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에도 어김없이 많은 드라마들이 안방극장을 찾아올 예정이다. / 그래픽=김상석 기자
내년에도 어김없이 많은 드라마들이 안방극장을 찾아올 예정이다. / 그래픽=김상석 기자

시사위크=이민지 기자  연말이 되니 내년 방영될 드라마 소식이 적잖이 들려온다. 올해의 시청률이 높았건 낮았건, 내년에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드라마는 끊임없이 생산될 것이다. 더욱이 JTBC가 내년부터 수목드라마를 시작한다고 알린 상황. 하나둘 들려오는 배우들의 드라마 캐스팅 소식에 벌써부터 내년 방영될 드라마에 설렘이 감도는 요즘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TV 드라마들이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기 위해 자극적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 내년엔 눈살을 찌푸리지 않아도 되는 ‘바른 볼거리’의 기쁨을 누려보고 싶다고 시청자들은 말한다. 그리고 이 해답을 방송국이 알고 있다고 <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 한석현 팀장은 말한다.

‘서울 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 좋은 방송을 위한 시청자모임’은 4월 1일부터 4월 14일까지 지상파 방송 3사 4개 채널을 대상으로 ‘지상파 방송사의 드라마 속 폭력성’에 대한 모니터링을 실시, 모니터링 보고서를 통해 드라마 속 폭력성 수위에 대한 우려감을 내비쳤다. 청소년 시청 보호 시간대에 편성된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신체에 가해지는 물리적 폭력뿐 아니라 기물을 던지거나 파괴하는 등의 폭력성이 두드러지는 내용으로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다는 것.

특히 KBS2TV ‘왼손잡이 아내’에서 양모가 성격결함으로 입양아동을 학대하는 장면이 등장하는 등 청소년 시청 보호 시간대에 방영되는 일일 드라마에서조차 납치·감금·폭행·도청·음모·불법이나 비리 등 범죄 내용이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은 물론, 폭력이 일상화되어 등장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성격결함으로 입양아동을 학대하는 장면을 담은 KBS2TV '왼손잡이 아내' / KBS2TV '왼손잡이 아내' 방송화면 캡처
성격결함으로 입양아동을 학대하는 장면을 담은 KBS2TV '왼손잡이 아내' / KBS2TV '왼손잡이 아내' 방송화면 캡처

이에 일상 속 사소한 폭력들은 다소 둔감하게 그려지고 있으며, 청소년 보호 시간대 드라마 경우 일상적이고 빈번한 폭력장면 묘사는 모방의 위험이 있으므로 ‘15세 이상 시청가’ 등급에 맞는 폭력 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모니터링 결과를 보고했다.

물론 폭력성과 선정성에 대한 기준은 사람의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다. 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 한석현 팀장은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선정성과 폭력성에 대한 기준은 시청자 시각마다 다르고, 시대마다 다르다. 선정성과 폭력성에 대한 기준을 잡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라고 말하는 한편 “시청자들과 만나는 건 결국 방송국이다. 시대에 따라 선정성과 폭력성에 대한 기준이 다를 순 있지만 시청자들과의 의사소통을 통해 명확한 기준을 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TV 드라마들이 폭력적, 선정적으로 변해가는 이유에 대해서는 “범죄를 다루는 장르물이 많이 생겨나고 있는 것은 (드라마가) 폭력성 측면이 늘어난 이유 중 하나”라며 “장르물을 성인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면이 있고, 이는 곧 화제성과 연관되면서 장르물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또 예전에는 지상파의 방송이 유료 채널에 영향을 줬다면 요즘에는 유료 채널의 방송을 지상파가 벤치마킹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시청자들 사이에서 ‘(수위가) 심한 것 아니냐’고 반응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근엔 드라마에서 (캐릭터들의) 선과 악 구조를 많이 다루면서 납치장면, 생매장 장면을 많이 다룬다. 또 지상파에서는 성범죄에 대한 묘사도 많이 보이고  있다. 살인, 폭력과 같은 행태가 많이 보이고 있으며, 일상적인 폭력과 언어적 폭력에서도 빈도수가 늘고 표현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추세”라고 전했다.

