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치는 지금까지 적나라한 후진성을 보이면서도 수많은 굴곡을 겪으며 정치 개혁에서 진일보하기도 했다. 돈 없는 정치, 비리 정치인 척결 등을 위해 선거법을 손보고 공천 제도를 개혁하는 등의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아직도 후진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제자리 걸음하는 부분이 있다. 한국 정치는 수많은 벽들을 만들어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정치적 약자들의 국회 진출을 가로막아왔다. 국회는 민의의 정당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국민의 국회가 돼야 한다. 장애인, 비장애인 구분하지 않고 문을 활짝 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시사위크>는 우리나라 역대 국회에서 장애인 국회의원들의 활약상과 해외 사례 등을 살펴보고 향후 장애의 벽을 넘기 위해 국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짚어볼 예정이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지난해 5월 31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8차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 참석해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 앵거스 킹(Angus King), 태미 덕워스, 마샤 블랙번 의원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덕워스 의원은 2004년 헬기 조종사로 이라크 전쟁에 참전했다가 두 다리를 모두 잃은 참전용사로 미 최초의 여성 장애인 상원의원이다. /뉴시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지난해 5월 31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8차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 참석해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 앵거스 킹(Angus King), 태미 덕워스, 마샤 블랙번 의원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덕워스 의원은 2004년 헬기 조종사로 이라크 전쟁에 참전했다가 두 다리를 모두 잃은 참전용사로 미 최초의 여성 장애인 상원의원이다. /뉴시스

시사위크=서예진 기자  민주주의를 채택한 국가라면 어느 곳이나 국회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한국과 마찬가지로 선거에 의해 구성된 민의(民意)의 전당이기도 하다. 이에 국회의 다양화와 정책적 역량 강화를 위해 노동자, 장애인, 청년, 여성 등 사회·정치적 약자나 당사자들의 국회 진출이 확대돼야 한다는 점은 민주주의가 발달된 나라라면 어느 곳이나 나올 법한 지적이다. 본지는 해외에서 정계 진출에 성공한 장애인과 이를 지원하기 위한 제도 및 시설에 대해 소개해보고자 한다.

◇ 휠체어 타고 의족 장착하고 의사당으로 

가까운 일본의 사례를 먼저 살펴보자. 일본은 지난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레이와신센구미’의 후나고 야스히코(船後靖彦) 의원, 기무라 에이코(木村英子) 의원이 당선돼 화제를 모았다. 진보계열 정당으로 꼽히는 레이와신센구미는 두 후보를 비례대표 1·2번으로 공천해 참의원 선거에서 바람을 일으켰다. 

후나고 의원은 루게릭병으로 알려진 근위축성측삭경화증을 앓아 전신을 움직일 수 없는 중증장애인이다. 인공호흡기 등을 장착한 휠체어가 없으면 생활이 어렵다. 후나고 의원은 사람의 가치를 ‘생산성’으로 측정하는 사회 풍조에 위기감을 느끼고 “내가 국회에 들어가 장애인을 대하는 방법을 바꾸는 데 일조하고 싶다”면서 정계에 입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무라 의원은 생후 8개월 때 보행기가 넘어지는 사고를 당해 뇌성마비로 손과 발을 자유롭게 쓸 수 없다. 기무라 의원은 지난해 11월 참의원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첫 질의에 나섰다. 중증장애가 있는 의원이 국회에서 질문하는 것은 처음이었다고 한다. 비서 등이 질문지를 넘겨주는 등 도움은 받았으나 대독은 하지 않았다. 기무라 의원의 질의 내용은 ‘당사자’의 입장에서 본 ‘배리어프리’(장애물 없애기)의 중요성이다. 

미국의 경우 시각장애인이자 현역 정치가인 사이러스 하비브 워싱턴주 부지사가 있다. 하비브 부지사는 2013~2015년에 워싱턴주의회 하원의원으로 활동했으며, 부의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또 2015~2017년에는 워싱턴주의회 상원의원에 당선됐으며, 곧바로 주의회 상원 원내총무(whip·한국의 원내대표와 같은 역할)로 선출됐다. 이후 2017년부터 워싱턴주 부지사로 활동하고 있다. 

