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민생경제연구소 공동기획

소처럼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살림살이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지갑은 갈수록 얇아지는 듯하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민생 경제’ 위기는 단 한가지 원인으로 귀결될 수 없다. 다양한 구조적인 문제들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 중에는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각종 불공정한 시스템도 중심축 역할을 한다. <본지>는 시민활동가인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과 주요 민생 이슈를 살펴보고, 이 구조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고민해보고자 한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생각해야 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말이다. [편집자주]

은행들.
서민들의 가계지출에서 이자비용의 부담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금리인상기를 틈타 은행들이 이자장사로 큰 수익을 거두고 있는 가운데 서민들의 가계부채는 1,500조원을 돌파했다.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요즘 흔히 쓰이는 신조어로 ‘텅장’이라는 말이 있다. 월급을 받아봤자 금세 돈이 빠져나가 ‘텅 빈 통장’이 된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최근 직장인들 600명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10명 중 6명은 다음 급여일 전에 월급을 모두 써 금전적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장이 이른바 ‘텅장’이 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16일로 집계됐다. 그리고 응답자 44%는 이렇게 빠르게 월급이 소진되는 원인으로 ‘대출빚’을 꼽았다. 

◇ 대출빚에 허덕이는 서민… 가계부채 1,531조원 

서민의 금융이자 지출 부담은 심각한 수준이다. 국민의 10명 중 4명은 1인당 8,000만원의 가계부채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이 나이스(NICE)평가정보로부터 제출받은 ‘담보건수별 주택담보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6월말 현재 우리나라 국민의 37%인 1,903만명이 가계부채를 갖고 있다. 부채총액은 1,531조원에 달했다. 이는 1년 전 대비 5.3%(77조원) 증가한 규모다. 
 
가계부채 보유자 중 631만명(33.2%)은 주택을 담보로 맡기고 금융사에서 돈을 빌렸다. 주택담보대출 총액은 978조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체 가계부채의 63.9%를 차지하는 규모다. 주택담보대출 보유자의 1인당 부채는 1억5,486만원에 달했다. 

가계빚은 왜 이렇게 천문학적인 수준까지 불어난 것일까.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빚 내서 집 사라’는 잘못된 부동산 정책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부가 부동산부양정책을 쓰면서 가계 주택담보대출은 대폭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 최근 몇 년간 정부가 각종 대출규제 정책으로 대책을 마련하고 있으나 서민의 가계빚 증가세는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서민의 이자지출 부담은 날로 가중되고 있다. 본격적으로 금리인상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2015년 말부터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서 ‘저금리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다. 이에 맞춰 국내 시중 대출금리도 들썩이기 시작했다. 정부가 기준금리 동결을 통해 시중금리 인상에 제동을 걸고 있으나, 상승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서민들의 가계지출에서 이자비용이 부담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금리인상기를 틈타 은행들이 이자장사로큰 수익을 거두고 있는 가운데 서민들의 가계부채는 1,500조원을 돌파했다./뉴시스
국내은행이 올해 상반기 예대마진으로 벌어들인 수익은 17조원에 달한다. /뉴시스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 변동 금리를 낼 때 기준으로 삼는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는 계속해서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서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9월 잔액 기준 코픽스 금리가 1.90%로 한 달 전과 비교해 0.01%포인트 올랐다. 잔액 기준 코픽스는 지난해 8월 이후 13개월 동안 쉬지 않고 올랐다. 이에 따라 은행들의 주택담보대출 변동 금리도 줄줄이 상승세를 보여왔다. 은행의 코픽스 연동 대출 금리는 조만간 5% 수준까지 치솟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 금리 인상기 틈타 '이자장사' 벌이는 은행 

이런 대출 금리 상승에 힘입어 금융사들은 ‘이자 장사’로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실적 잔치를 벌이고 있다.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등 국내 일반은행이 지난해 벌어들인 이자이익은 39조2,515억원에 달했다. 이는 전년대비 4.2% 늘어난 수치다.

