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여성공감 이진희 사무국장

‘세류성해(細流成海).’ 가는 물줄기가 모여 큰 바다를 이룬다는 뜻이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작은 힘이 모이면 큰 변화를 일으킨다는 의미와도 맥이 닿아있다. 우리는 이미 지난 촛불혁명을 통해 이를 경험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꾼 것은 거대 권력도 아니고 정치적인 어젠다도 아니었다. ‘국민주권’을 위해 행동했던 ‘시민들의 힘’이었다. 하지만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이에 <시사위크>에서는 대한민국 변화를 이끄는 중심, ‘시민운동가’들의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제언을 경청해본다. [편집자주]

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만난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은 “장애여성은 장애와 성 차별에 교차적인 경험을 하는 존재”라며 “복합적인 측면에서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사진=김경희 기자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된지 어느덧 10년이 훌쩍 흘렀다. 장애를 사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고 장애인들의 권리를 구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법률은 제대로 작동을 하고 있을까. 선뜻 고객을 끄덕이지는 못할 것이다. 여전히 많은 장애인들이 사회적, 제도적 차별에 시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여기에 여성 장애인들은 성차별까지 더해져 더 복합적인 어러움에 마주하고 있다. 가부장적 문화와 남성중심의 사회체제 속에서 더 날카로운 차별에 시달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시민단체인 장애여성공감은 장애여성이 제도와 사회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대상화되고 배제받고 있는지를 20여년간 치열하게 고민하고 문제를 제기해왔다. 지난 4일 장애여성공감의 이진희 사무국장를 만나 그 고민을 함께 나눠봤다.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은 “장애여성공감 출범 초창기에는 많은 공격을 받았다”며 “장애인자립운동의 정체성과 배치된다는 지적도 있었다”고 전했다. / 사진=김경희 기자

“무엇이 보편적이고, 무엇이 정상적인가. 혹시, 그 이면에 누락되거나 소외된 부분은 없을까.”

이진희 사무국장은 장애여성공감의 정체성이 이런 질문에 근간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1998년 설립된 장애여성인권단체인 장애여성공감은 여성장애인들이 자신의 경험을 드러내고 연대하기 위한 소모임에서 출발했다. 지금은 이런 여성장애인인권 단체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만, 당시에는 흔치 않았다고 한다.

◇ 여성장애인들, 제 목소리를 내다  

“장애인 이슈 여성과 관련한 의제들이 다양한 권리 중 하나로 다뤄지긴 했지만 협소했다. 장애인운동 안에서 장애여성 이슈는 부차적인 수준에 그쳤고, 이 때문에 장애여성시민단체들도 거의 없었다. 중요한 의제가 아니다보니, 여성 장애인들이 목소리를 내기도 어려웠다. 이런 부분에 문제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주축이 돼, 만들어진 것이 장애여성공감이다. 여성장애인들이 장애와 여성 정체성이 교차하는 복합적인 경험을 하는 존재라는 점, 이를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봤다.” 
 
하지만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장애인 운동권 내에서도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장애인 운동을 분열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모든 장애인 영역을 포괄하는 장애인자립생활운동의 정체성과도 배치된다는 비판도 이어졌다.

“초기에는 안 좋게 보는 시선이 많았다. 우리는 여성만의 지원을 목표로 하는 게 아니었다. 장애인 운동과 자립생활운동에서 누락된 장애여성의 경험과 젠더적 관점을 생각해보고,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것이었다.”

장애여성공감은 안팎의 날카로운 시선을 견디며, 꿋꿋이 제 갈 길을 걸어왔다. 그러면서 다양한 지원, 교육, 연구, 시민활동을 통해 국내 ‘장애여성운동’의 기반을 닦는 역할을 했다.  2001년 연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 피해를 입은 장애여성의 다친 마음을 어루만졌다. 2005년 만든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 ‘숨’은 장애여성의 자립생활을 지원하는 든든한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숨은 장애인의 자립생활에 대한 조사·연구 사업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교육사업도 집중해왔다. 장애여성이 여성으로서 정체성을 바로 알고, 주체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교육과 소통 프로그램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또 제도권 교육에서 배제된 장애여성을 위한 장애여성 학교도 매년 열고 있다. 한글반, 연극반, 합창반, 미술반, 인권반 등을 만들어 자유롭게 소통하고 학습하도록 하고 있다.

