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는 지금까지 적나라한 후진성을 보이면서도 수많은 굴곡을 겪으며 정치 개혁에서 진일보하기도 했다. 돈 없는 정치, 비리 정치인 척결 등을 위해 선거법을 손보고 공천 제도를 개혁하는 등의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아직도 후진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제자리 걸음하는 부분이 있다. 한국 정치는 수많은 벽들을 만들어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정치적 약자들의 국회 진출을 가로막아왔다. 국회는 민의의 정당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국민의 국회가 돼야 한다. 장애인, 비장애인 구분하지 않고 문을 활짝 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시사위크>는 우리나라 역대 국회에서 장애인 국회의원들의 활약상과 해외 사례 등을 살펴보고 향후 장애의 벽을 넘기 위해 국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짚어볼 예정이다.

최동익 전 민주당 의원(19대 비례대표)이 지난 2013년 10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5분 자유발언을 하고 있다. 점자기본법(2013년 대표발의)은 최 전 의원의 최대 성과로 꼽힌다. /뉴시스
최동익 당시 민주통합당 의원(19대 비례대표)이 지난 2013년 10월 10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5분 자유발언을 하고 있다. 점자기본법(2013년 대표발의)은 최 전 의원의 최대 성과로 꼽힌다. /뉴시스

시사위크=정호영 기자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등록장애인은 260만 명(2018년 기준)에 달한다. 국내 전체 인구 5,200만 명의 5% 수준이다. 미등록장애인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더 증가한다.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 장애인의 대표성을 띠는 인물이 더 필요하다는 장애계 목소리가 선거철마다 높아지는 이유다.

이번 21대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과 미래통합당 김예지, 이종성, 지성호 의원 등 4명의 장애인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전체 의원이 300명임을 감안하면 1.3% 수준이다. 20대 국회에서 장애인 국회의원을 1명도 배출하지 못한 것과 비교하면 나름대로 큰 성과인 셈이다.

심재철 전 미래통합당 의원(16~20대)과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17~21대) 등도 장애를 가진 국회의원이나, 장애계 대변자라기보다 기성 정치인으로 의정활동을 했다고 보는 시각이 많은 편이다.

장애계는 21대 국회에 주목하는 모습이다. 본격 의정활동을 시작한 소수의 장애 국회의원들이 괄목할 성과를 보여줘야 장애 국회의원의 명맥이 끊이지 않고 앞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과거 국회에서 금배지를 달았던 장애인 국회의원들은 어떤 의정활동과 성과를 냈을까.

◇ 13대 이철용, 장애인 고용촉진법 주도

장애인의 첫 국회 입성은 13대 국회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철용 전 의원은 1988년 13대 총선에서 평화민주당 소속으로 서울 도봉을에 출마해 당선됐다. 이 전 의원은 태어난 지 6달 만에 결핵성 관절염에 걸려 지체장애 3급을 얻었다고 한다.

당선 후 휠체어를 타고 국회에 등원해 국회에 경사로 및 장애인 편의시설 마련 등을 주도한 것도 이 전 의원의 공로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이 전 의원은 장애인 고용촉진법 제정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전 의원은 1988년 장애계 의견을 수렴해 심신장애자고용촉진법안을 대표발의했다.

장애인 고용촉진과 직업안정을 위한 시책을 종합적·효과적으로 추진하도록 국가 및 지자체의 책무를 규정한 것이 골자다. 장애인 의무고용제 도입의 바탕이 된 이 법안에는 83명의 의원이 동의했다.

당시 이 전 의원은 제안 이유로 “심신장애자의 고용 촉진과 직업 안정은 장애자 복지 증진의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며 “장애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가해지는 사회적 차별과 편견을 불식하고, 장애자들에게 참다운 인간존엄과 가치를 향유할 터전 마련, 나아가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사회통합에 기여할 수 있다”고 밝혔다.

2008년 한겨레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이 전 의원은 100명 이상 사업장에 5% 이상 장애인 의무고용을 주장했지만 여당(민주자유당)과 협상 과정에서 '300명·2% 고용'으로 절충했다고 한다.

◇ 15대 이성재, 장애인 직업재활법 제정에 역할

이후 새정치국민회의 소속 이성재 전 의원이 1996년 15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원내 진입에 성공했다. 비례대표로서는 첫 장애 의원이다. 이 전 의원은 유년기 소아마비를 앓아 1급 지체장애인이 됐다. 변호사(사법연수원 16기) 출신인 이 전 의원은 1987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를 설립해 장애 당사자이자 장애 활동가로서 이름을 알리던 중 정계 입문의 기회를 얻게 된다.

국회에 입성한 이 전 의원은 1998년 중증장애인에 대한 지원 확대를 골자로 하는 장애인직업재활법 등을 대표발의했다.

