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도 개편 논의가 진행 중인 가운데 민주당과 한국당이 반대하고 있는 의원정수 확대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 뉴시스
선거제도 개편 논의가 진행 중인 가운데 민주당과 한국당이 반대하고 있는 의원정수 확대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은진 기자] 선거제도 개편 논의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은 ‘국회의원 정수 확대’ 여부다.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 원내 1·2당과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등 나머지 3당의 입장이 확실하게 엇갈리는 부분이다. 야3당과 함께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찬성하는 민주당도 의원정수 확대는 반대한다. 국민의 반대여론이 높다는 게 이유다. 한국당은 아직 선거제 개편안 관련 입장을 정하지 않았지만 같은 이유로 의원정수 동결을 주장한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김종민 민주당 간사

“자문위 의견보다 국민의견이 더 중요하다. 시민단체나 학자 분들은 국민 저변의 취지와 의미에 대해 너무 소홀하게 보고 있다. 민심은 정치인이 합의하면 그냥 (동의)해준다는 수준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1월 21일, 정책의총 뒤 브리핑)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장제원 한국당 간사

“연초에 언론에서 다양한 여론조사를 했는데 80% 넘게 정수확대에 반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민의 뜻은 명확하다. 국민들이 원치 않으니 연초에 정수확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정치권이) 합의하면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을 것이고, 만약 늘릴 수밖에 없다면 국민들에게 허락을 받아야할 문제다.” (1월 4일, 정개특위 1소위원회 발언)

‘국민이 반대한다’는 말처럼 대기 쉬운 변명은 없다. 실제로 국민을 대상으로 의원정수 확대에 대해 물은 여론조사 중 ‘찬성’이 높게 나타난 조사는 없다. 결론만 놓고 보자면 민주당·한국당의 입장이 합리적인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여론조사 결과를 자세히 뜯어보면 연령대별로 응답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론조사전문기관 한국갤럽이 지난해 11월 23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시 기존 국회의원 세비 총예산을 동결한다면 의원 수를 늘려도 된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늘려도 된다’고 응답한 비율은 34%에 그쳤다. ‘늘려서는 안 된다’는 반대 의견은 57%, 9%는 답변을 유보했다.

하지만 연령별로 조사 결과를 들여다보면 20~30대 청년층과 50~60대 노년층의 답변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대의 경우 의원정수 확대에 대한 찬성 답변이 45%로 반대(44%)보다 높게 나타났다. 30대는 찬성이 53%, 반대가 39%로 차이가 좀 더 벌어졌다. 40대의 경우 찬성(44%)이 반대(49%)보다 낮았지만, 근소한 격차였다. 반면 50대는 찬성 26%, 반대 68%로 반대여론이 뚜렷했다. 60대 이상의 경우 반대 응답이 7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젊은 층일수록 의원정수 확대의 필요성에 대해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국민 여론을 뭉뚱그려서 ‘반대’라고 결론지을 수 없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 국회의원 1명이 국민 17만명 대변

의원정수 확대 문제를 국민여론에만 기대서 결정하는 게 과연 합리적이냐는 의문도 제기할 수 있다. 국회라는 입법기관 자체에 대한 국민 신뢰도가 낮은 상황에서 ‘국회의원을 늘리자’는 주장에 대한 찬성여론이 형성되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국회의 책임회피라는 지적이다.

정개특위 심상정 위원장은 23일 KBS라디오 인터뷰에서 “국민여론은 당연하다. 요즘은 그저 국회의원들의 부정적인 모습만 계속 보이는데 국회의원들을 늘리자는 데 동의할 국민들은 없다”며 “국민들이 누차 지적했던 문제들에 대해서 이번에 근본적인 해법을 내고 달라진 모습을 보였는데도 국민들이 (의원정수 확대가) 안 된다고 하면 뜻을 수용해야겠지만, 국민들이 요구한 개혁 의지를 적극적으로 보이는 것보다 국민여론 때문에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오히려 국민 불신을 방패막이 삼아서 개혁을 회피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고 했다.

국민을 대변하는 입법기관인 국회의 기능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라도 의원정수 확대 필요성은 명확하다. 현재 우리나라 국회의원 1인이 대변하는 인구수는 17만 2,000명 정도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인 9만 7,000명과 비교하면, 대표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48년 제헌국회 의원정수가 200명, 인구수가 2,000만명으로 인구 10만명당 국회의원 1명이었던 때를 기준으로 환산하면 현재 의원수는 적어도 500명이 되어야 한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등 방대한 소관기관 업무를 맡고 있는 상임위원회가 국정감사나 예산·결산심사 때마다 업무 과부하에 시달리는 것 역시 국회의원 수가 너무 적기 때문이다.

의원정수 확대를 주장하고 있는 야3당은 당초 360석을 주장했지만, 여야 협상 가능성을 고려해 330석 선에서 협의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야3당 원내대표들은 이날 공동기자회견에서 “의원정수는 정개특위 자문위가 권고한 360석 제안을 존중하되, 330석을 기준으로 협의를 할 것”이라며 “또한 국회의 특권 내려놓기를 바라는 많은 국민들의 바람을 반영하여 의원정수를 늘리더라도 국회의원 세비 감축 등을 통해 국회 전체 예산은 동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인용된 한국갤럽 조사 개요
- 조사기간: 2018년 11월 20~22일
- 표본추출: 휴대전화 RDD 표본 프레임에서 무작위 추출(집전화 RDD 15% 포함)
- 응답방식: 전화조사원 인터뷰
- 조사대상: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1명
- 표본오차: ±3.1%포인트(95% 신뢰수준)
- 응답률: 13%(총 통화 7,575명 중 1,001명 응답 완료)
- 의뢰처: 한국갤럽 자체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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