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남북정상회담이 세 차례 열렸다. 4·27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는 등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도 진행중이다. 다만 대북정책을 둘러싼 국내 여론은 좀처럼 하나로 모아지지 않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우리보다 앞서 통일을 이룬 독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독일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평화 통일'을 이룩했다는 점에서 늘 우리의 주요 연구대상이었다. 이에 <시사위크>는 독일 통일과정에서 있었던 정책 등을 돌아보고, 향후 대한민국 대북정책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서독은 1970년대 신동방정책의 일환으로 통과협정과 기본조약 등을 체결하고 동서독 간 교류협력을 추진했다. 그 과정에서 서독 역시 막대한 비용을 치렀으며, 내부에서는 '퍼주기' 비난이 제기된 바 있다. 사진은 독일 통일 전후로 분단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고 있는 모습. / 독일정부 공식 유튜브 영상 캡쳐
서독은 1970년대 신동방정책의 일환으로 통과협정과 기본조약 등을 체결하고 동서독 간 교류협력을 추진했다. 그 과정에서 서독 역시 막대한 비용을 치렀으며, 내부에서는 '퍼주기' 비난이 제기된 바 있다. 사진은 독일 통일 전후로 분단의 상징인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고 있는 모습. / 독일정부 공식 유튜브 영상 캡쳐

[시사위크=김민우 기자] 4·27 판문점 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 이후 문재인 정부는 남북 경제협력인 신북방정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사업은 남북 철도 및 도로 연결·현대화 사업이다. 철도연결 남북 공동조사가 이뤄졌고, 경의선 도로의 남측 구간인 문산∼도라산 구간 고속도로 건설공사가 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여전히 많다. 남북 철도 공동조사는 유엔이 대북제재를 면제해 가능했지만, 실제 착공식은 미국이나 유엔과의 추가협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또 북한 비핵화의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남북철도 연결 사업에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는 것을 놓고 야권 중심으로 '대북 퍼주기'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우리보다 앞서 통일을 이뤘던 서독도 1970년대 신동방정책의 일환으로 통과협정과 기본조약 등을 체결하고 동서독 간 교류협력을 추진했다. 그 과정에서 서독 역시 막대한 비용을 치렀으며, 내부에서는 '퍼주기' 비난이 제기된 바 있다.

◇ 교통 인프라 구축 비용 부담

서독과 우리나라의 공통점은 분단국에 대한 교통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비용을 지불한 주체라는 점을 꼽을 수 있다.

1972년 동서독이 맺은 통과교통조약의 후속 보완조치가 1975년, 1978년, 1980년 이뤄졌는데, 서독이 여기에 투자한 비용은 약 24억 마르크 수준으로 추정되고 있다. 동서독을 잇는 신설 및 기존 고속도로에 대한 보수비용 모두를 서독 정부가 지불했다. 동독 정부는 서독으로부터 받은 비용으로 고속도로 건설 및 유지를 담당했다.

서독의 재정지원 내역은 구체적으로 1975년 니더작센주의 헬름슈테트와 베를린 간 고속도로 보수공사에 2억5,950만 마르크, 1978년 11월 합의에 따라 베를린과 함부르크 간 고속도로 보수공사에 12억 마르크 등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남북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비용으로 수조~수십조원이 추산되고 있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2014년 북한 인프라 개발 비용으로 철도 773억달러(86조원), 도로 374억달러(42조원)로 추정한 바 있다. 다만 북한 철도가 일제시대 수준으로 1945년 이후 전혀 발전이 없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당초 예상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갈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히 남북 철도연결 사업에 대한 북한의 재정 지원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30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비무장지대내 경의선철도통문안으로 남북공동철도조사단을 태운 열차가 들어가고 있다. / 뉴시스
30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비무장지대내 경의선철도통문안으로 남북공동철도조사단을 태운 열차가 들어가고 있다. / 뉴시스

◇ 서독, 인적교류 확대 집중…한국, 남북 경제협력에 방점

다만 이같은 교통 인프라 구축에 대한 서독과 우리나라의 방법은 다소 차이점이 있다. 서독의 경우, 동독 안의 '육지의 섬'인 서베를린 시민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동서독 인적교류에 방점을 뒀다. 반면 우리나라는 남북 철도연결을 통한 물적교류, 즉 경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동서독은 철도와 도로 공사 등이 포함된 통과교통조약과 기본조약을 맺은 1972년 이후부터 인적교류 범주와 숫자가 크게 늘어났다. 동독 정부는 1972년부터 동독주민에 대해 서독에 거주하는 가족의 생일, 결혼, 사망 등 소위 긴급가사 사유로 인한 서독 방문을 허용했다. 그전까지는 연금수령자(남성 65세, 여성 60세)의 제한된 범위에서만 서독 방문이 가능했다. 1975년에는 동독 주민 130만명이 서독을 방문하기도 했다.

서독인이 동독을 방문하는 경우는 더욱 많아졌다. 가령 연간 방문 횟수나 방문 일수(연 30일 제한) 등이 증가했고, 친척 방문으로만 한정됐던 방문 목적도 스포츠, 문화, 종교 교류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됐다. 서독에서 동독으로 여행하는 건수는 1972년 150만 건, 1973년에는 230만 건이었다. 서베를린 주민들의 동베를린과 동독 방문이 특히 많았는데, 1973년에만 380만 건에 달했다.

이러한 인적교류가 가능했던 것은 서독이 서베를린 통과 여행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 수수료, 기타 비용 등을 일괄적으로 부담하고, 이를 동독에 매년 지불하면서다. 통행료일괄부담금의 규모는 1972~1975년 연 2억3,490만 마르크에서 1976년~1979년에 는 연 4억 마르크, 1980~1989년에는 5억 2,500만 마르크로 계속 상향조정됐다.

이 비용은 모두 서독 마르크로 동독에 지불됐는데, 가장 중요한 고정수입원이자 외환 부족을 해소하는 데 기여했다. 1972년부터 1989년까지 동독은 통행료일괄부담금 명목으로 총 79억 마르크를 서독으로부터 수령했다.

서독의 이러한 무상에 가까운 동독 지원은 1990년 통일이 이뤄지던 당시까지도 '퍼주기'란 비난에 직면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교통교류를 통한 동서독 국민 간 민족적 동질성을 회복하고, 통일이 된 이후 동독 지역의 교통인프라 수준 향상과 경제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남북도 지난 4·27 판문점 선언을 통해 ▲각계각층의 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 왕래·접촉 활성화 ▲이산가족 문제 해결 ▲남북 철도·도로 현대화 사업 등에 합의했다. 다만 당장 남북 철도 연결에 집중하는 모습인데, 특히 인적교류보다는 물적교류 확대 등 경제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는 통일부가 지난달 29일 남북 철도 연결·현대화를 위한 현지 공동조사에 대해 "한반도 경제공동체, 신경제구상, 동아시아철도공동체 등 우리가 추진하고자 하는 모든 구상의 출발점이 남북 철도 연결과 현대화"라고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다. 남북 철도가 연결되더라도 이를 이용한 남북 상호방문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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