당시 이 전 의원은 입법 취지로 “현재 장애인 고용정책은 300인 이상 사업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직업을 통해 자립을 추구하고자 하는 다수 장애인들이 법의 보호망에서 벗어나 있다”며 “다양한 직업재활 정책과 프로그램을 시행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 전체 장애인의 직업재활 활성화를 도모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해당 법안은 당시 보건복지부·노동부 등과 당정협의를 거친 끝에 비슷한 취지의 타 법안과 합쳐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으로 단일화돼 원안 가결됐다. 

2012년 10월 2일 오전 공천로비 혐의를 받고 있는 민주통합당 장향숙 전 의원이 검찰조사를 받기 위해 부산지검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2012년 10월 2일 오전 공천로비 혐의를 받고 있는 장향숙 전 민주통합당 의원이 검찰조사를 받기 위해 부산지검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 17대 장향숙, 금품수수로 오점

17대 국회에서는 장향숙(열린우리당) 전 의원과 정화원(한나라당) 전 의원이 나란히 금배지를 달았다. 장 전 의원은 소아마비를 앓았고, 정 전 의원은 시각장애인으로서는 최초 국회의원이다.

장 전 의원은 원내 진입 전 한국여성장애인연합·부산지체장애인단체협의회 등 장애인 단체에서 활동하다 정계 입문했다.

정 전 의원은 한국맹인복지연합회·부산시민운동단체협의회 등에서 활동하다 정계 입문한다. 1998년에는 부산시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비례대표로 17대 국회의원이 된 뒤 안내견과 함께 본회의장에 들어가려다 제지를 받자 보좌진 도움을 받고서야 입장한 일화는 유명하다. 현재는 시각장애인 안내견도 국회 출입이 가능하다.

두 의원은 2006년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안을 각각 대표발의했다.

당시 장 의원은 “우리 사회에 아직도 장애를 사유로 한 차별 관행이 지속되고 있다”며 “정부가 앞장서는 가운데 민간부문의 노력과 협조를 이끌 제도적 틀을 구축해 장애인 권리를 구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 전 의원도 “아직도 많은 장애인들은 시설과 가정에서 사회와 격리된 삶을 살고 있어 인간답게 살 권리를 일반인처럼 향유하고 있지 못한 실정”이라며 “모든 생활 영역에서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행위를 금지해야 한다”며 발의 취지를 밝혔다.

두 의원의 법안은 2007년 고(故) 노회찬 당시 민주노동당 의원의 법안과 함께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이에 따라 장애인 차별행위로 야기되는 피해 회복을 위한 손해배상 규정이 마련됐다. 특히 법적 분쟁 과정에서 장애인들의 어려운 정보접근 등을 감안토록 해 입증 책임을 원고와 피고가 분배하도록 규정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다만 장 전 의원과 장애계는 지우지 못할 흑역사를 남겼다.

장 전 의원은 지난 2012년 19대 총선 공천청탁을 대가로 권모 당시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장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2015년 대법원은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3,3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면서 부끄러운 오점으로 남았다.

지난 2009년 7월 8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극단 '버섯'의 자살예방을 위한 연극 '병실에 불 을켜라' 공연에 앞서 임두성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2009년 7월 8일 오후 국회의원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극단 '버섯'의 자살예방을 위한 연극 '병실에 불을 켜라' 공연에 앞서 임두성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 18대 임두성, 한센인으로 당선 불구 당선무효형

한센병을 앓았던 임두성 전 의원은 18대 때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됐다. 2009년 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엔 중증장애인 범주에 있는 간질을 뇌전증으로 명칭을 변경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의학계는 간질이라는 용어가 주는 사회적 편견 등을 고려해 2009년부터 병명을 뇌전증으로 변경해 사용하고 있다.

다만 임 전 의원은 의정활동을 끝까지 이어가지 못했다. 2007~2008년 아파트 분양가 승인을 도와주는 대가로 건설시행사로부터 3차례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당선무효형을 선고 받았기 때문이다. 2010년 대법원은 임 전 의원에게 징역 3년과 벌금 1,000만 원 및 추징금 27억 원을 확정했다.

과거 조직폭력배 출신으로 18대 총선 전 벌금형·징역형 등 10건이 넘는 전과를 중앙선관위에 신고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빛나는 성과를 낸 18대 장애 국회의원들도 있다.

통합민주당 소속으로 18대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된 박은수 전 의원은 생후 10개월에 소아마비를 앓았다. 판사(사법연수원 12기) 출신인 박 전 의원은 대구 자원봉사지원센터 소장·대구 장애인고용대책위원장 등을 지내면서 대구 장애계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2009년 박 전 의원이 대표발의한 장애인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원안 가결되는 성과를 냈다. 해당 법안은 장애 당사자가 장애상태 변화에 따른 장애등급 판정이 적절한지 따질 때 국민연금공단에 장애정도 정밀심사를 의뢰할 수 있도록 법제화한 내용이 골자다.

