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경 서울환경운동연합 활동가

‘세류성해(細流成海).’ 가는 물줄기가 모여 큰 바다를 이룬다는 뜻이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작은 힘이 모이면 큰 변화를 일으킨다는 의미와도 맥이 닿아있다. 우리는 이미 지난 촛불혁명을 통해 이를 경험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꾼 것은 거대 권력도 아니고 정치적인 어젠다도 아니었다. ‘국민주권’을 위해 행동했던 ‘시민들의 힘’이었다. 하지만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이에 <시사위크>에서는 대한민국 변화를 이끄는 중심, ‘시민운동가’들의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제언을 경청해본다. [편집자주]

지난 11일 종로 통인시장에 인접한 서울환경운동연합 사무실에서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김현경 활동가. 김 활동가는 국내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의 문제를 공론화 한 환경운동가다. / 사진-김경희 기자
지난 11일 종로 통인시장에 인접한 서울환경운동연합 사무실에서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김현경 활동가. 김 활동가는 국내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의 문제를 공론화 한 환경운동가다. / 사진=김경희 기자

시사위크=범찬희 기자  지난해 8월 ‘커피 공화국’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에 의미 있는 변화가 생겼다. 자원재활용법(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이 강화되면서 커피전문점 등 매장 내에서 플라스틱 컵이 자취를 감췄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불편하기 그지없던 실내 머그컵 이용은 어느새 우리 사회의 상식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컵이 ‘바늘’이라면 ‘실’처럼 여겨지던 빨대에 대한 문제의식도 부쩍 커졌다. 종이 빨대가 등장하고 아예 빨대 없이 음료를 마시는 풍경이 낯설지 않게 됐다. 대한민국에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 사용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단체가 있다. 바로 ‘서울환경운동연합’이다.

지난 30여 년간 지구의 수명을 연장하는 데 매진해 온 환경운동연합의 서울 지부 성격인 이 단체에서 생활환경담당으로 일하고 있는 김현경 활동가는 빨대 퇴출을 공론화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미세먼지 없는 초여름 푸른 하늘이 펼쳐졌던 지난 11일 오전 종로구 누하동 서울환경운동연합 사무실 앞마당에서 그의 환경 이야기를 들어봤다.

◇ ‘일회용 빨대’ 경각심 불러일으킨 환경운동가

우선 김현경 활동가가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 사용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예상대로 코스타리카 바다거북이 얘기가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지난 2015년 코스타리카 해변에서 플라스틱 빨대가 코에 박힌 채 괴로워하는 바다거북이 영상이 유튜브에 공개되면서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NGO에서 일하던 중 대학원에 진학해 그린디자인을 공부했다. 그때가 2015년 무렵이다. 수업 준비를 위해 여러 영상들을 보게 됐는데 바다거북이 코에 빨대가 박힌 사진을 그때 처음 접했다. 그때부터 빨대에 관심을 쭉 갖게 됐다. 지난해 2월 환경연합 중앙사무처에서 이곳으로 소속이 바뀐 뒤 생활환경 자원순환을 담당하게 된 게 문제의식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였다. 조직에 3년 가까이 품어 왔던 빨대 운동 대해 말씀드렸더니 신선하게 받아들였고 적극 지원해줬다.”

곧바로 본격적인 빨대 운동을 전개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자료 수집과 해외 사례와 동향을 살펴보는 데 두 달의 시간이 소요됐다. 이 과정에서 김현경 활동가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는데, 국내에서 플라스틱 빨대가 자원재활용법에서 정한 일회용품 품목에 빠져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이다. 운도 맞아떨어졌다. 3월 말 비닐수거 중단으로 폐기물 대란이 터졌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전국적으로 커진 상황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야 한다는 단체의 주장에 힘이 실렸다. 그렇게 4월 27일, 처음으로 관련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 후 신선하다는 피드백이 나왔다. 또 이 과정에서 커피전문점,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17곳에 이메일로 제안서를 보냈다. 매장에 플라스틱 빨대를 상시 비치하지 말아줄 것 등을 요청했는데 스타벅스에서 가장 빠르게 반응했다. 법적 제재 대상이 아닌 일회용품임에도 기업체가 먼저 나서서 움직인 건 혁신이라고 본다. 이외에도 운동 효과가 가을쯤부터 보이기 시작했는데, 인터컨티넨탈과 JW메리어트 등 유수의 글로벌 호텔 체인 국내 지사들에서 플라스틱 빨대가 퇴출된다는 기사들이 나왔다.”

김현경 활동가가 서울환경운동연합 사무실 앞마당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커피전문점의 '종이 빨대' 도입에 대해서는 높은 평가를 내린 반면, 국내 영화관 3사들이 일회용품 사용 저감에 무관심하다고 지적했다. / 사진-김경희 기자
김현경 활동가가 서울환경운동연합 사무실 앞마당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커피전문점의 '종이 빨대' 도입에 대해서는 높은 평가를 내린 반면, 국내 영화관 3사들이 일회용품 사용 저감에 무관심하다고 지적했다. / 사진=김경희 기자

