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철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국장

‘세류성해(細流成海).’ 가는 물줄기가 모여 큰 바다를 이룬다는 뜻이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작은 힘이 모이면 큰 변화를 일으킨다는 의미와도 맥이 닿아있다. 우리는 이미 지난 촛불혁명을 통해 이를 경험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꾼 것은 거대 권력도 아니고 정치적인 어젠다도 아니었다. ‘국민주권’을 위해 행동했던 ‘시민들의 힘’이었다. 하지만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이에 <시사위크>에서는 대한민국 변화를 이끄는 중심, ‘시민운동가’들의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제언을 경청해본다. [편집자주]
 

지난 18일 윤철한 경실련 국장이 서울 종로구 동숭동 경실련에서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사진=김경희 기자
지난 18일 윤철한 경실련 국장이 서울 종로구 동숭동 경실련에서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사진=김경희 기자

[시사위크=범찬희 기자] “처음에는 한 3~4년 정도 할 줄 알았죠.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재밌더라구요. 그렇게 시민운동이 저의 천직이 됐습니다. 하하.” 시민운동가의 길에 들어서게 된 계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그의 모습에서 경실련 ‘짬밥’ 이인자로서의 여유가 느껴졌다. 지난 18일 ‘젊음의 거리’ 서울 종로구 동숭동 경실련에서 이뤄진 두 시간 가량의 인터뷰에서 김 국장은 시종일관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문재인 정부에 대한 냉혹한 평가와 동료, 후배들에게 따끔한 충고를 하는 데 있어서는 주저함이 없었다. 외유내강. ‘GMO표시제도’, ‘홈플러스 깨알고지’, ‘가습기살균제 참사’ 등 우리 사회의 굵직한 현안이 불거질 때마다 최전선에서 싸워 온 윤철한 경실련 국장은 소탈하면서도 강직한 시민운동가의 이미지 그대로였다.

평범한 직장인에서 백수로, 다시 시민운동가로

단군 이래 최대 국난이라던 IMF. 오늘날의 한국 사회와 중장년층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친 외환위기는 윤철한 국장의 인생에 있어서도 결정적 사건이다. 한국 현대사의 대표적인 ‘흑역사’ IMF 경제위기는 대학에서 분석화학을 전공한 후 한 외국계 여행사에서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던 사회 초년생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기에 이른다.

대학 졸업 한 외국계 여행사에서 근무하던 윤 국장은 IMF로 실직한 후 대학 은사의 부름에 시민단체에 몸담게 됐다. / 사진 김현수 기자
대학 졸업 한 외국계 여행사에서 근무하던 윤 국장은 IMF로 실직한 후 대학 은사의 부름에 시민단체에 몸담게 됐다. / 사진=김경희 기자

“한 1년 정도 회사 생활을 하다 IMF가 터져 한순간에 백수가 됐습니다. 그러다 시민운동에 몸 담고 계시던 대학 은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마냥 저냥 놀지 말고 여기(경실련)와서 일이나 하라구요. (웃음)”

어쩌면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대학 입학 후 선배들로부터 화염병 던지는 방법부터 배운 윤 국장이었다. 선배들 손에 이끌려 난해한 화학기호와 수식으로 빼곡한 전공서적 보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더 열심히 팠다. 1987년 직선제 도입 직후 대학에 들어간 윤 국장은 운동권 ‘끝물’에 들어서는 88학번 세대다.

“시민운동이 업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처음에는 한 3~4년 정도 생각했죠. 경실련에 처음 들어와서 한 일이 ‘친환경농업정책’이었습니다. 잘 모르는 분야이기는 했지만 하나 둘 배워가다 보니 참 재밌는 겁니다. ‘재미’. 제가 20년 가까이 시민운동에 종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답변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 시민운동가란 게 경제적 보상과는 거리가 먼 직업이다. 인터뷰 도중 윤 국장은 자식들(슬하 이남)에게 그 흔한 학습지나 학원 한 번 보낸 적 없다고 ‘고백’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그럼에도 공부를 곧잘 해 공교육만으로 대학에 진학한 장남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시민운동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이에 대해 윤 국장은 ‘시민운동은 사람운동’이라는 답을 내놓는다. 다른 사람의 고민을 들어주고 여기에 공감해주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흡사 고해성사를 듣는 신부님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대법원 판결까지 갔지만 억울함을 풀지 못해 찾아오는 최후의 보루가 시민단체다. 많을 때는 하루에 10명 가까이 찾아온다. 하지만 10명 중 8명은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해결된다. 개중에는 이런 문제 하나 해결 못 해주냐며 욕설을 퍼붓는 분도 계신다. 칼을 들고 위협하신 분도 있었다. 다른 사람의 일에 무관심한 성격이었다면 지금쯤 다른 일을 하고 있었을 거다.”

