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는 지난 9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본사에서 열린 인터뷰에서 “단기 수익성만 좇는 투자 방식으로는 자본시장의 발전을 담보할 수 없다"며 "사회책임투자가 시장을 선진화하는 하나의 솔루션이 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김경희 기자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었다.” 류영재 서스틴베스트 대표가 4년간의 영국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2006년 서스틴베스트를 설립, 사회책임투자(SRI)의 중요성을 소개했을 때,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외로운 시간이었지만 류 대표는 포기하지 않았다. 연구자료를 만들고 기관투자자들을 만나 끈질기게 설득했다. “단기 이익만 좇는 투자 방식으로는 자본시장의 발전도, 수익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렇게 사회책임투자 정착을 위해 발로 뛴지 13년. 이제는 사회책임투자를 바라보는 시장의 시각이 예전과 비교하면 “상전벽해 수준으로 변했다”고 그는 말한다. 사회책임투자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재무적인 요소 뿐 아니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등 비재무적 요소까지 평가해 투자하고,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하는 개념이다. 유럽권에서 시작돼 글로벌 투자 트렌드로 확산되고 있는 투자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몇 년간 사회책임투자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진 분위기다. 문재인 정부가 책임투자와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 원칙) 활성화를 강조하면서 시장에서 이 투자 개념이 활발하게 회자되고 있다. 다만 관심이 시장 활성화로 이어지기 위해선, 아직은 갈 길이 멀다. 특히 류 대표는 국민연금이 사회책임투자 확대에 굼뜬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에 아쉬움을 표했다. 기자는 지난 9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서스틴베스트 사무실에서 류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류영재 대표는 2006년 서스틴베스트 설립 이래 국내에서 생소했던 사회책임투자 알리고자 치열하게 발로 뛰었다. 시장의 무관심에 힘들어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김경희 기자

- 3월 주주총회 시즌이 지나갔다. 올해 주총에선 의결권 강화가 화두로 떠오르며 자문사 중 하나인 서스틴베스트도 주목을 받았다. 서스틴베스트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을 해달라.
“서스틴베스트는 사회책임투자 자문사다. 최근 주주총회를 거치면서 스튜어드십 코드나 의결권 이슈가 화제가 되면서 서스틴베스트가 의결권 자문사로만 언론에 소개되고 있는데, 팩트를 바로잡고 싶다. 우리 회사가 여러 일을 하는데 그 중의 하나로 ‘의결권 자문업’이 있을 뿐이다. 서스틴베스트는 2006년 기업의 ESG(환경·사회책임·지배구조) 요인을 분석, 기관투자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컨설팅사로 첫발을 뗐다. 주로 ESG 투자와 관련한 전략을 짜주거나 SRI 펀드 모델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일을 주로 해왔다. 의결권 자문업에는 2012년에 진출했다.”

- ‘사회책임투자’를 국내에 알리는 선도자 역할을 해왔다. 이제는 자본시장 내에선 많이 알려진 개념이지만 일반인 입장에서는 다소 생소할 수 있다. 
“사회책임투자는 세 가지 개념으로 이해하면 된다. 첫 번째는 ‘장기투자’를 하자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가장 단기 투기를 많이 하는 국가다. 사회책임투자는 이같은 투자 방식을 벗어나 장기투자를 지향한다. 두 번째는 기업의 재무적인 성과 뿐만 아니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등 비재무적인 부문을 분석해 투자하는 개념이다. 즉, 대상 기업이 환경·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지배구조가 투명한지를 평가하고 모니터링해 투자하는 방식인 셈이다.

세 번째는 주주권을 적극 활용하자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기업이 사회적인 문제로 기업가치를 훼손했을 경우, 사회책임투자 원칙 아래 투자자는 주주권을 발동해 개선을 요구할 수 있다. 단순한 투자자를 넘어 주주로서 책임의식을 갖고 역할을 강화하자는 얘기다. 최근 화두된 스튜어드십 코드도 이같은 맥락에 나왔다.“

- 사회책임투자는 처음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나.
“사회책임투자는 2000년 영국 유학길에 오르며 처음 접했다. 유학 전에는 증권사에서 14년간 일했다. 애널리스트와 펀드 매니저, 영업 등 웬만한 일은 다 해봤다. 그러다 느지막이 유학을 떠났다가 사회책임투자라는 것을 알게 됐는데, 처음에는 ‘형용모순’이라고 생각했다. 투자는 ‘투 메이크 머니(to make money)’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회 책임 투자를 한다?’ 이해가 안 갔다. 그래서 책을 사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14년 동안 한국 증권시장에 있으면서 느꼈던 문제점을 사회책임투자가 풀어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기 거래를 부추기며 이익만 좇는 시장 구조에 변화시킬 수 있는 하나의 솔루션이 될 수 있다고 봤다.”