장르물의 증가는 폭력적인 장면의 증가를 이끌어내고 있다. / KBS2TV '저스티스' 방송화면 캡처
장르물의 증가는 폭력적인 장면의 증가를 이끌어내고 있다. / KBS2TV '저스티스' 방송화면 캡처

그렇다면 앞서 살펴본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느슨한 심의만이 문제인 것일까. 한석현 팀장은 “드라마가 끝나고 규제를 한다는 것, ‘사후규제’에 대한 실효성 논란은 줄곧 이어져왔다. 지금 당장 문제가 되는 장면인 것 같은데 한참 뒤에 제재가 이뤄진다는 것이 문제다”라며 “심사가 신속하게 이뤄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 다만 규제의 신속성에는 표현의 자유 침해가 문제가 될 수 있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의 신속한 규제가 이뤄질 수 있는 심의 규정의 변화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그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규제보다도 방송사 내부 심의 기준의 변화가 시급하다. 내부적인 안전장치를 가지고 있지만 그 실효성이 있는가가 문제다. 또한 내부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방송사 내부의 변화에 대한 목소리는 단순 한석현 팀장만의 생각이 아니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이윤소 소장 또한 <시사위크>와의 통화를 통해 “방송사 자체적으로 필터링을 하는 것이 중요한데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 SBS ‘빅이슈’는 방송사의 제작 현실이 어떤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SBS ‘빅이슈’는 장면에 대한 제작진의 수정 요청 메시지를 지우지 않은, 완성되지 않은 CG 화면 장면을 그대로 내보내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 6조에는 ‘방송사업자는 자체심의기구를 두고 방송 프로그램(보도에 관한 방송프로그램을 제외)이 방송되기 전 자체적으로 심의를 해야 한다는 조항이 적시돼 있다. 이에 현재 지상파 3사에서는 제각기의 방식으로 사전 심의를 진행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 6조의 내용 / 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 6조의 내용 / 방송통신위원회

한 팀장은 “최근 초반부는 ‘19세 이상 시청가’로 방영했다가 ‘15세 이상 시청가’로 변경해 방영하는 드라마들이 있다”며 “자극적·폭력적 장면을 초반에 배치해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고자 함이다. 한 드라마에서 시청등급을 왔다갔다하는 것도 문제다. 문제가 되는 장면을 스스로 컨트롤하기 위해 내부심의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이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사후규제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화제성과 시청률이 중요하니 무리수를 두는 경우들이 있다. 작품 밀도가 충분하면 시청자들에게 사랑받는데, 몇 장면만으로 화제성을 끌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작품들은 대부분 작품 완성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각 방송사는 자체 심의팀을 가지고, 드라마 시청등급을 자체적으로 매긴다. 보통 20명 내외로 구성된 자체 심의팀이 방영 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프로그램의 등급분류 및 표시 등에 관한 규칙’에 따라 폭력성, 선정성, 언어사용, 모방위험 등 유해 정도 등을 파악해 선정한다.

아무리 아이들에게 시청 지도를 한다고 해도 24시간 시청 지도를 할 순 없지 않나.

19세 드라마라도 청소년들이 충분히 볼 수 있기에

TV 매체 특수성을 고려한 제작이 이뤄져야만 한다.

내부 심의를 하고 있지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어딘가 문제인가는 방송사가 제일 잘 알 것이다”

국내 드라마 제작이 생방송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내부적으로 어떠한 가이드라인과 안전장치를 가지고 있더라도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사전제작 시스템이 자리를 잡아야한다”고 한석현 팀장이 목소리를 높인 이유기도 하다.

물론 자유로운 표현의 존중 속에 TV 드라마는 영화 못지않은 퀄리티를 보유하게 됐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TV 드라마의 질적인 향상은 어느 시청자도 부정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TV 매체가 지닌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장면으로 화제성과 시청률을 얻으려는 시도는 되레 시청자들의 외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능사가 아니다.

시청자들과의 소통을 통해, 시청자들이 수용할 수 있는 정도의 선정성과 폭력성을 명확시 하고 방송사 내부적으로 먼저 이를 지키는 일. ‘바른 볼거리’를 보길 원하는 시청자들의 바람을 이루는 첫걸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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