윤 국장은 촛불정권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국민들의 기대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면 혹평했다. / 사진=김경희 기자
윤 국장은 촛불정권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국민들의 기대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면 혹평했다. / 사진=김경희 기자

▲항공마일리지 개선(2010년) ▲경인고속도로 통행료 폐지(2011년) ▲스마트폰 앱 마켓 구매절자 개선(2012년) ▲홈플러스 개인정보판매 대응(2015년) ▲가습기살균제 참사 대응(2016년) 등등 지난 20년간 이어온 주요 사업들을 나열하자면 4A 용지 한 장으로는 그 공간이 모자랄 정도다. 지금이야 가맹사업의 ‘시작과 끝’으로 정착된 정보공개서 제도도 대표적인 성취물 중 하나다. 이와 관련한 비하인드 스토리 하나.

“2005년 무렵이었을 거다. 당시 5대 편의점들의 불공정거래가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이슈로 떠올랐다. 경실련 등을 통해서 편의점 본사의 과도한 위약금과 장기계약 등이 논란거리가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전화 한 통화가 걸려왔다. 청와대였다. 프랜차이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합리적 개선방안을 마련해 보라는 요청이었다. 실무자 말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편의점주분들의 사정을 듣고 분노하셨다″는 거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그곳’에서 전화가 온 건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윤 국장은 9년 만에 돌아온 진보 정권에 대해서는 굉장히 박한 평가를 내렸다. 100만점에 몇 점을 줄 수 있을 것 같냐는 기자의 물음에 ‘10점’도 힘들다며 혹평했다. 그는 “요즘 문재인 정부를 보자면 뭘 하고 싶은지 건지 도대체 모르겠다. 지난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와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철학이 안 보인다. 대통령 공약이었던 GMO 표시제도가 도입되지 않는 이유에 대한 정부의 답변도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NON-GMO 여부를 검사하기 어렵다는 건 핑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GMO완전표시제는 윤 국장이 가장 주력해 온 분야 중 하나다. 미국의 몬산토(Monsanto)는 전 세계 GMO 종자의 95%를 독점하고 있다. 한국은 식용 GMO 수입 세계 1위 국가다. 국민과 인류의 건강과 직결된 먹거리가 특정 국가, 특정 기업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건 굉장히 위험한 구조라는 게 윤 국장의 생각이다. 그렇다고 지난 5년 간 흘려온 땀이 헛된 건 아니었다. 최근 GMO 표시제 강화 방안을 논의할 사회적 협의체가 출범하는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 권력화 되는 시민운동, ‘맛’들이면 안 돼

윤 국장은 시민단체 선후배 동료들에 대한 따뜻한 조언을 잊지 않았다. 사회에 목소리를 내다 보면 겉멋에 들거나 으쓱한 기분이 들 수 있는데 이를 굉장히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사진 김현수 기자
윤 국장은 시민단체 선후배 동료들에 대한 따뜻한 조언을 잊지 않았다. 사회에 목소리를 내다 보면 겉멋에 들거나 으쓱한 기분이 들 수 있는데 이를 굉장히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사진=김경희 기자

윤 국장은 시민단체 선배세대로서 안고 있는 고민도 털어놓았다. 요즘 최대 화두인 ‘갑을’ 문제는 보고 있는 윤 국장의 마음은 결코 편치만은 않다. 일부 가맹점단체들과 함께 행동하는 시민단체와 관계자들을 보고 있노라면 권리 보다는 이득을 쟁취하는 데 매몰된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떨칠 수 없는 심정이다.

그는 “아직 많은 선후배 동료들이 보다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고생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이 사회운동이라는 게 하다 보면 ‘으쓱’한 기분이 들기 마련이다. 그 어떤 ‘맛’에 취할 수가 있는데, 시민운동가라면 이를 굉장히 경계해야 한다. 시민단체와 시민운동가가 권력화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민단체가 안고 있는 고질적 숙제인 재정에 관한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경실련은 재정의 60%를 회비로 충당한다. 특정 기업으로부터 후원받을 수 있는 금액은 한도가 정해져 있다. 이마저도 되도록이면 피하는 편이다.

보수가 넉넉지 않다보니, 후배 육성에 애를 먹고 있다. 한창 배울 때인 3~5년 사이에 단체를 떠나는 인력 유출이 심화되고 있다. 그렇다보니 팀장과 간사의 경력차가 10년으로 벌어져 있다. 기업으로 보자면 과장과 차장이 존재하지 않는, 부장과 대리‧사원만이 일하고 있는 격이다.

정년 문제도 그가 안고 있는 고민거리다. 시민단체라는 곳 역시 기업과 마찬가지로 때가 되면 알아서 물러나야 한다는 게 그의 말이다. 적은 보수라도 계속해서 일을 하고 싶은 조직원들에게 기회를 제공해야 시민단체가 더 건강하게 지속할 수 있다는 게 윤 국장의 소견이다.

그는 “보수에 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온 후배들도 정년 때문에 깊은 고민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시민단체들이 이에 대한 고민 없이 합의점을 찾지 못한다면 인재 유입에 더 큰 애를 먹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윤 국장은 '제2의 윤철한'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일 자체를 즐기는 게 우선이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는 “시민단체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다. 다소 부족한 환경일지라도 자신이 잘하고자 하는 분야를 찾아 전문성을 키운다면 훌륭한 시민운동가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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