- 처음에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2000년대 중반 때만 해도 사회책임투자 개념이 낯설었을 때다.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이었다. 처음에는 시장 참여자들이 소 닭 보듯 했고 ‘영국에서 4년 반 정도 있다오더니 뭘 잘못 먹고 왔냐’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외로운 시간이었다. 소명의식을 갖고 이 일을 시작했지만 차가운 반응에 ‘한국에서 이것이 자리잡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밤에는 회의적인 생각으로 좌절했다가 아침에는 다시 마음을 다잡는 시간이 반복됐다. 매출은 설립 후 3년간 전혀 없었다. 힘든 상황이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사회책임투자연구회에 참여해 연구 자료를 만들고, 참석한 기관투자자들에게 필요성을 알리는데 힘썼다. 또 국민연금이나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들관계자를 만나 설득하러 다녔다. 한 언론사에 정기적인 칼럼을 써서 사회책임투자를 알리기도 했다.”

-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평가 모형을 자체 개발했다.
“설립 초창기에 제가 만들었다. 유럽 사회책임투자 컨설팅 업체들을 벤치마킹하기도 했지만 그대로 가져온 것은 아니다. 한국에 맞게 로컬라이징이 필요했다. 예를 들어 지배구조 부문을 보면, 우리나라는 재벌이라는 독특한 시스템이 있다. 사회적인 이슈와 환경를 바라보는 시각도 유럽과 많이 달랐다. 환경 규제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탄소 배출권 거래의 경우, 유럽은 시작을 했지만 당시 한국은 도입되지 않았었다. 이에 한국에 맞게 평가 모형과 지표를 만들었다. 그 모형에 따라 기업을 평가해 점수를 매기고 리서치 보고서도 냈다. 그리고 이를 들고 다니면서 기관투자자 설득하러 다녔는데, 초창기는 다들 무관심한 반응을 보였다.”

류영재 대표는 인터뷰 도중 사회적 책임투자 개념을 상세히 설명했다. /김경희 기자

- 지금은 ESG 평가가 주요 투자 가이드 중 하나로 시장에 인식되는 추세다. 예컨대 기업의 지배구조 불투명성이나 오너의 갑질, 안전사고 이슈들이 기업 가치를 훼손하는 요인으로 평가된다.
“많이 바뀌었다. 제가 증권사에서 기업 분석을 할 때인 1980년대 말이나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증권사나 투자자들은 지배구조 이슈를 중요하게 안 봤다. 기업의 갑질이나 환경사고 문제도 마찬가지다. 그때는 돈만 벌면 된다는 분위기였다. 보고서도 기업의 재무적인 요인만 포커싱해서 썼다. 그런데 지금은 일반 증권사들도 지배구조나 환경 이슈와 관련한 기업 보고서를 쓴다. 화학물질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이 강화되면서 법 위반 시 기업은 큰 과징금을 물게 됐다. 환경적인 요인이 재무적인 지표에서 영향이 미치게 된 셈이다.

오너 갑질 이슈도 예전에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SNS가 생기면서 비밀이 없는 사회가 됐다. 소셜 리스크는 기업의 평판을 훼손하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한테 연결되고 브랜드 이미지를 깎아내리는 것으로 평가된다. 초창기에 ESG 평가를 소개할 때와 비교하면 많이 달라졌다. 상전벽해 수준이다. 이제는 자본시장 참여자 가운데는 ESG를 모르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 최대 이슈였던 스튜어드십 코드에 대한 이야기도 해보자. 지난해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고 올해 주주총회 시즌에서 첫 의결권 행사가 있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2010년 영국 연기금이 처음 도입한 후 전세계적으로 확산돼왔다. 외람되지만 한국에선 내가 스튜어드십 코드 필요성을 가장 먼저 얘기한 것이 아닌가 싶다. 2009년부터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기관투자자들에게 줄기차게 얘기하고 다녔다. 이제 우리나라에도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된 것은 환영할 일이다. 다만 아직은 어설프게 운영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해 관계가 대립되는 관계자들로 기금운용위원들이 구성돼 있고,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도 마찬가지다. 여러 이해관계자 단체가 추천하는 사람들로 구성원이 짜여져 각 단체들 입장을 대변하는데 급급한 느낌이었다.”

-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후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이슈만 부각된 측면이 있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의결권만 얘기하는 원칙이 아니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본적으로 ‘기관투자자가 투자 대상기업을 1년 내내 성실하게 모니터링한다’는 원칙을 품고 있다. 그리고 기업 가치를 훼손하는 문제가 발생했다고 판단이 되면, 투자 기업에 연락해 개선을 요구하거나 솔루션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주주권을 발동하는 것이다.”

