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못 쓰게 되어 내다 버릴 물건이나, 내다 버린 물건을 통틀어 이르는 말.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명시된 ‘쓰레기’의 정의다. 하지만 우리가 ‘쓰레기’로 낙인찍어 내다 버리는 것들 중에는 ‘쓸모가 여전한’ 것들이 적지 않다. 실제 그렇게 버려진 쓰레기는 새로운 자원이 되거나 에너지로 재탄생해 새 생명을 얻기도 한다. 지구를 병들게 하는 원흉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지구를 구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쓰레기의 역설’인 셈이다. 이에 시사위크에서는 변화를 만들기 위해 실천하는 다양한 사례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환경오염원 감소를 위한 해법과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한 중소업체에서 개발한 테이크아웃용 컵용 종이 뚜껑. / 사진=범찬희 기자
한 중소업체에서 개발한 테이크아웃용 종이뚜껑. / 사진=범찬희 기자

시사위크=범찬희 기자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다회용컵 사용에 우리 사회가 길들여진 모습이다. 지난 2018년 8월 매장 내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하는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자원재활용법)’이 시행된 지 1년 반 가량이 지나면서 다회용컵을 사용하는 문화가 생활 속으로 스며들었다. 다회용컵에 불편함을 호소하는 볼멘소리도 시간이 흘러 자취를 감춘 듯하다. “테이크아웃인가요?”라는 카페 직원의 물음은 자연스레 주문의 마지막 절차로 자리 잡았다.

◇ 관심 밖으로 밀려난 뚜껑… 대체제 등장

‘종이빨대’의 등장도 달라진 카페 문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빨대는 자원재활용법 적용대상에서 제외됐지만 국내 커피전문점 1위 스타벅스가 선제적으로 종이빨대 도입에 나서면서 자원 절감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스타벅스코리아에 따르면 2018년 11월 기존 플라스틱 빨대를 종이빨대로 대체한 후 월 평균 약 1,500만개이던 빨대 소요량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무의식 중에 컵에 꽂았던 빨대가 없어도 음용에 별다른 지장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커피 등 음료를 마시는 데 필요한 부자재들이 친환경에 적합하게 진화해 나가고 있지만, 유독 변화에 둔감한 소모품이 있다. 바로 ‘뚜껑’이다. 정부가 나서 플라스틱 컵 사용을 규제하고 기업 스스로 플라스틱 빨대를 퇴출시켰지만, 뚜껑만은 친환경 담론에서 벗어나 있다. 연간 얼마나 많은 테이크아웃용 플라스틱 뚜껑이 소비되고 있는지 통계도 잡히지 않는다.

주식회사 '바나'의 호현덕 대표가 최근 기자와 만나 자신이 개발한 종이 뚜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플라스틱 빨대가 점점 퇴출되고 있지만 뚜껑은 관심에서 밀려나 있었다며, 종이 뚜껑이 플라스틱 뚜껑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 사진=범찬희 기자
주식회사 '바나'의 호현덕 대표가 최근 기자와 만나 자신이 개발한 종이뚜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플라스틱 빨대가 점점 퇴출되고 있지만 뚜껑은 관심에서 밀려나 있었다며, 종이뚜껑이 플라스틱 뚜껑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 사진=범찬희 기자

업계 일각에서 90억개 정도로 추정할 뿐이다. 일부 커피전문점에서 리드 컵을 도입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빨대를 사용하지 않도록 고안된 것이지 ‘플라스틱 뚜껑’이라는 본질에는 변화가 없다.

플리스틱 뚜껑이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던 건 대체제가 부재했던 탓이 크다. 플라스틱을 대체할 친환경적 소재로 제작된 뚜껑이 존재하지 않다 보니 무리해서 교체할 필요성이 대두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스타벅스의 종이빨대 도입에 주목해 ‘종이 뚜껑’ 개발과 생산에 나서는 업체들이 하나둘 등장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테이크아웃용 컵에 사용되는 종이뚜껑을 제조하는 곳은 3곳으로 알려졌다. 주식회사 ‘바나’의 호현덕 대표도 그 중 하나다.

