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로(hero)를 다룬 이야기는 흥행불패다. 악당과 대적하는 주인공이 고난을 극복하고 정의를 쫓아가는 과정 속에서 대리만족을 얻는다. 여기엔 세상을 향한 일침이 있고, 잠들어있던 인류애를 깨운다. 어쩌면 우린 각박한 현실에서 나를 도와줄 히어로를 기다리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는 멀리 있지 않다. 당장 세상을 바꿀 순 없어도 따뜻한 뉴스로 종종 찾아온다. 목숨을 걸고 이웃을 구한 시민 영웅들이다. 모든 이야기의 결론은 ‘함께 살자’는 것이다. 옳고 그름이나 높고 낮음이 없다. 당신도 누군가의 히어로가 될 수 있다. | 편집자주

지난해 3월, 용산 원효로 다가구주택 화재사고 당시 현장에서 구조작업을 펼쳤던 용산소방서 김성수 예방주임은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화상을 입었던 그의 손에는 영광의 상처가 남았다. / 김성수 예방주임 제공
지난해 3월, 용산 원효로 다가구주택 화재사고 당시 현장에서 구조작업을 펼쳤던 용산소방서 김성수 예방주임은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화상을 입었던 그의 손에는 영광의 상처가 남았다. / 김성수 예방주임 제공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신고를 받고 출동할 당시만 해도 일이 커질 줄 몰랐다. 화재가 발생한 건물의 인명 대피는 완료된 상태였고,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옆건물에 있었다. 뜨거워진 열기와 차오르는 연기에 아마도 겁에 질린 사람들이 건물을 못 빠져 나오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실제 그랬다. 건물에 도착하고 보니 계단에서부터 연기가 꽉 찼다.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은 총 5명. 이들을 구하기 위해 2인 1조, 2개조가 투입됐다. 한 조는 4층에서 1명을 대피시켰고, 다른 한 조는 3층에서 아이 2명을 데리고 나왔다. 이제 남은 사람은 아이들의 부모였다. 한 조가 남아 구조작업을 시작했다. 그때다. 불길이 훅 몰아쳤다.

◇ “모두 살아서 나왔으니 감사하다”

사건은 ‘용산 원효로 다가구주택 화재사고’로 불린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솟구치는 불길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던 아이의 엄마도, 아이의 아빠도 탈출에 성공했다. 당시 끝까지 현장에 남아있었던 구조대원은 용산소방서 김성수(46) 소방위와 최길수(37) 소방교로 알려졌다. 김성수 대원은 침대 메트리스를 들어서 불길이 들어오는 출입구를 막았고, 최길수 대원은 창문으로 아이의 부모를 내보냈다. 그제야 탈출을 시도한 두 대원은 부상을 피할 수 없었다. 김성수 대원은 얼굴과 손에 화상을 입었고, 3층에서 뛰어내린 최길수 대원은 허리뼈가 골절됐다. 지난해 3월, 두 대원의 목숨 건 구조작업은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줬다.

벌써 1년도 훨씬 지난 사건이지만 김성수 대원은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마음이 불편하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다. 그는 지난 20일 용산소방서 인근에서 <시사위크>와 만나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인명피해 없이 모두 살아서 나왔으니 감사하다”면서도 “심리적으로 완전히 회복된 상태는 아니다. 극복 과정에 있다”고 털어놨다. 문제는 손이었다. 화상으로 피부 이식 수술을 했다. 처음엔 치료가 먼저라 잘 몰랐다가 회복 단계에서 상실감을 맛봤다. 손으로 쥐는 힘이 약해졌고, 자꾸만 뻑뻑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전처럼 구조작업을 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김성수 예방주임은 지난 7월부터 화재 예방을 위한 홍보와 교육에 힘쓰고 있다. 그는 “화재도 안전도 관심에 따라 달라진다”면서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을 경고했다. / 김성수 예방주임 제공
김성수 예방주임은 지난 7월부터 화재 예방을 위한 홍보와 교육에 힘쓰고 있다. 그는 “화재도 안전도 관심에 따라 달라진다”면서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을 경고했다. / 김성수 예방주임 제공

결국 김성수 대원은 지난 7월부터 행정업무로 교체했다. 올해 1월 복귀한 뒤 현장안전담당관으로 6개월간 활동한 끝에 내린 결정이다. 그는 “몸이 온전해야 동료들과 팀워크를 이뤄 구조 활동을 할 수 있는데, 손이 불편하니까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할 수가 없었다. 저는 물론 동료들에게도 부담을 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지금은 대원이 아닌 ‘예방주임’으로 불린다. 화재 예방을 위한 홍보와 교육이 주요 업무다. 가족들은 한시름 덜었지만 정작 자신은 “사무실에 종일 앉아서 근무를 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웃으며 말했다. 오죽할까. 1999년 10월 임관 이래 사건 직전까지 18년 가까이 구조대원으로 일했던 그다.

김성수 대원은 “소방관은 언제, 어디서, 어떤 현장을 맞딱뜨리게 될지 모른다. 자다가도 나가고, 밥 먹다가도 나가고, 하다못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가도 나가야 한다”면서 “생명을 지키는 것만큼 큰 일이 없다. 생활 속의 간단한 안전사고들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남다르다. 여기서 보람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험한 현장일수록 생명의 소중함이 더 크게 와 닿았다. 그는 “처음에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놓인 사람들을 마주하는 게 힘들었다. 하지만 이 일을 업으로 삼으려면 감당해야 했고, 최선을 다해야 했다”고 덧붙였다.

사람을 살리고 돕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과 반대로 가족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을 나타냈다. 용산 다가구주택 화재사고 당시에도 ‘이러다 잘못될 수 있겠구나’ 싶은 생각이 미칠 때가 있었다. 그때 떠오른 얼굴이 바로 가족들이다. 김성수 대원에게는 아내와 중학교 3학년생인 큰딸, 초등학교 2학년의 아들이 있다. 그는 “저뿐 아니라 소방관을 남편으로, 아빠로 둔 가족들이 감수해야 하는 심적 부담과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면서 소방가족들을 위로했다. 저녁 9시, 기자와 만남을 마친 김성수 대원은 다시 용산소방서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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