나름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고 자부하는 한국은 플라스틱 빨대 저감에 있어서만큼은 국제적으로 뒤처져 있다는 게 환경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환경연합에 따르면 미국 뉴욕과 버클리,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일회용 빨대를 규제하는 ‘Be Straw Free’ 캠페인이 진행되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올해 6월부터 밴쿠버 식당에서 일회용 빨대 사용이 금지된다. 또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스위스 등 유럽에서도 플라스틱 퇴출 바람이 거세다. 한 수 아래로 평가하는 대만에서는 2030년부터 플라스틱 빨대와 수저, 컵 사용을 전면 금지하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자원재활용법 시행령 별칙1에 일회용품에 대한 규정에 있는데,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에 대한 얘기는 전무하다. 이쑤시개, 수저, 나이프, 광고선전문, 식탁보, 응원용품 등이 포함돼 있지만 빨대가 없다. 빨대 규제 근거가 없는 셈이다. 지난해 9월 환경부가 ‘자원순환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2027년까지 단계적으로 빨대 사용을 감축하겠다고 밝혔지만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법에서 근거하지 않는 계획이 이행 가능성이 있을 거라 보기 힘들다. 이 부분에 대해 환경부도 법 개정을 고민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법에서 일회용품을 특정 물품에 한정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에 가깝다는 게 김현경 활동가의 생각이다. 배달 어플리케이션의 등장과 엔터테인먼트 산업 등이 발전하면서 일회용품의 범주가 늘어났다. 그는 사회 문화적 양상이 변함에 따라 이전에는 접하기 힘들던 플라스틱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빨대 하나가 품목에 추가된다고 ‘환경에 얼마나 큰 보탬이 될 수 있을까’란 고민을 늘 안고 있다고도 털어놨다.

◇ “국내 3대 영화관 일회용품 저감에 무관심해”

김현경 활동가는 종이 빨대 도입은 기업이 할 수 있는 나름의 최선책이었다고 평가했다. 강제 사항이 아님에도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체에서 순순히 비용을 들여 유해성과 강도 등을 연구해 대체재를 개발한 건 의미가 크다고 바라봤다. 아예 빨대가 필요 없는 리드 컵 개발도 동일한 맥락이다. 인터뷰 도중 일회용 빨대를 상시비치 하지 않는 데에서 한 발짝 더 나가 환경을 생각해 준 기업에게 감사해하는 기색을 비쳤다.

“빨대를 서비스 테이블에 비치하지 않고 음료가 나갈 때 하나씩 지급하는 것만으로 감축 효과가 크다. 근데 플라스틱 빨대 대체품까지 내놨다. 플라스틱 보다 종이가 최소 15배 이상 비싸다. 스테인레스나 대나무 등은 개당 1,000원에 육박한다. 단가나 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했을 때 가장 적합한 소재가 종이였을 거다.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종이 빨대가 쉽게 흐물해 진다며 불편을 호소하는 데 사실 음료를 마시는 데 있어 빨대는 필요가 없는 물품이다. 영국의 재활용기업 대표인 마크홀의 말을 새겨들어 볼 필요가 있겠다. 그는 ‘플라스틱 빨대는 인간의 궁극적 사치품으로, 8살이 넘었다면 필요가 없다’고 했다.”

김현경 활동가는 플라스틱 사용이 감소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소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회용품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 기업들도 친환경 소재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될 거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 사진-김경희 기자
김현경 활동가는 플라스틱 사용이 감소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소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회용품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 기업들도 친환경 소재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 사진=김경희 기자

반대로 일회용품 저감에 상대적으로 무관심한 산업 분야를 뽑아달라는 물음에는 ‘영화관’이란 답변이 돌아왔다. 주축이 플랫폼 사업이다 보니 일회용품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끼기 쉬운 영화관 운영 업체들은 팝콘 등 먹거리 판매로 상당한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업계 1위 CGV의 경우 지난해 매점에서 2,862억원의 매출이 나왔다. 이는 티켓 판매 다음으로 많은 비중이며 광고 수익보다는 2배 가량 많은 금액이다. 영화관에서 판매되는 먹거리와 음료가 일회용품에 담겨 판매된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부분이다.

“영화관에서 간식 사업이 워낙 되나보니까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예전엔 팝콘만 팔던 영화관이 더 이상 아니다. 치킨에 떡볶이 등 먹거리가 다양해 졌다. 그런데 영화관에서 판매되는 음식 모두가 일회용 접시에 담겨 제공된다. 음료컵에는 항상 빨대가 꽂혀서 나간다.

영화관 3사 (CGV‧롯데‧메가박스)에 일회용품 사용에 대한 의견을 보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는데 잘 안되더라. 접촉 프로세스가 굉장히 폐쇄적이더라. 홈페이지에 고객센터 번호만 있을 뿐 그 흔한 대표번호 하나 공개가 안 돼 있다. 고객센터를 통해 용건을 남겨도 답변이 없다.”

그는 플라스틱을 퇴출하는 데 있어 무엇보다 소비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정부가 관련 정책과 규제를 내놓고 기업이 이를 따르는 것 역시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에 일회용품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면 자연스레 이용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기업이란 소비자들의 니즈에 따라 움직인다는 존재라는 게 김현경 활동가 주장의 근거다. 단가가 비싼 친환경 소재도 보편화 돼 대량생산이 이뤄지면 가격이 내려갈 수밖에 없다는 경제 논리도 언급했다. 그런 그는 “오늘부터 커피 드실 때 ‘빨대는 괜찮습니다’라고 한마디 해 주세요”라며 독자들에게 마무리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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