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로 7명의 사망자를 낸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현장.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고시원 등 주택이외의 거처에 거주하는 가구가 35만이 넘는다.
화재로 7명의 사망자를 낸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현장.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고시원 등 주택이외의 거처에 거주하는 가구가 35만이 넘는다.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새벽 5시 경 지하철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승객은 40~60대 중장년 남성들이다. 옷차림이 비슷하다. 등산복 바지에 운동화, 아웃도어 점퍼에 배낭을 메고 있다. 등산객들은 아니다. 아침 일찍 용역회사에 나가 일거리를 받으려는 일용직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1분이라도 먼저 가야지 조금만 늦어도 하루를 통째로 버릴 수 있다”는 걱정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지난 9일 새벽 발생한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화재로 사망자 7명을 포함해 1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40~60대 남성들로 대부분은 일용직 근로자였다. 임대료는 창이 없는 방 25만원, 창이 있는 방은 30만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층별 바닥면적 200㎡에 방은 2층 24실, 3층 29실이다. 1인당 전용공간은 2평 남짓으로 싱글침대 하나를 넣으면 빈 공간이 거의 없다. 일자리가 많은 지역에 가까우면서도 저렴한 곳이 필요했기에 입주자들은 열악함을 감수했다.

◇ ‘1인 가구’가 도심 고시원으로 몰리는 이유

국토교통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주택이외의 거처’ 거주 비중은 계속 증가추세다. ‘주택이외의 거처’라 함은 고시원·고시텔, 숙박업소, 판잣집, PC방 등 다중이용업소 등을 일컫는다. 2018년 6월 30일 기준 36만9,501 가구가 ‘주택이외의 거처’에 거주하고 있었으며, 이중 고시원이 41%로 가장 많았다. 평균 임대료는 33만4,000원으로 집계됐다. 특징적인 것은 ‘주택이외의 거처’ 거주자의 대부분(79.2%)이 근로자였으며, 200만원 이하의 저소득자들이었다는 점이다.

사고는 충분히 예상됐지만, 대책은 인명피해가 발생하고서야 부랴부랴 나왔다. 고시원 스프링클러를 의무화하는 지엽적 대응부터, 공공임대주택 공급량 증가 등 포괄적 대책까지 쏟아졌다. 하지만 시세의 30% 수준의 공공임대주택 대량공급은 이들의 주거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적절한 대책은 아니다. 서울 외곽지역 혹은 경기도 인근은 좋은 정주환경을 제공하지만, 일터나 학교에서 멀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무엇보다 각자 원하는 주거형태가 조금씩 다른데 일률적인 공공임대주택으로는 결코 다양한 거주자를 만족시킬 수 없다.

다행스러운 것은 정부도 이 문제를 인식하고 과거의 대규모 재개발·재건축에서 소규모 도시재생으로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민간참여 매입임대주택 사업이 대표적이다. 공공은 자금지원 등 보조적 역할을 하고, 수요와 공급 등 시장의 기능을 이용해 주거문제를 해결해보겠다는 것이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마련한 임대에 들어가지 않는 것은 임대주택과 거주 공간의 거리상 격차와 인적네트워크 등이 맞지 않기 때문”이라며 “도심 내 전세·매입임대를 적극적으로 확보해 현재 거주하는 곳에서 공공임대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 ‘도시재생’ 구호는 좋은데 지원은 형식적

올해 7월 서울 강남구 삼양동 옥탑방에서 여름을 보냈던 박원순 시장과 강난희 여사. /뉴시스
올해 7월 서울 강남구 삼양동 옥탑방에서 여름을 보냈던 박원순 시장과 강난희 여사. /뉴시스

문제는 민간에 대한 정부지원이 ‘형식적’이고 틀에 갇혀있다는 데 있다. 민간참여 매입임대주택 사업의 잠재적 사업자라 할 수 있는 사회주택 사업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다.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의 경우 좋은 토지를 서울시에 매입을 추천하더라도 원주인이 감정평가액 보다 조금이라도 높은 값을 부르면 거래가 중단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혹여 문제가 생겼을 경우 책임을 회피하려는 공무원의 속성 때문이다.

어렵게 토지매입과 재임대에 성공해 착공에 들어가면 ‘금융’ 문제가 발생한다. 현행 금융지원이 분양과 소유에 초점이 맞춰진 PF 형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원인이다. 임대사업자는 30년의 장기간에 걸쳐 임대료 수익을 얻는데 대출상환 시기는 짧게는 3년, 길어도 8년 안에 끝내야 하는 구조다. 반면 개발에 따른 지가상승 등의 이익은 오롯이 공공이 가져간다. '모든 리스크는 민간이 쥐고 있는 형태'여서 민간참여를 유도하겠다는 정부 정책은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사회적 기업 아이부키 이광서 대표는 “임대주택 사업은 2~3년 안에 끝나는 분양사업과 전혀 다르다. 30년을 보는 사업”이라며 “임대주택 사업에 맞는 금융과 정책적 이해가 덜 돼 있다. 패러다임 자체가 아직 임대로 넘어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회주택 사업자 ‘녹색친구들’의 한 관계자는 “(사업자들이) 저리의 토지임대에 금융지원까지 큰 혜택을 받고 있다고 당국이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며 “금융쪽도 리스크를 피하는데만 주력하면서 민간에는 공공역량을 키우라고 한다.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지원을 해주고 그런 말을 했으면 좋겠다”고 성토했다.

당국이나 서울시도 인내자본 공급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는 여전히 더디다. 이에 업계는 정책결정권자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대규모 개발에서 도시재생으로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한 박원순 시장에 대한 기대는 남다르다. 사회주택이 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이도 박 시장이다. 국토부도 주무관청이지만, 도심 주거취약계층 문제의 대부분은 서울이기 때문에 박 시장의 결단이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다.

사회주택에 거주하는 한 세입자는 이런 말을 했다. “행정을 하시는 분들이 실상은 잘 파악하고 있지 못한 것 같다. 보고서를 요구할 때도 지출관리, 금액, 방문자 같은 피상적 숫자에만 연연한다. 이것을 보고 전체맥락을 파악할 수 있을까. 박원순 시장님이 옥탑방 한 달 살기를 하신다고 들었다. 괜히 ‘보여주기 쇼’라는 핀잔을 듣지 말고, 잘 만들어진 사회주택이나 매입임대주택에서 한 달 살아보시기를 권하고 싶다. 그래서 도시재생도 하고 주거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사회주택 사업 보급에 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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