- 스튜어드십 코드와 주주행동주의와 개념이 다르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스튜어드십 코드와 주주행동주의를 같은 개념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전통적인 주주행동주의를 비판하면서 나온 개념이다. 주주행동주의는 기본적으로 적대적인 방식을 취한다. 단기간에 기업을 옥죄 주가가 뛰면 팔고 나가거나, 고배당을 유도해 이익을 빼가가는 형태다. 반면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업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우호적인 대화를 베이스로 한다.”

류영재 대표는 "스튜어드십 코드가 시장에 잘 자리잡기 위해선 장기 투자 문화가 우선 구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김경희 기자

- 주주권 강화가 화두가 되면서 전자투표제 도입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전자투표제 의무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여왔는데.
“아시다시피, 3월 주총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몰려 있지 않나. 수십에서 수백개의 의결권을 행사해야 하는 기관투자자 입장에선 의견 개진을 하기 쉽지 않다. 전자투표제가 의무화되면 이런 과정이 용의해질 것이다. 올해는 주요 대기업들이 전자투표제를 도입했지만 아쉬움은 있다. 삼성, 현대차 등 대기업은 아직 도입하지 않았다. 이들 기업이 도입해야 더 확산 효과가 있을텐데 아쉽다.”

- 의결권 행사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자문사들도 영향력이 확대됐다는 평가도 있다. 다만 일각에선 이 때문에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소프트한 규제는 필요하다고 본다. 의결권 자문을 하기 위해선 크게 두 가지의 자격 요건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첫 번째가 독립성이다. 분석 대상 기업으로부터 분리돼 있어야 있어야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업으로부터 출자를 받았다거나 거래가 있다면 독립적인 평가를 하기 어려울 수 있다. 두 번째는 전문성이다. 본사는 이 두 가지 요건에 있어서는 업계 최고라고 자부한다. 독립성 원칙을 지키고자 기업과의 비즈니스는 일체 하지 않고 있다.”

- 올해 주총에선 기업의 이사회 독립성 이슈도 화두였다. 의결권 자문사로서 어떻게 바라봤나.
“우선 사외이사 제도는 대수술이 필요하다고 본다. 사외이사 제도가 만들어진 취지는 경영진과 오너를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목적이었다. 하지만 사외이사 제도가 지금 그것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교수들과 퇴직 관료들의 사이드잡 역할 밖에 안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이들이 더 이상 거수기 노릇을 할 수 없게 연임이나 사외이사 겸임 조항을 없애야 한다고 본다. 보수도 거마비와 자문 검토에 필요한 비용 정도만 줘야 한다.”

류 대표의 목표는 서스틴베스트를 한국을 대표하는 책임투자 자문사로 만드는 것이다. 서스틴베스트가 자본시장 선진화의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김경희 기자

- 사회책임투자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은 분명하다. 실질적인 투자가 늘어났다고 보나.
“아직은 답답한 부분이 많다. 사회책임투자 확대는 이번 정부의 공약사항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진행된 과정만 보면 한숨이 난다. 이번 정권이 들어온지 만 2년이 돼 가는데 구체적으로 한 게 없다. 재작년에 사회책임투자 연구용역만 발주해놓고 지금까지 감감무소식이다. 집행된 것이 없다. 오히려 이번 정권 들어와서 사회책임투자가 줄었다. 복지부에서도 사회책임투자확대 방안을 작년 8월달부터 발표한다고 했지만 계속 지연되고 있다.

이번 정권을 굉장히 기다렸다. 진보적인 정권에서 이런 투자 담론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환경이나 공정거래, 지배구조 이슈는 진보 정권에서 관심을 보여온 이슈다. 그런데 정작 정권이 출범하고 2년째를 맞이했지만 아직까지 획기적인 변화는 감지되지 않는다.“

- 사회적책임투자 시장이 잘 구축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장기투자 문화 구축을 위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투자 방식이 장기투자로 바뀌어야 스튜어드십 코드나 ESG 투자도 활발히 이뤄진다. 장기투자가 전제되지 않으면 스튜어드십 코드도 의미가 없다. 주식을 샀다 팔고 3개월이상 보유하지 않는데 누가 모니터링을 하고 주주권에 관심을 갖겠나. 3~5년 정도는 장기 투자를 해야 스튜어드십 코드도 제대로 작동한다. 세액공제를 해주는 방식으로 장기 투자를 유도하는 정책적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본다.”

- 그간 쉼없이 달려왔다. 앞으로의 목표를 말해달라.
“한국을 대표하는 책임투자 자문회사로 확고하게 자리잡는 게 목표다. 자문운용사들이나 연기금이 사회책임투자 방식을 내재화할 수 있게 그들을 설득하고, 분석 방법론을 만들어나갈 것이다. 글로벌화도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에 투자하는 외국투자자에게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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