당시 박 전 의원은 발의 취지로 “정부가 2010년 7월부터 중증장애인에 대해서만 중증장애인연금을 지급할 예정이지만, 장애등급 판정의 적정성 확보는 장애인 권익보호와 정부의 장애인 정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게 관건”이라며 “모법의 명시적 근거 없이 최하위법령인 시행규칙으로만 규정한 장애인 재심사 관련 규정의 법률적 위임근거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18대 국회의원이 된 곽정숙 전 의원은 유년시절 결핵성 척추병을 앓아 장애인이 됐다. 한국여성장애인연합을 창립해 공동상임대표, 광주장애인단체총연합회 이사 등을 지냈다.

곽 전 의원은 2009년 장애인 주거지원법안 등을 대표발의했다. 국가 및 지자체의 장애인주거지원센터 설치·운영 및 국가 및 지자체 매입 임대주택 5% 이상을 장애인 가구에 공급토록 법제화하는 내용이 골자다. 당시 곽 전 의원은 “장애인 주거문제는 차별과 빈곤의 복합적 구조 속에서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며 “장애인이 접근 가능한 주택 확보·공급은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사회적 과제”라고 밝혔다.

해당 법안은 2011년 본회의에서 통과된 장애인·고령자 등 주거약자 지원에 관한 법률에 반영됐다. 주거약자에 대한 실태조사 실시 국가 및 지자체 등이 건설하는 임대주택 일정비율을 주거약자용으로 건설하는 내용 등이 명시됐다.

◇ 19대 최동익, 점자기본법 제정에 결정적 역할

19대 국회에서는 민주통합당 최동익·새누리당 김정록 전 의원이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됐다. 최 전 의원은 국민학생 시절 약물 부작용으로 시각장애인이 됐고, 김 전 의원은 중학생 때 열차 사고로 오른쪽 발을 잃어 지체장애인이 됐다.

최 전 의원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사무총장·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이사·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공동대표 등을 거쳐 정계 입문했다.
 
점자기본법(2013)은 최 전 의원의 최대 성과로 꼽힌다. 문화체육관광부에 한국점자위원회를 두고 점자규정의 제·개정 등을 심의 및 5년마다 점자발전기본계획을 수립토록 했다. 점자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매년 점자의 날(11월 4일)을 제정하는 내용도 담겼다.

당시 최 전 의원은 “우리나라 점자 사용 환경 미비는 시각장애인에 입법·사법·행정적 차별뿐 아니라 교육·취업 및 일상생활 전 영역에서 차별을 겪게 하는 요인”이라며 “시각장애인 문자향유권 확보를 위해 점자를 공식문자로 인정하고, 점자를 사용해 의사를 표현하고 정보를 활용할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해당 법안은 2016년 본회의에서 수정가결돼 현재 시행 중이다.

2012년 9월 최 전 의원은 의정활동 최대 위기를 맞았다. 17대 장향숙 전 의원에게 공천로비 대가 금품제공 혐의로 검찰에 기소되면서다. 다만 최 전 의원은 장 전 의원과 달리 무혐의 처리되면서 의혹에서 벗어난다.

김 전 의원은 2015년 8월 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중증장애인생산품 우선구매 장려를 위한 인센티브 확대 및 정부의 우선구매관리시스템 구축·운영을 법제화 하는 것이 골자다. 같은 해 연말 본회의에서 수정가결됐다.

최·김 전 의원은 20대 총선에서 지역구 출마를 원했지만 각각 내부 공천 과정에서 탈락해 여의도를 떠났다.

◇ 장애인 공천, 엄격한 평가기준 필요

역대 장애 국회의원들의 주요 활동 및 성과를 비장애 국회의원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장애계 복지·권익 증진의 초석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다만 금품수수 등 비리로 실형을 선고받아 오점을 남긴 경우도 있다.

김성연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처장은 13일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과거 정당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을 비례대표로 세울 때 정책 관련 경험보다 당 이익을 보고 결정하는 경향이 짙었고, 소속 장애 단체의 정당 영향력과 입김으로 공천하는 경우가 있다보니 부적절한 상황들이 발생했던 것 같다”며 “각 정당이 공천할 때 엄격한 평가 기준을 세우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비리를 저지른 개인 잘못이 없다고 할 수 없지만, 불미스러운 문제가 발생하면 결국 문제 인물을 공천한 정당이 원죄를 지게 된다. 또 그 피해는 장애계, 나아가 국민에 고스란히 돌아가는 만큼 처음부터 강도 높은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사무처장은 21대 장애 국회의원 4명에 대해서도 “정치·정책적 경험을 많이 갖고있기보다 장애 당사자로서 관심을 끌 수 있는 분들이 공천된 것 같다”면서 “다양한 정책활동을 하는 장애 단체와 소통하면서 실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면서 경험을 쌓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의원이 되기까지 기반이 되는 단체나 특정 장애 유형이 있을 수 있는데, 한 쪽으로 치우치기보다 다양한 단체와 소통하며 역량을 발휘해주길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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