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Extinction)’. 지구상에 존재하던 어떤 종이 모종의 이유로 세계에서 사라져 개체가 확인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지구의 입장에서 멸종은 항상 일어나는 작은 사건일 뿐이다. 지구의 생명역사가 시작된 38억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의 생명체 대부분이 사라지는 ‘대멸종의 시대’가 존재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멸종의 원인이 기존의 ‘자연현상’에 의한 것이 아닌, 인간이 직접적 원인이 된 멸종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환경오염, 불법 포획부터 지구온난화까지 우리 스스로 자초한 결과물들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이제 지구는 우리에게 묻는다. “너희 스스로 자초한 재앙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 있는가.” [편집자 주]

놀랍게도 꿀벌은 지구생태계 전체를 변화시킬 힘이 있는 곤충이다. 때문에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도 멸망한다는 예언이 존재할 정도다./ 픽사베이
놀랍게도 꿀벌은 지구생태계 전체를 변화시킬 힘이 있는 곤충이다. 때문에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도 멸망한다는 예언이 존재할 정도다./ 픽사베이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꿀벌이 사라지면 인류도 4년 내 멸망한다.” 이는 상대성이론의 저자로 잘 알려진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예언으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물론 이것은 1994년 벨기에서 환경오염으로부터 꿀벌을 지키자고 시위를 하던 프랑스 양봉업자들이 피켓에 적은 문구이기 때문에 실제 아인슈타인의 의견인지에 대한 사실 확인은 어렵다고 한다. 다만 앞서 소개한 예언처럼, 꿀벌의 멸종이 과연 인류도 함께 멸종할 만큼 지구 생태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지구 생태계의 대들보 ‘꿀벌’

평범한 곤충에 불과할 것 같은 꿀벌은 놀랍게도 지구 생태계 전체를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꿀과 꽃가루를 모아 식량으로 저장하는 꿀벌의 특성 때문이다. 꿀벌의 강력한 힘은 오래 전 공룡이 지구를 지배하던 시절부터 나타났다. 약 1억4,500만년 전 백악기 시대 꿀벌의 등장으로 그동안 지구를 지배하던 ‘식물의 왕좌’ 자리가 ‘겉씨식물’에서 ‘속씨식물’로 교체된 것이다.

겉씨식물은 꽃이 피지 않고 밑씨에서 발달한 종자가 나출되는 식물군으로 바람, 물 등에 의해 꽃가루를 날려 번식한다. 이 때문에 광범위한 지역에 번식할 수 있어 백악기 이전 쥐라기시대까지 은행나무, 소철 등 다양한 종이 크게 번성했다.

꿀벌의 다리에 묻은 노란색 꽃가루 덩어리. 꿀벌은 이를 다른 꽃으로 옮기며 식물 번식의 매개체 역할을 한다./ 픽사베이
꿀벌의 다리에 묻은 노란색 꽃가루 덩어리. 꿀벌은 이를 다른 꽃으로 옮기며 식물 번식의 매개체 역할을 한다./ 픽사베이

겉씨식물의 경쟁자인 속씨식물은 생식기관으로 꽃과 열매가 있는 종자식물 중 밑씨가 씨방 안에 들어 있는 식물이다. 속씨식물은 밑씨를 씨방에 보호하기 때문에 기존의 겉씨식물보다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안전했다. 반면 바람에 다수의 꽃가루를 날리던 겉씨식물에 비해 번식력은 뒤쳐졌었다. 

그러나 꿀벌들이 식량을 얻기 위해 속씨식물의 꽃 속으로 드나들면서 꽃가루를 전파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꿀벌은 1kg의 꿀을 얻기 위해 약 4만km를 이동할 정도로 광범위한 활동량을 자랑한다. 이를 통해 속씨식물은 안정적인 씨앗 보호와 동시에 높은 번식력까지 갖춰 폭발적으로 번성하기 시작했고 현재에 이르러 육상 식물의 9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꿀벌로 인해 번성한 속씨식물은 포유류, 파충류, 조류 등 수많은 육상 생물의 먹이가 됐다. 인간 역시 곡류, 과일류, 야채류 등 주 식량원뿐만 아니라 약품 원료, 의복 건축자재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이용하고 있다. 사실상 지구 육상 생태계의 대들보 역할을 꿀벌이 하고 있는 셈이다. 