◇ 장애여성, 싸우고 소통하며 서로를 이해하다 

문화활동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2003년에 창단한 장애여성공감의 극단 ‘춤추는 허리’는 장애여성인들이 주축이 된 극단이다. 장애여성이 겪는 삶과 현실을 ‘몸’으로 이야기하기 위해 장애여성들이 모여 만들었다. 이 사무국장은 “수많은 장애여성 회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경험은 단체가 지금까지 올 수 있는데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며 “항상 아이디어와 아젠다를 준다. 회원들이 없었다면 이 많은 활동을 이어올 수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원들에게 장애여성공감은 어떤 의미일까. 이 질문에 이 사무국장은 한 회원이 들려준 얘기로 그 대답을 대신했다.

“한 회원이 그랬다. 장애여성공감에 오기 전까지는 ‘너는 어떻게 생각해’ ‘니 생각대로 해봐”라는 말을 단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다고. 그런데 ‘여기는 그런 말을 서로에게 할 수 있는 곳이고, 지지받을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장애여성공감의 커뮤니티 안에서 회원 분들은 자유롭게 토론하고, 때론 날카롭게 서로를 비판한다. 갈등 속에서 실패도 경험한다.”

장애여성공감은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이진희 사무국장은 “오랜 역사를 이어오기까지 가장 큰 원동력은 회원들이었다”며 “항상 아이디어를 주고, 기반이 돼 줬다”고 설명했다. / 사진=김경희 기자

이 사무국장은 “매일 싸운다. 하지만 진짜 동료가 되려면 갈등을 겪을 수 밖에 없지 않은가”라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장애여성 회원들은 서로 몸을 부대끼면서 성장했고, 장애여성인권, 탈시설화, 장애인차별금지를 위한 제도 개선 등에 목소리를 내왔다. 이런 목소리들이 모여, 제도 개편이 이뤄지는 성과도 있었다. 장애여성 인권 이슈에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도 성과 중 하나다.

물론 갈 길은 멀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2008년 제정됐지만 여전히 많은 장애인들이 다양한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 장애인 여성의 성을 바라보는 시각도 편협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게 이 사무국장의 지적이다.

◇ 성폭력 문제에 가려진 성적 주체성 

이 사무국장은 “장애여성의 성이라고 하면, 아직도 성적인 취약성만이 부각되고 있다”며 “장애여성의 이슈에서 성폭력 문제만 집중되는 것도 문제다. 그렇게 되면, 장애인들의 성적 쾌락이나 섹슈얼리티에 대한 이해는 가려지거나 소외되곤 한다”고 지적했다.

이 사무국장은 단순한 잣대와 기준으로 해법을 찾을 수 없다고 봤다. 주거권을 이해하는 데도 복합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시설에서 나온다고 해서, 탈시설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집도 시설이 될 수 있다. 많은 장애여성들이 가정 안에서 불평등한 관계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장애인이 집에서 충분한 공간 점유력을 갖고 있지 못하고 있다면, 집도 시설이나 마찬가지다.”

이 뿐만이 아니다. 이동권 확보 문제도 조금 더 세밀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게 이 사무국장의 생각이다. 지난해 10월 신길역에서 한 장애인이 리프트 추락 사고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는 사고가 있었다. 지난 10월 열린 1주기 행사에서 장애인 단체들은 “서울시는 2022년까지 모든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고 계획했으나, 아직까지 구체적인 실현 계획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장애여성공감은 내년에도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 힘을 쏟을 예정이다. 이진희 사무국장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단순히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모든 차별은 조금씩 형태가 다를 뿐, 모든 소수자들을 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사진=김경희 기자

이 사무국장은 “이동권의 문제는 중요하다. 이동권이 제한된다는 것은 삶의 반경과 관계를 축소시키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다만 “인프라 구축과 사회 인식 개선은 함께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많은 장애인들이 이동할 때, 차별적 시선을 경험한다. 아무리 인프라가 깔려도, 일반 시민들이 장애인들의 이동권이 왜 중요한지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다”고 강조했다.

◇ “차별은 장애만의 문제 아냐, 차별금지법 제정 필요” 

노동 시장의 차별 문제도 심각하다. 특히 여성의 경우, 남자 장애인 보수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이 사무국장은 설명했다.

“노동시장에서 장애인들의 노동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최저임금을 못 받는 노동자가 9,000명에 달한다. 일 못하는 장애인들이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적은 숫자가 아니다. 애초에 제도적으로 차별 조건이 만들어졌다. 최저임금적용 예외 대상에 장애인의 보호작업장이 포함돼 있는 것이 일례다. 수많은 발달 장애인들이 보호작업장에 일하면 받는 돈이 한달에 5~10만원 수준이다. 그것도 월급이라고 하지 않는다. 교육비라고 한다. 애초에 노동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셈이다.”

이 사무국장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단순히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이런 차별들은 조금씩 형태가 다를 뿐, 모든 소수자들을 향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에 이 사무국장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반드시 제정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차별과 인권에 대한 사회적 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첫걸음이라는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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