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시의 골키퍼 케파 아리사발라가가 마우리치오 사리 감독의 선수교체에 불응하며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했다. /뉴시스·AP
첼시의 골키퍼 케파 아리사발라가가 마우리치오 사리 감독의 선수교체에 불응하며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했다. /뉴시스·AP

[시사위크=김선규 기자] 축구에서는 훈훈한 사제관계 못지않게 선수와 감독 사이의 갈등도 자주 표출된다. 선수는 기회를 주지 않거나 자신과 맞지 않는 전술 및 역할을 요구하는 감독에게 불만을 갖는다. 감독 역시 자신의 주문을 수행하지 않거나 활약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선수를 좋아할 수 없다.

이러한 갈등은 주로 선수기용과 인터뷰, 훈련장에서의 마찰(불참 등), 그리고 이에 대한 언론의 갈등설 보도로 드러나곤 한다. 종종 경기장에서도 갈등을 목격할 수 있는데, 대부분 교체아웃된 선수가 감독을 외면하거나 굳은 표정을 짓는 정도다.

하지만 이번에 드러난 갈등은 말 그대로 ‘초유의 사태’다. 잉글랜드 축구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한국시간으로 25일 새벽, 첼시는 맨체스터 시티와 카라바오컵 결승전을 치렀다. 팽팽하게 이어진 경기는 전후반에 승부를 결정짓지 못했고, 연장전이 끝날 무렵까지도 득점은 터지지 않았다. 그렇게 경기는 승부차기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었다.

사건은 연장후반의 정규시간이 딱 2분 남아있던 시점에 터졌다. 첼시의 골키퍼 케파 아리사발라가는 다리 쪽에 부상을 호소했고, 팀닥터가 투입됐다. 벤치의 마우리치오 사리 감독은 급히 후보 골키퍼 윌리 카바예로 투입을 결정했고, 카바예로는 서둘러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그런데 이 같은 벤치의 움직임을 본 케파는 뛸 수 있다는 의사를 전달하며 벤치의 움직임을 만류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종종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이후 케파와 사리 감독은 초유의 장면을 연출했다.

사리 감독은 케파의 의사표시에도 불구하고 선수교체를 단행하려 했다. 케파의 부상도 부상이지만, 여러모로 충분히 시도할 수 있는 교체였다. ‘백전노장’ 카바예로는 경험이 많을 뿐 아니라 페널티킥 선방에 강점을 지닌 선수다. 수치상으로 케파보다 훨씬 높은 페널티킥 선방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또한 카바예로는 첼시에 합류하기 직전 3년간 맨시티에 뛰었다. 맨시티 선수들에 대한 분석이나 익숙함에 있어서도 케파를 앞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케파는 펄쩍 뛰며 불만을 표시하고, 감독의 선수교체에 불응했다. 그러면서 선수와 감독이 서로 언성을 높이는 볼썽사나운 모습이 연출됐다. 가득 들어찬 관중은 물론 전 세계 축구팬들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벌어진 촌극이었다.

결과적으로 케파는 그라운드에 남았다. 가뜩이나 최근 경질설 등으로 마음이 편치 않을 사리 감독은 이 같은 상황에 분노했다. 볼펜을 집어던지더니 경기장을 빠져나가려는 듯한 모습까지 보였다. 아무도 말리지 않은 가운데 홀로 돌아왔지만 말이다.

비교적 잘 풀리던 경기의 막판에 한바탕 소동을 빚은 첼시는 결국 승부차기에서 패했다. 선수교체에 불응하며 승부차기에 나선 케파는 한 차례 선방에 성공했으나, 상대의 결정적인 실축을 막지 못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이번 사태는 최근 첼시의 끊이지 않는 ‘감독 잔혹사’와 맞물려 더욱 씁쓸함을 자아내고 있다. 첼시는 2009년 2월 스콜라리 전 감독이 경질된 이래 감독대행을 포함해 10명의 지도자가 거쳐 갔고, 이 중 히딩크는 두 차례나 지휘봉을 잡았다. 그때마다 감독의 선수단 장악 실패 문제는 빠지지 않고 불거졌다. 가장 최근 정식감독으로 팀을 이끌었던 안토니오 콘테와 조세 무리뉴 역시 이 같은 논란 속에 팀을 떠난 바 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첼시 선수들의 ‘태업’도 논란이 됐다.

감독의 권한인 선수교체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한 채 망신을 당한 사리 감독. 그 역시 ‘극한직업’을 버티지 못한 채 머지않아 떠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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