컵라면 용기 등을 만드는 업체에서 일해 온 호 대표는 업무를 통해 커피업계 사정을 알게 돼 종이뚜껑 개발에 뛰어들었다. 퇴사 후 종이뚜껑 개발에 몰두, 1년 8개월여 만에 양산품을 내놓게 됐다.

호 대표는 “옥수수전분을 이용한 플라스틱(PLA)으로 뚜껑을 만드는 시도가 있었지만 가격 등 장벽에 부딪혀 대중화되지 못했다”면서 “딱히 플라스틱 뚜껑 대체제가 없던 와중에 거래처 사장님께서 자신이 만난 프랜차이즈 담당자들이 친환경 뚜껑을 찾는다는 얘기를 들려줘 종이뚜껑 개발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개발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사업 자금은 기술보증기금에서 창원지원금으로 1억원을 지원 받아 비교적 수월하게 마련했다. 그러나 두 달 만에 나온 아이디어를 실물로 구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샘플 확보에 애를 먹었다. 포장의 메카인 서울 을지로 방산시장 일대를 샅샅이 뒤졌지만 헛걸음의 연속이었다. 인연을 맺은 옛 거래처에 문의해도 원하는 답변을 얻지 못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던가. 이전 회사 공장 한 켠에 수년전 중국 지사에서 들여온 제품을 쌓아뒀는데, 그 중 하나가 호 대표가 생각했던 이미지와 딱 맞아 떨어졌다.

호 대표는 “확보한 샘플을 토대로 설비 업체를 설득할 수 있었다”면서 “설비 제작에 본격적으로 착수한 지 1년 반년 만인 지난해 11월 시제품이 나왔다. 이를 토대로 올해 1월 양산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호 대표는 종이뚜껑과 관련된 디자인 특허 6건과 상표권 1건 등 특허 등록도 마쳤다.

종이 빨대와 달리 일반 커피전문점에서 플라스틱 뚜껑 사용이 일반화 돼 있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연간 90억개의 테이크아웃용 종이컵 뚜껑이 소비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종이빨대와 달리 일반 커피전문점에서 플라스틱뚜껑 사용이 일반화 돼 있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연간 90억개의 테이크아웃 용 플라스틱뚜껑이 소비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 종이뚜껑, 선입견 넘어 ‘대세’ 될까

하지만 종이뚜껑이 정착되려면 몇 가지 난관을 넘어야 한다. 우선 금액적인 부분이다. 개당 20원가량 하는 플라스틱 소재 대비 종이뚜껑은 2배 정도 비싸다. 폴리에틸렌(PE)이 아닌 친환경 소재 코팅을 씌울 경우 가격은 더 뛴다. 커피전문점에서 종이뚜껑 도입을 망설이는 결정적인 이유다. 실제 한 커피전문점 관계자는 “종이빨대도 최근에서야 국산화가 이뤄진 것으로 봤을 때 종이뚜껑 제조사는 더 희소하지 않겠나”라면서 “기업 입장에서 단가가 높은 종이뚜껑을 선뜻 구매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대량생산이 뒷받침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생소하다’는 점도 종이뚜껑의 정착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상품성이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종이뚜껑 도입은 기업에게 모험과도 같다. 종이빨대 도입 초기 내구성이 떨어진다는 등 숱한 문제점들이 표출된 영향도 깔려있다. 일종의 눈치 보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 역시 이를 이유로 플라스틱뚜껑 사용 억제를 강제하지 못하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컵의 몸통과 뚜껑을 일체화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업체와 자율협약을 맺을 수는 있겠지만 상품성이 담보되지 않은 종이뚜껑 사용을 의무화하려는 계획은 아직 없다”고 알렸다.

또 텀블러 등 다회용컵 사용을 최선으로 꼽는 곳에선 종이뚜껑을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종이뚜껑이 ‘베스트’(Best)는 아닐지라도 ‘베터’(Better)임은 분명해 보인다. 빨대는 하면서 뚜껑은 내버려 둘 이유가 없다. 번듯한 대체제가 등장했는데도 말이다. 종이뚜껑의 존재 가치를 깨닫지 못한다면 아마 텀블러는 고사하고 플라스틱 뚜껑을 영원토록 사용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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