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다. 여론을 먹고 사는 정치는 한 순간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그만큼 책임정치는 무섭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례에서 보듯 여론은 한 순간에 돌아선다. 그래서 지금의 다수당도 언제든지 몰락의 길로 들어설 가능성이 있다. 한국정치도 변화를 맞고 있다. 보수세력 중심에서 민주세력 중심으로 판이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사위크>에서는 최근 한국정치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향후 정치판을 예상해 봤다. <편집자 주>

21대 국회가 양당제로 회귀한 상황에서 정의당의 입지도 좁아졌다. /뉴시스
21대 국회가 양당제로 회귀한 상황에서 정의당의 입지도 좁아졌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신구 기자  21대 국회가 양당제 체제로 회귀하면서 원내 유일한 진보 정당 정의당의 입지도 좁아지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6석을 얻는데 그치며 진보 정당의 ‘몰락’이라는 쓴소리까지 들었던 정의당은 ′정책 정당′을 강조하며 변화를 꾀하고 있지만, 거대 양당의 틈바구니에서 제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정의당은 정체성 강화를 꾀하고 있고, 이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도 강한 모습이다. 

◇ 정의당, 총선 참패 후 ‘정책 경쟁’ 노선

21대 총선을 앞두고 정의당은 기대감이 가득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시행되면서 정의당의 득표율도 높아질 것이란 이유에서다. 20% 득표율, 원내교섭단체 진입 등 청사진도 내놓았다. 그러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꼼수를 활용한 비례정당들이 우후죽순 나타나면서 희망은 물거품이 됐다. 지난 20대 국회와 똑같은 6석에 만족해야 했다. 지역구에서는 심상정 대표를 제외하고 모두가 낙선했다. 

비단 꼼수 비례정당 탓만 할 수 없었다. 실패의 원인을 되짚었다. 진보 정당으로서 정체성 부족, 지역구 경쟁력 약화 및 인물난 등 원인이 쏟아졌다. 당 안팎에서는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정의당은 혁신위원회를 꾸리는 등 ‘새로운 진보 정당’으로서 대안을 찾아 나섰다.

정의당은 이번 총선에서 9.7%의 지지율을 얻었다. 과거 20대 총선(7.2%)과 비교했을 때 2.5%p 오른 것이다. 정의당은 이 수치를 유의미하다고 분석했다. 과거 정의당의 득표율은 더불어민주당의 반사이익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총선의 경우, 더불어시민당과 열린민주당 등 민주당 계열 비례정당이 난립한 상황에서 순수하게 정의당에 표를 던진 유권자가 이만큼은 됐다고 봤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정의당의 ‘자립’ 토대가 마련됐다는 평가도 나왔다. 정의당이 ‘민주당과의 결별’, ‘정책 경쟁’을 공언한 것도 여기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 양당제 속 이슈 부각 어려움

그러나 정의당이 정책 정당의 면모를 드러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특히 21대 국회가 거대 양당제로 회귀하면서 정의당이 내는 목소리의 파급력이 현저히 작아졌기 때문이다.

최근 정의당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에서도 이러한 모습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앞서 정의당은 당이 추진할 주요 입법과제로 차별금지법을 선정하고 발의에 나섰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선뜻 응하는 의원들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의당은 가까스로 10인의 서명을 받아 법안을 발의했다.

이후도 문제다. 정의당은 이번 회기 내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정치권의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진보 정당으로서 의제를 선점한다고 해도 실행시킬 힘이 부재한 상황이다. 

더욱이 미래통합당마저도 진보 의제에 손을 뻗기 시작해 정의당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정치권의 화두가 됐던 기본소득 논의에 대해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동참하면서 목소리가 커졌다는 점은 씁쓸한 대목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대학생 등록금 반환 문제에 대해서도 가장 앞서 주장했지만, 이후 정치권 모두 이에 가세하면서 주도권 잡기에서 다소 밀리는 모양새를 보이기도 했다.

정의당이 차별금지법 발의에 나섰지만 정치권의 반응은 미적지근한다. 진보 정당으로서 의제를 선점한다고 해도 이를 실행시킬 힘이 부족한 현실이다. /뉴시스
정의당이 차별금지법 발의에 나섰지만 정치권의 반응은 미적지근한다. 진보 정당으로서 의제를 선점한다고 해도 이를 실행시킬 힘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뉴시스

◇ ‘정책 집권’ 실현이 1차 목표

거대 양당의 틈바구니에 소수정당의 목소리는 쉽게 묻히는 것이 정치권의 현실이다. 그러나 정의당은 이러한 상황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입장이다.

김종철 정의당 선임대변인은 1일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새로운 개념을 우리 스스로가 받아들여야 한다”며 “의회 다수파가 되기 전에 정의당은 정책 집권을 실현해 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즉, 진보 정책을 내놓았을 때 이것이 정치권 안팎에서 공론화될 경우 원작자인 정의당에도 득이 된다는 것이다. 

김 대변인은 “진보 정당이 주장했던 의제들이 사회적으로 힘을 받아야 그걸 주장했던 정당도 신뢰가 생기는 것”이라며 “(정의당은) 우리가 얘기했던 정책들이 사회적 영향력을 가져가는 수준만큼의 의석수는 안 되지만, 의제 자체가 대중화되고 힘을 갖는다면 정책 집권, 장기적으로는 실질적 집권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으로 긴급재난지원금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정부와 여당은 당초 재난지원금을 70% 지급으로 설정했다. 정의당이 주장한 100% 전 국민 지급과는 거리가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통합당이 100% 지급을 주장하고 나서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과 홍남기 부총리가 재정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을 정의당과 통합당이 압박해서 지급된 경우가 있다”며 “그런 일들이 많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러한 방법이 궁극적으로 민주당과의 차별화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정의당의 설명이다. 김 대변인은 “민주당과의 차별화를 위한 차별화는 판단 기준이 아니다”며 “어떤 정책이 국민에게 좋다면 실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민주당이) 한다고 해놓고 지키지 않는 것을 제대로 압박하고, 우리가 대안으로 나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도 진보 정당이 갖는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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