이자장사로 큰 이익을 낼 수 있었던 데는 예대금리차(예금과 대출금리 간 차이)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것에서 기인한다. 잔액 기준 은행권 예대금리차는 1분기 2.35%포인트로 2014년 3분기 이후 3년 6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에 은행권은 올해 상반기 예대마진으로만 17조원을 벌었다. 서민들은 외면한 채 자기 뱃속 채우기만 바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은행권이 무분별하게 금리를 인상하지 못하도록 금리 산정 체계를 철저히 점검하고 이를 뒷받침 할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금융권 역시, 민생 경제를 살리기 위한 책임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 소장은 “은행권은 올해 가산금리 산정 조작 논란으로 큰 실망감을 안긴 바 있다”며 “이자장사로 제 뱃속만 채우는데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책임있는 자세를 보일 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 소장은 ‘금리인하요구권 활성화’도 서민의 이자비 경감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리인하요구권은 대출을 받은 차주가 신용상태가 개선된 경우 금융회사에 대출 금리 인하를 요구할 수 있는 제도다. 대출을 받은 금융 소비자가 은행 등 영업점을 방문해 신용등급 개선, 승진 등 관련된 증빙 서류를 제출하면, 금융회사가 이를 심사해 금리 인하 여부를 결정한다.   

금리인하 요구권 제도는 2003년 여신거래 기본 약관이 개정되면서 도입됐다. 2013년 이후 ‘금리안하요구권’으로 인한 은행이자절감액은 약 1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 “대출금리 상승 억제하고 금리인하요구권 활성화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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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시민의 빚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해 은행들의 이자폭리를 억제하고, 금리인하요구권 제도가 활성화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시사위크

문제는 제도 자체를 모르는 소비자들이 많다는 점이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이 지난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금융소비자 10명 중 6명 이상(61.5%)은 금리 인하 요구권이 있는지도 모른다고 응답했다. 안 소장은 “은행들이 제대로 홍보를 하지 않아왔던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올해초 16개 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까지 은행의 신용·담보대출 잔액 669조9,707억9,864만원 가운데 금리인하 요구가 수용된 대출은 5조3,150억107만원에 그쳤다. 

은행마다 수용 기준 자체가 다르고 영업점에서 대면으로 신청이 가능하다는 불편함 때문에 제도가 활성화되지 못한 것으로 풀이됐다.

여기에 은행이 금리인하요구를 무력화시킨 사례도 상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과 KEB하나, 신한, 우리 등 4대 시중은행로부터 받은 ‘금리인하요구시 감면금리 축소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고객으로부터 금리 인하 요구를 받았을 때 감면금리를 임의로 축소해 금리를 낮춰주지 않은 사례가 194건에 달했다. 이를 두고 이 의원은 “차주의 신용도가 상승했는데도 은행이 마음대로 감면금리를 축소해 금리 혜택을 받지 못하게 한 것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겠는가”라며 “은행이 부당하게 금리를 조작할 수 없도록 법개정이 필요하다”고 꼬집은 바 있다.  

주목할만한 점은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최근 제도적인 개편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금리인하 요구권 자체가 법제화된다. 지금까지는 금융사들이 자율적으로 시행해왔으나 관련 법안이 9월말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했다. 또 앞으로 은행 창구에 가지 않고도 모바일과 인터넷 등 비대면 채널을 통해 대출금리 인하를 요구할 수 있게 됐다. 정당한 사유로 금리인하요구권을 거부한 금융사는 적발 시 처벌한다는 법안도 마련된다. 

안 소장은 “이전보다 금리인하요구권을 행사하는 절차가 간편해진 만큼, 금융소비자에게 적극적으로 알려 금융비용 부담을 낮추도록 유도하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신용도가 안 좋은 취약계층을 위한 서민금융상품도 적극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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