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이 위기’다. 최근 부쩍 더 많이 들려오는 얘기다. 청년 인구의 수도권 이탈, 고령화 현상이 가속화 되면서 ‘지방 소멸위기론’까지 부상하고 있다. 실제로 노인만 남은 마을은 소멸 위기를 현실로 마주하고 있다. 마을, 나아가 지역의 붕괴는 지방자치 안정성을 흔들고, 나라의 근간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엄중한 위기의식을 갖고 적합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미래를 담보하기 어렵다. <시사위크>에선 이 같은 시각 아래 현 위기 상황을 진단해보고 과제를 발굴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젊은협업농장 정영환(38) 매니저가 농장을 소개하고 있는 모습. /이미정 기자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소멸 위기를 심각하게 피부로 느끼고 있는 곳은 농촌이다. 저출산과 청년층의 이탈로 농가 인구는 줄어들고 갈수록 고령화되고 있는 추세다. 지난해 전체 농가 인구(231만5,000명) 중 44.7%가 65세 이상 고령 농업인으로 나타났다. 반면, 40대 미만 청년 농민층은 16.9%에 그쳤다. 농촌 인구 고령화와 청년 인구 감소는 비단 산업 위기만을 일컫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 공동체 문화의 근간을 흔드는 문제라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크다. 

이런 문제의식 아래, 일부 지방 지역에선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작지만 의미 있는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 충남 홍성 장곡면 도산리에서 ‘사회적 농업’을 실천하고 있는 협동조합 ‘젊은협업농장’도 그 중 하나다. 기자는 지난 16일 ‘젊은협업농장’을 찾아 그 의미를 짚어봤다. 

◇ “단순히 농사 배우는 곳 아냐”… 공동체 회복을 꿈꾸다 
 
“기다리세요. 제가 데리러 갈게요.” 이날 오전 9시 50분. 충남 홍성군 광천읍 광천역에서 내려 농장까지 택시타고 이동하려던 참에, 젊은협업농장 정영환(38) 매니저가 작은 트럭을 끌고 마중을 나왔다. 그는 시골에선 좀체 찾기 어렵다는 귀촌한 청년 농부이자 ‘젊은협업농장’의 활동가다. 차를 타고 10분여 분쯤, 구불구불 길을 따라가니 농장이 자리 잡은 도산2리 마을에 금세 도착했다. 

먼저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단층짜리 건물들이었다. 정 매니저는 ‘오누이 권역사업’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정 매니저는 “이 마을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회적 단체, 협동조합과 마을학회가 사무실과 세미나 공간으로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다”며 “한편에 있는 텃밭 공간은 체험 학습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정영환 매니저는 “협업농장은 단순히 농사 기술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농촌의 삶을 경험하고 마을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그 지역 문화를 익혀나가는 과정에 힘을 쏟는다”고 말했다. /이미정 기자 

오누이권역 사업은 홍성군이 장곡면 신동리와 도산2리, 지정 1·2리 등 4개 마을을 묶어 공동 발전을 꾀하고 지속가능한 농촌 마을을 만드는 목표로 추진된 농촌정비사업이다. 마을 사람들과 농업에 관심이 있는 청년들과 전문가, 사회적 협동조합들이 함께 모여 ‘마을 살리기’에 나서면서 우수 권역 사업 사례로 외부에 알려진 바 있다. 
 
협동조합 ‘젊은협업농장’도 마을의 활력을 더하는데 큰 역할을 해왔다. 젊은협업농장은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풀무학교) 교사이던 정민철 대표가 2012년 제자 2명과 함께 뜻을 모아 비닐하우스 1동을 빌려 쌈 채소를 기르면서 시작했다. 

