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수가 두산 베어스에 전격 합류했다. /두산 베어스 페이스북
배영수가 두산 베어스에 전격 합류했다. /두산 베어스 페이스북

[시사위크=김선규 기자] ‘푸른 피의 에이스’에서 ‘베테랑 독수리’로 거듭났던 배영수가 이번엔 곰군단에 합류했다. 롤러코스터 같은 그의 야구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배영수의 야구인생은 화려하게 시작됐다. 대구 경북고의 에이스로 주목받던 그는 2000년 고향의 명문팀 삼성 라이온즈로부터 1차 지명을 받고 프로무대에 입성했다. 데뷔 시즌 가볍게 프로의 맛을 본 배영수가 스타로 등극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2001년 35경기에 등판해 13승 8패 평균자책점 3.77을 기록하며 일찌감치 자신의 실력을 입증했다.

이후 2002년엔 극심한 ‘2년차 징크스’로 아쉬움을 남겼으나, 2003년 13승으로 부활하더니 2004년엔 17승을 거두며 정점을 찍었다. 또한 2003년부터 2005년까지 3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 2004년부터 2006년까지 3년 연속 2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며 ‘푸른 피의 에이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하지만 에이스의 무게감은 결국 부상으로 이어졌다. 2006년 팔꿈치 부상을 당한 그는 진통제를 맞고 경기에 나서는 투혼을 발휘하며 팀을 통합우승으로 이끌었지만, 이후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당시 그의 팔꿈치 인대는 아예 끊어진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부상으로 2007년을 통째로 쉰 배영수는 2008년 전격 돌아왔다. 당초 예상 및 권유보다 빠른 복귀였다. 그래도 그의 재기는 성공적이었다. 타자를 압도하는 강속구는 보기 어려워졌지만, 노려한 피칭으로 9승을 챙겼다.

그렇게 다시 날아오르는 듯 했던 그는 2009년 최악의 추락을 경험했다. 올라오지 않는 구속과 함께 자신감은 물론 성적도 떨어졌다. 선발에서 계투로, 그리고 다시 2군으로 내리막길을 걸은 그의 2009년 성적은 23경기 1승 12패 평균자책점 7.26이었다.

이후에도 배영수의 롤러코스터 야구인생은 계속됐다. 2009년의 참혹한 성적을 딛고 2010년과 2011년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더니, 2012년 12승을 거두며 재차 두 자릿수 승리를 거두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2013년엔 14승으로 공동다승왕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2004년 이후 9년 만의 다승왕 복귀였다. 2014년에도 배영수는 선발 한자리를 지키며 무난한 활약을 펼쳤다.

그렇게 영원히 삼성 라이온즈의 푸른 유니폼만 입을 것 같던 배영수였지만, 2014년이 마지막이었다. FA자격을 취득한 그는 삼성 라이온즈와 다소 간의 잡음을 남긴 채 계약에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팬들은 배영수의 잔류를 요청하는 신문광고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배영수는 한화 이글스와 계약을 맺었다.

한화 이글스 팬들의 많은 기대를 받으며 주황색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배영수. 하지만 그의 야구인생은 다시 내리막길이 시작됐다. 한화 이글스에서 첫 시즌 4승 11패 평균자책점 7.04의 저조한 성적을 남겼고, 2년차에는 팔꿈치 부상으로 아예 경기에 나서지도 못했다. 팬들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고, ‘먹튀’라는 쓰라린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그래도 배영수는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 2017년 다시 선발진에 합류했고, 어려운 팀 여건 속에서 무난한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부정투구 논란으로 오명을 남기기도 했다. 이어 올 시즌엔 11경기 출전에 그치며 다시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어느덧 그의 나이는 30대 후반에 접어들었고, 한화 이글스가 재계약 불가 방침을 전하면서 야구 인생이 끝날 위기를 맞았다.

그런데 그의 야구인생은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 두산 베어스와 ‘깜짝 계약’을 발표하며 세 번째 구단에 입단한 것이다. 이로써 배영수는 다시 마운드에 오를 기회는 물론 우승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까지 맞게 됐다.

이렇듯 배영수의 야구인생은 말 그대로 ‘롤러코스터’였다. 화려하게 날아오를 때도 있었고, 끝없이 추락한 적도 있었다. 이제 두산 베어스에서 다시 출발하게 될 배영수의 롤러코스터가 또 어떤 행보를 보여주게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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