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디자이너가 프랑스에서 설립한 명품 브랜드 겐조는 최근 일본 불매운동 리스트에 오르내리고 있다. /겐조
일본인 디자이너가 프랑스에서 설립한 명품 브랜드 겐조는 최근 일본 불매운동 리스트에 오르내리고 있다. /겐조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최근 한일관계가 급속도로 얼어붙으면서 촉발된 일본 불매운동이 들불처럼 확산되고 있다. 특히 양국 정부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는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면서 사태는 점점 더 악화되는 모습이다.

여론조사 기관인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실시한 ‘일본제품 불매운동 실태 조사’에 따르면, 불매운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응답은 지난 10일 1차 조사 당시 48.0%에서 24일 62.8%로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갤럽이 23~25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일본산 제품을 사는 것이 꺼려진다’는 응답이 80%나 차지했다.

이처럼 불매운동이 점차 확산될 뿐 아니라 장기화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일본이 자랑하는 패션산업 업계도 비상등이 켜졌다. 소비자와 접점이 넓다는 점에서 불매운동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이다. 특히 유니클로의 경우 일본 본사 임원의 부적절한 발언까지 나오면서 엎친 데 덮친 꼴이 됐다.

이런 가운데, ‘일본기업’이란 지적에 대해 적극적인 해명에 나선 브랜드도 있다. 명품 브랜드로 유명한 겐조(KENZO)가 그 주인공이다. 겐조는 흔히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로 알려져 있지만, 일본인 디자이너가 설립한 브랜드라는 지적이 제기되며 일본 불매운동 명단에 종종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일본 불매운동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노노재팬’ 사이트에도 이름이 올라간 바 있다.

하지만 겐조 측은 “일본기업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겐조의 국내 홍보를 담당하는 관계자는 “겐조는 프랑스 LVMH그룹 소속이지 일본기업이 아니다”라고 밝히는 한편, 앞서 일본 불매운동 관련 기사에서 겐조가 언급된 것에 대해 정정을 요청했다.

그렇다면, 겐조는 정말 일본기업이 맞을까, 혹은 아닐까.

우선, 겐조를 만든 창업자는 일본인이 맞다. 일본 패션계의 전설적인 인물인 다카다 겐조가 그 주인공이며, 대다수 명품 브랜드가 그렇듯 그의 이름이 곧 브랜드가 됐다.

다만, 겐조가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1939년생인 다카다 겐조는 대학 시절 우연히 패션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곧장 이 분야에 발을 들였다. 일과 패션 공부를 병행하며 실력과 재능을 떨친 그는 일찌감치 주목받는 신진 디자이너가 됐고, 졸업 이후엔 패션 브랜드에 입사해 기성복 디자이너로 일했다.

그러던 중 아파트 철거에 따른 거액의 보상금을 받게 된 그는 평소 동경하던 유럽행을 택한다. 그의 나이 26살, 1965년의 일이다. 그렇게 패션의 본고장 프랑스 파리에 도착한 그는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 경력을 쌓아나갔고, 5년 만인 1970년 친구들의 도움 등을 받아 자신의 부티크 샵인 ‘정글 잽’을 오픈했다. 명품 브랜드 겐조가 탄생한 순간이다.

다카다 겐조의 작품은 곧장 잡지 표지에 소개되는 등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고, 독특한 개성을 지닌 겐조 브랜드는 파리를 무대로 확고한 입지를 다져나갔다. 이후 겐조는 1993년 LVMH그룹에 인수됐다. 1999년 한창의 나이인 60세에 돌연 은퇴를 선언한 다카다 겐조는 이후 가구·인테리어·식기 등을 디자인 하는 등 다양한 도전에 나선 바 있다.

이처럼 겐조는 일본인 디자이너가 만든 브랜드가 맞지만, 프랑스 파리에서 탄생하고 성장한 브랜드인 것도 분명 사실이다. 일본에서 탄생해 성공한 브랜드가 프랑스로 진출한 것이 아니다. 전 세계 패션계에서도 겐조는 일본인이 프랑스 파리를 무대로 설립한 브랜드이자, 동양인이 유럽 패션계에서 성공을 거둔 최초의 사례로 여겨진다. 따라서 겐조를 향해 제기되는 일본기업이란 지적은 어느 측면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리 해석될 소지가 충분하다.

겐조 홍보대행사 관계자는 “일본인 디자이너가 만든 것은 사실이며, 그러한 이유만으로 일본기업이란 오해를 받고 있다”며 “실상을 보면 일본기업으로 보기 힘든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불매운동 리스트에 겐조가 포함되는 사례가 늘어나자, 겐조 측은 적극적인 오해 해소에 나선 상태다. 최근엔 ‘노노재팬’ 측에도 정정을 요청해 불매운동 대상에서 제외됐다.

겐조 홍보대행사 관계자는 “잘못된 정보가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어 바로 잡아야겠다고 판단했다”며 “노노재팬과 언론사 등에 정정을 요청했고, 향후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대해서도 잘못된 정보의 확산을 막는 조치를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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