홍성 홍동면에 위치한 풀무학교는 친환경농업과 지역 공동체 교육 산실로 평가되는 대안학교다. 1958년 설립된 이 학교를 구심점으로 홍동면 일대엔 수십 개에 달하는 사회적 단체와 협동조합이 탄생했다. 정 대표는 친환경 농업뿐만 아니라 농촌사회를 접할 수 있는 ‘인큐베이팅 시스템’을 만들고자 ‘젊은협업농장’을 구상했다고 한다. 땅과 자본이 없는 청년들에게 유기농 농사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풀무학교 출신이자 정 대표의 제자인 정 매니저는 2012년 가을 ‘젊은협업농장’에 합류했다. 그때 나이는 30대 초반이었다. 정 매니저는 “처음에는 완전히 귀농할 생각까진 못했다”며 “대학원에서 논문을 준비하고 공부하고 있을 때 ‘함께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내려와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마을에 완전히 정착을 하게 됐다. 아내와 자녀들도 이 마을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젊은협업농장은 현재 8동의 비닐하우스와 1,500평의 논을 운영한다. 비밀하우스 농작물을 쌈 채소로 한정이 돼 있다. 이날 그의 안내에 따라 비닐하우스 농장을 둘러봤다. 몇몇 청년이 농작물을 살피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정 매니저는 “현재 5명이 농장에서 생산 일에 참여하고 있다”며 “농장에 출자한 조합원은 43명이 되지만, 이들이 모두 농사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생산에 참여하는 이들은 생산자로 부르는데, 그 규모는 매번 바뀐다. 3~4명이 될 수도 있고 10명이 넘을 수도 있다”고 전했다. 생산된 농장물은 주변 식당이나 유통센터에 팔려나간다. 젊은협업농장의 연 매출은 1억4,000만 원 가량. 생산자들은 협업농장에 생산된 수익을 일정하게 나눠 갖는다고 한다. 

◇ “마을사람이 되게 하는 게 목표”

그는 농사 규모를 지금보다는 늘릴 계획이 없다고 했다. 정 매니저는 “농장 규모를 늘리면 마을 일에 참여할 수 없다”며 “협업농장은 단순히 농사 기술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농사 기술만 배우고 싶다면, 농업기술센터를 가는 게 더 나을 수 있다. 우리는 농촌의 삶을 경험하고 마을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문화를 익혀나가는 과정에 힘을 쏟는다. 농장 참여자들이 마을 사람이 되게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이에 젊은협업농장 사람들을 마을 대소사에 빠지지 않고 참여하는 편이라고 한다. “나이 많은 어른이 돌아가시면, 노인이 매기 힘든 상여를 매기도 하고, 고장 난 기계를 수리해주기도 한다고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물론 청년들도 농장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받는다.

정 매니저는 “요즘 청년들은 남에게 신세지는 것을 낯설어한다”며 “내 것과 남의 것이 분명하게 나누고, 공적인 삶과 사적인 삶을 구분하는 게 요즘 청년들이다. 그런데 농촌에 살면 그러기가 쉽지 않고, 때론 이웃에게 자연스럽게 신세를 져야 할 때도 있다. 물론 처음엔 그런 문화가 낯설 수 있다. 협업농장에서 함께 활동하며, 그 갈등을 미리 경험하고 해결책을 생각해볼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에 젊은협업농장은 다양한 도·농간 교류 및 학술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정 매니저와 인터뷰를 진행한 사무실 한쪽 면엔 청년 아카데미, 상상캠프, 학술 모임 등 각종 행사 포스터가 빼곡히 붙어 있었다. 

젊은협업농장은 다양한 도·농간 교류 및 학술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정영환 매니저 제공

정 매니저는 “주최하거나 주관한 것도 있고 단순히 참여한 것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 중 눈길을 사로잡았던 것은 두 젊은 청년 모습이 담긴 ‘해강산 프로젝트’ 포스터다. 2014년 추진된 해강산 프로젝트는 지역의 젊은이들이 농사일 외에 다른 활동들을 경험할 수 있도록 지원한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청년 구해강 씨와 김강산 씨는 7주간 글쓰기, 17박18일 동남아 자전거 여행 등을 경험했다. 이들은 크라우드 펀딩을 여행 자금을 직접 모으기도 했다. 사회 재단, 협동조합, 지역 주민들의 지원 덕에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구해강 씨는 도시로 가는 대신, 마을에 정착했다. 이날 젊은협업농장에서 근처에서 구씨를 만날 기회를 얻었다. 구씨는 “농업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있다”며 “주업으로 하지 못하더라도 농업을 꾸준히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또 마을 활동도 계속해서 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어 “모두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도 전했다.  

도산리엔 마을 사람들과 협업농장, 학회 사람들이 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마침 점심때라, 기자도 함께 점심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음식은 마을 사람이 요리한다고 한다. 한자리에 모은 사람들의 표정은 밝고 편안해보였다. 한 여성 주민은 젊은 청년들의 마을 내 활동에 대해 “좋지요”는 짧은 답변과 함께 빙그레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젊은협업농장의 사회적농업 사례는 많은 지자체나 민간 단체 관계자들의 견학이 이어질 정도로 주목을 받고 있다. 정 매니저는 “협업농장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라며 “협업 단체, 지역 주민, 지자체들이 함께 힘을 모아 이뤄진 결과다. 지방 소멸 위기와 청년층 이탈 문제를 단기간 해결될 수 없겠지만 모두가 위기의식을 갖고 노력한다면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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