◇ 꿀벌의 멸종, 식량난과 생태계 붕괴 초래… “한 해 142만명 사망할 것”

이처럼 지구 생태계의 대들보 역할을 하고 있는 꿀벌이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전문가들은 지구상에서 꿀벌이 100% 멸종된다면 식량난, 영양실조 등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을 것으로 예상한다.

지난 2015년 하버드 공중보건대 사무엘 S 마이어 교수 연구팀은 영국 의학저널 ‘란셋(The Lancet)’에 발표한 연구보고를 통해 꿀벌이 사라진다면 한 해 142만명의 사람들이 사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꿀벌이 100% 사라질 시 전 세계적으로 과일 생산량의 22.9%, 채소 생산량의 16.3%가 감소하게 된다. 견과류 생산량 역시 22.9%가 감소한다. 이에 따라 저소득층이 이용할 수 있는 과일, 채소 등이 크게 감소하고 세계적인 식량난과 영양부족으로 다수의 사람들이 기아로 사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과일, 채소 및 견과류를 사료로 삼고 있는 가축들의 수도 감소하기 때문에 낙농제품, 육류 등 식품군 전체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분석된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농작물 생산 중 70%가 꿀벌의 수분에 의해 생산되고 있다. 만약 꿀벌이 멸종된다면 사진에 등장한 과일, 채소들 중 대부분이 사라지는 것이다./ 픽사베이

실제로 꿀벌이 우리의 식탁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전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농작물 생산 중 70%가 꿀벌의 수분에 의해 생산되고 있다. 이 때문에 국제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는 꿀벌이 전 세계 식량 재배에 기여하는 경제적 가치가 373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꿀벌의 멸종이 생태계 붕괴를 초래할 수있다고 경고한다. 박종균 경북대학교 생태환경대학 교수는 국립생태원 칼럼을 통해 “꿀벌이 사라져 식물의 화분매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면 식물이 열매를 맺지 못해 사라지게 된다”며 “자연히 식물을 먹이로 삼는 초식동물이 사라지고 분해생물과 미생물도 도미노처럼 연쇄적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이로 인해 식량 고갈과 사막화 현상이 발생해 인간의 생존도 위협받게 된다”며 “꿀벌이 사라지면 인간도 사라진다는 예언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 세계 꿀벌 개체수 급감… 국내에선 ‘낭충봉아부패병’으로 75% 폐사

문제는 꿀벌 멸종에 대한 전문가들의 경고가 머지않아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17년 유엔 발표에 따르면 현재 지구촌 야생벌 2만종 가운데 40%인 8,000종이 멸종위기에 처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서는 지난 2006년부터 꿀벌 수가 감소하기 시작해 현재 미국 내 꿀벌의 40%가 넘는 수가 사라졌다. 유럽 등 세계 여러 지역에서도 해마다 꿀벌이 30~40%가 사라지고 있다. 과학자들은 오는 2035년엔 꿀벌이 완전히 멸종될지도 모른다고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꿀벌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하는 것은 ‘군집붕괴현상’ 발생에 의한 것이다. 군집붕괴현상은 꿀과 꽃가루를 운반하러 나갔던 일벌이 둥지로 돌아오지 못하거나 갑작스레 일벌과 유충들이 다수 죽어버리면서 벌집이 통째로 몰살되는 현상을 말한다. 군집붕괴현상의 원인으로 △무선장비의 전자기파로 인해 일벌이 길을 잃는 현상 △지구온난화로 발생한 고온 현상에 의한 폐사 △농약 등 화학물질 △전염병 등이 대표적이다.

