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시사위크 특별기획] Ⅱ. 놀 권리

어린이는 우리의 미래이자, 우리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어린이가 행복하지 않은 사회는 결코 희망적이지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린이 삶의 만족도가 OECD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그럼에도 어린이 행복권 신장은 우리 사회 화두에서 늘 벗어나 있다. 어린이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어린이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노력이나 인식을 찾아보기 힘들다. 어쩌면, 우리는 어린이들을 잘 키우고 있다는 깊은 착각에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 <시사위크>는 2020년을 맞아 우리 사회 곳곳에 놓여있는 어린이 문제들을 톺아보며 어린이가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그려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2월 포용국가 사회정책 대국민 보고 참석에 앞서 어린이들을 만나 보드게임을 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2월 포용국가 사회정책 대국민 보고 참석에 앞서 어린이들을 만나 보드게임을 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앞서 살펴봤듯, 우리나라의 아동 놀이 환경과 인식은 심각한 수준이며 이는 아동 행복권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늦었지만 아동 놀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형성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특히 이 문제를 둘러싼 담론을 주도하고 해결책을 모색할 기구가 마련됐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 포용국가 아동정책에 포함된 아동 놀이 문제

그동안 우리사회의 아동 놀이 문제에 대한 관심은 사실상 선언적 수준에 그쳐왔다. 1957년 처음 선포되고, 1988년 개정되기까지 한 ‘어린이헌장’엔 분명 ‘어린이는 즐겁고 유익한 놀이와 오락을 위한 시설과 공간을 제공받아야 한다’는 항이 존재하지만 현실은 충분하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의미 있는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2월, ‘함께 잘 사는 포용국가’를 실현해나가겠다며 큰 틀에서의 정책 방향성을 발표한 바 있다. 이날 발표된 핵심내용은 크게 ‘포용국가 사회정책 추진계획’과 ‘포용국가 아동정책 추진방향’으로 나뉘었다.

이 중 아동정책을 주도한 보건복지부는 석 달 뒤인 지난해 5월보다 구체적인 정책방향을 내놓았다. 여기엔 그동안 쌓여왔던 우리나라 아동문제에 대한 냉철한 진단과 함께 새로운 시각 및 체계 구축의 의지가 담겼다.

특히 네 가지로 정리된 향후 정책방향엔 ‘아동의 놀 권리를 위한 가정, 학교, 지역사회의 노력 강화’도 포함됐다. 아울러 ‘창의성·사회성 계발을 위한 놀이 혁신’이 4대 중 하나로 제시됐고 △지역사회 놀이혁신 추진 △지역사회 주도의 놀이혁신 확산 △다양한 놀이공간 및 프로그램 확산 △창의적 놀이를 통해 잠재력을 키우는 학교 등이 주요 추진과제로 꼽혔다.

이는 우리나라가 국가적 차원에서 아동 놀이 문제에 대해 진정성을 갖고 접근하기 시작한 사실상 첫 발걸음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무엇보다 정부는 정책방향에서 “놀이란 목적 없이 자발적, 주도적으로 즐거움을 추구하고 에너지 발산을 동반하는 적극적 참여 행위로, 신체·인지·언어·사회성·정서·창의성 등 아동 발달에 필수적”이라고 강조하며 과거에 비해 확실히 달라진 인식을 내비쳤다.

또한 아동 놀이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족하거나 잘못 형성돼있는 우리사회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대책 마련에 나선 점도 긍정적인 대목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부모를 대상으로 한 놀이의 중요성 교육 및 캠페인 확대 등 홍보 강화와 다양한 정보 및 프로그램 제공 등 실질적인 지원 계획을 수립했으며, 교사들을 대상으로도 놀이 관련 직무 교육 강화를 검토할 방침이다. 단순히 정부 홀로 분주한 채 정작 현실과 동떨어지는 정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놀이혁신과 관련된 향후 정책 추진의 흐름을 명확하게 규정해놓은 점 역시 주목을 끈다. 정부는 놀이혁신을 주도할 주체를 중앙이 아닌 지역으로 명시했고, 놀이혁신의 확산 역시 지역을 중심으로 추진할 방침이다.

아이들의 놀이가 이뤄지는 현장에서 다양한 아이디어가 창출되고, 이것이 다른 지역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즉, 놀이혁신의 기본적인 흐름은 ‘위에서 아래’가 아닌 ‘아래에서 위로’ 이뤄지게 된다. 무엇보다 놀이의 주체인 아동 및 청소년들의 목소리도 적극 반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안착시키는 데에도 방점을 두고 있다. 아이들의 의사가 반영된 ‘하고 싶은 놀이’를 지역 차원에서 실현시키고, 좋은 사례의 경우 다른 지역으로 전파시키는 식이다.

이는 아이들의 놀이 현장과 거리가 먼 중앙에서 탁상공론으로 놀이혁신을 만들어내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대신 정부는 지역 차원의 자체적인 놀이혁신 및 확산을 다방면으로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해 5월 포용국가 아동정책 현장 발표회에서 어린이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다. /뉴시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해 5월 포용국가 아동정책 현장 발표회에서 어린이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다. /뉴시스

◇ 놀이혁신위원회 출범… 지자체들도 ‘분주’

보건복지부는 이 같은 놀이혁신을 주도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놀이혁신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이 역시 아동 놀이 문제를 위한 국내 최초의 기구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놀이혁신위원회엔 보건복지부·교육부·행정안전부·문화체육관광부 등 관계 정부부처 및 아동기관은 물론 전문가와 민간단체가 두루 참여한다. 보건복지부 인구정책실장과 한국아동학회 회장을 역임 중인 김명순 연세대학교 아동가족학과 교수가 공동위원장을 맡았으며, 세이브더칠드런,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굿네이버스, 월드비전 등 아동단체와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시민연대, 놀이하는 사람들 등 각계 단체도 참여하고 있다.

놀이혁신위원회는 사실상 백지에 밑그림부터 그리기 시작할 전망이다. 올해부터 간담회·공청회 등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며 아동 놀 권리 보장의 중요성 및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해나가고, 이를 바탕으로 정부와 지자체의 놀이 정책 수립 및 개선의 방향을 제시하게 된다. 또한 각 지역 주도로 이뤄질 놀이혁신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중추 역할과 더불어 정부 부처 간 역할분담 및 협력의 매개체 역할도 수행한다.

지난해 12월 놀이혁신위원회 첫 회의에서 보건복지부 고득영 인구아동정책국장은 “놀이는 그 효과 여부를 떠나 모든 아동이 당연히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라고 재차 강조하며 “아동의 놀 권리에 대한 사회 전체의 인식 개선을 위해 정부와 민간이 함께 협력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놀이혁신위원회를 통해 민·관이 지속적으로 협의하면서 다양한 전문가와 현장의 지혜를 구하겠다”고 강조했다.

중앙 정부 차원의 움직임에 발맞춰 지자체들의 움직임들도 활발해지고 있다. 경기도는 ‘아동 놀 권리 인식 개선사업’을 진행할 수탁기관 선정을 진행 중이다. ‘아동친화도시’로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당진시는 지난달 ‘놀이환경 시민조사단’을 위촉하고, 놀이환경 개선을 위한 본격적인 사업에 착수했다. 이 시민조사단은 아동들도 함께 참여한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끌고 있다. 이밖에도 상당수 지자체들이 아동 놀이 문제와 관련해 다양한 행보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 말로 위안을 삼기엔 우리의 아동 놀이 문제는 너무 늦었고 심각하다. 늦게 시작된 발걸음인 만큼, 아이들이 잘 노는 사회로 가는 길이 더 이상 지체되지 않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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