질했다.

◇ 가맹본부, 무한 출점 경쟁… 편의점주만 피해 고스란히  

주요 편의점사들은 하나라도 가맹점을 더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영토전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불공정 행위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이동주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정책위원장은 귀띔했다. 이 정책위원장은 과거 한 가맹점주에게 들은 일화를 소개했다.

이 정책위원장은 “한 편의점 본사 직원이 슈퍼 사장에 편의점 전환을 유도하면서 사실상 협박에 가까운 말을 했다고 한다”며 “편의점 창업을 안 하면 근처에 지점을 내겠다고 한 것이다. 결국 슈퍼 사장은 편의점으로 간판을 바꿨다”고 말했다.

편의점 업계의 보복 출점 논란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얘기다. A 편의점과의 계약 만료 후 B사로 간판을 바꾼 전 점주 매장 바로 앞에 또 다른 A편의점이 들어서 분쟁이 생기는 일이 대표적인 예였다.

또 편의점 본사들이 공격적으로 출범 전략을 펼칠수 있었던데는 마땅한 규제가 없었던 것도 한 몫했다. 당초 편의점 업계는 1994년 ‘기존 편의점 80m 이내 출점 자제’ 자율규약을 만들어 출점을 제한했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000년 이 자율규약이 ‘부당한 공동행위금지 위반’에 해당된다며 이를 폐기했다. 이 규약이 폐기된 후 국내 편의점 점포수는 1년 만에 36.9% 증가하기도 했다.

이후 출점 분쟁이 늘어나자 2012년 공정위는 모범거래기준을 만들어 편의점 간 도보 거리 250m 이내 출점을 금지했다. 하지만 2년 만인 2014년 이 모범거래 기준마저 없앴다.

이후 업체별로 가맹 계약상 동일 브랜드 간 250m 출점 거리 제한을 두긴 했지만 무분별한 출점에 따른 피해를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타 브랜드 출점은 막을 길이 없어서다. 이에 출점 제약 규정이 없다보니, 최근 몇 년간 출점 경쟁은 이어졌다. 이에 따라 한국 편의점 시장은 그야말로 ‘한집 걸러 편의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이는 고스란히 가맹점주들의 피해로 이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 근접 출점 제한, 현재로선 최선의 대안 

지난 7일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후원주점에서 만난 편의점주 이호준(GS25 부천지역 경영주협의회 부천, 김포지역장) 씨는 “편의점주들이 살아나려면 과당경쟁 구조부터 해결이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씨는 편의점을 운영하면서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도 “과당경쟁”이라고 답했다.

이씨는 “인건비 상승이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문제의 핵심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소비자들의 주머니가 든든해야 소비가 이뤄지는 만큼 최저임금 인상이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 문제는 과당경쟁 구조를 어떻게 해소할지다”라고 말했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이 편의점 과당 출점 문제의 해법으로 근접 출점 제한 규정 신설을 주장했다. <시사위크>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현재로서 가장 최선의 대안은 근접 출점 제한 규정을 만드는 것이라고 안진걸 소장은 설명했다.

안진걸 소장은 “현재는 타 브랜드간의 근접 출점을 제한하는 규정만이 있는 단계”라며 “정부 차원에서 빨리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최근 편의점 업계에선 출점 제한 규정을 만들기 위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우선 한국편의점산업협회는 최근 근접 출점 자제를 핵심으로 하는 ‘자율규약안’ 마련이 가능한지 공정위에 법적 검토를 요청했다. 현재 공정위는 이를 두고 장고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서울시는 최근 담배판매권으로 출점을 제한하는 대책을 제시했다. 무분별한 편의점 출점으로 인한 과당 경쟁을 막기 위해 서울 내 담배소매 영업소 사이 거리 제한을 50m에서 100m로 강화하는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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