세계적으로 꿀벌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하는 ‘군집붕괴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꿀벌의 흑사병으로 불리는 낭충봉아부패병에 의한 군집붕괴현상이 발생해 약 75%의 토종 꿀벌이 폐사됐다./ 픽사베이

우리나라도 ‘낭충봉아부패병’이라는 전염병으로 인해 토종 꿀벌이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한 상태다. 낭충봉아부패병은 꿀벌의 유충에서 발생하는 바이러스성 질병이다. 감염되면 유충은 서서히 건조, 폐사에 이르게 된다. 딱히 치료제가 없는 상태이며 전염성이 매우 높아 한번 발병하게 되면 벌집 전체가 초토화되는 무서운 병이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지난 2009년 강원도 홍천에서 처음 발병된 낭충봉아부패병은 2010년 전국으로 퍼진 뒤 2년 만에 토종 꿀벌의 75%를 폐사시켰다. 그야말로 꿀벌의 ‘흑사병’인 셈이다. 때문에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낭충봉아부패병이 창궐하기 전인 2010년 전국 토종꿀벌의 벌통 수는 42만개였으나 지금은 3만~10만개 수준으로 대폭 감소했다.

낭충봉아부패병의 정확한 발병원인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낭충봉아부패병이 크게 번지는 이유를 ‘이상기온’으로 보고 있다. 최근 지구 온난화로 인해 이상기온이 발생하면서 벌들의 면역력이 크게 감소했고 동시에 국내에 존재하던 낭충봉아부패병 바이러스가 유전자 변이를 일으키면서 피해가 커진 것으로 추정했다.

토종 꿀벌 농민들이 낭충봉아부패병에 감염된 벌집을 불태우는 모습./ 뉴시스

◇ 꿀벌 개체수 보존 위한 국내외 움직임 바빠… 신품종 개발, 농약금지 등

낭충봉아부패병으로 인해 국내 토종 꿀벌의 씨가 마르고 있자 관계기관과 양봉업계도 대책마련에 나선 상태다. 농촌진흥청은 낭충봉아부패병에 강한 새 토종꿀벌 품종 개발을 마치고 농가에 보급하고 있다.

이번 신품종 토종벌은 지난 2017년부터 2년간 전국 9개 지역에서 현장실증 및 지역적응시험을 거쳐 낭충봉아부패병의 저항성을 확인했다. 신품종의 유충 체내에 바이러스가 잠복해도 질병의 발병이 되지 않으며 다른 토종 꿀벌에도 전염을 유발하지 않는다. 농촌진흥청은 오는 2021년까지 신품종 토종 꿀벌 보급을 통해 토종꿀 생산 기반 복원에 주력할 예정이다.

남성희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기술지원팀장은 “시범사업 추진으로 신품종 토종벌을 전국에 보급할 것”이라며 “질병 없는 토종벌을 키우고 고품질 꿀을 생산할 수 있도록 기반 조성에 힘을 쏟을 것”이라고 전했다.

유럽연합(EU)는  살충제 ‘네오니코티노이드’의 일종인 ‘티아클로프리드’를 EU시장에서 전면 금지한다고 밝혔다. 네오니코티노이드 성분은 꿀벌 정자의 건강을 떨어뜨려 생식을 방해하고 기억력 및 위치파악 능력에 현저한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 사진은 지난 2018년 꿀벌 보호를 위해 네오니코티노이드 금지 시위 모습./ 뉴시스

한편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이미 꿀벌 멸종을 막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 1월 유럽연합(EU)의 집행위원회는 살충제 ‘네오니코티노이드’의 일종인 ‘티아클로프리드’를 EU시장에서 전면 금지한다고 밝혔다. 네오니코티노이드 성분은 꿀벌 정자의 건강을 떨어뜨려 생식을 방해하고 기억력 및 위치파악 능력에 현저한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티아클로프리드가 사람의 건강과 꿀벌 개체수 감소 등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우려가 있다”며 “유럽식품 안전국(EFSA)의 권고에 따라 해당 살충제에 대한 승인을 갱신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대책들이 꿀벌들의 줄어든 개체수를 순식간에 되돌려 놓는 것은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노력이 지속된다면 다시 한 번 한국의 산 어디에서나 윙윙대는 꿀벌들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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