또 민주당 소속의 라다 태미 덕워스 연방 상원의원의 사례도 있다. 덕워스 상원의원은 2004년 헬기 조종사로 이라크 전쟁에 참전했다가 두 다리를 모두 잃은 참전용사다. 오바마 행정부 당시 미국 보훈부 차관보를 역임했으며, 2013~2017년에 일리노이주에서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이어 2017년에 일리노이주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돼 최초의 여성 장애인 상원의원이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덕워스 상원의원은 지난 2018년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상원의원 재임 중 출산하는 기록을 세운 바 있다. 

일본 도쿄에서 지난해 8월 뇌성마비 중증장애인인 기무라 에이코 의원(가운데)과 루게릭병 환자인 후나고 야스히코 의원(오른쪽) 이 임시국회 첫날 등원하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해 7월 21일 치러졌던 참의원 선거에서 신생 정당인 '레이와신센구미'(れいわ新選組) 비례대표 자격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일본에서 중증 장애인이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은 이들이 처음이다. /AP-뉴시스
일본 도쿄에서 지난해 8월 뇌성마비 중증장애인인 기무라 에이코 의원(가운데)과 루게릭병 환자인 후나고 야스히코 의원(오른쪽) 이 임시국회 첫날 등원하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해 7월 21일 치러졌던 참의원 선거에서 신생 정당인 '레이와신센구미'(れいわ新選組) 비례대표 자격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일본에서 중증 장애인이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은 이들이 처음이다. /AP-뉴시스

◇ 미국, 규정 외 별도 직원 고용 지원… “제도·시설 개선 필요”

그렇다면 이들 나라는 장애인 당사자가 정계에 진출했을 때를 대비해 어떤 장치를 마련해놨을까. 국회 사무처 워싱턴주재관이 작성한 ‘미 장애인 의원 지원제도’ 보고서를 살펴보면 미국의 경우 의회는 장애인 의원의 요청에 따라 일대일 맞춤 지원의 필요성을 인정, 이에 따른 연방법 및 정부 지출 관련 규정의 예외 상황을 허용하고 있다. 

통상 미 연방 하원의원 1인은 전임 근무 보좌관으로 최대 18명까지 고용할 수 있고, 상원의원 1인은 3인의 입법 보좌관을 고용할 수 있으며 출신 주의 인구 규모에 따라 행정보조 직원 고용을 위한 수당이 달라진다. 그러나 장애인 의원의 경우 앞서의 규정에 구애받지 않고 소관 위원회에 자신의 장애 정도와 필요한 지원 예산을 보고한 후, 필요에 따라 별도의 직원을 고용하거나 그에 따른 추가 수당을 요청할 수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장애 의원에 대한 의원 수당을 추가로 배정하거나 요청사항을 수용하는 것은 공식적인 상한선이나 제한이 없다. 이는 개인의 사생활 보호를 중요시하는 미국의 통념상 의원들의 장애여부나 장애의 정도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엄격하게 금지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의회 사무실과 회의장을 포함한 모든 시설은 장애인이 쉽게 접근·이용이 가능하도록 설계돼 있다. 미 의회와 의사당 내 장애인 전용 시설 및 장치는 ▲청각 보조 장치 ▲청각장애인용 문자전화 ▲수화 및 통역 서비스 ▲휠체어 접근 가능한 입구 등이다. 

일본의 경우 지난해 후나고·기무라 의원의 당선으로 참의원의 풍경이 바뀌었다. 두 의원이 당선되기 전까지는 대형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장벽이 높았다. 일본 국회는 이들의 당선 뒤에야 대형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도록 참의원 본회의장에 공사를 실시했다.

이에 본회의장에 대형 휠체어 2대가 자리 잡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고, 휠체어가 드나들 수 있도록 턱을 없애고 중앙현관에는 가설 슬로프를 만들었다. 두 의원의 활동에 도움을 줄 도우미 비용은 당분간 참의원 측이 부담하기로 했다. 이외에도 관례상 초선 의원들은 회의장 앞쪽 좌석부터 배정받는데 이들의 출입을 배려하기 위해 다선 의원들이 앉는 맨 뒷줄의 좌석을 마련했다. 이들의 의료기기와 개인용 컴퓨터 사용을 위한 전원도 설치했다.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염민호 국장은 20일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국회가 장애감수성에 대해 너무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면서 “이번에 장애인 의원들이 많이 들어갔으니 국회의 분위기도 많이 바뀌어야 하고 항구적으로는 (미국·일본의 사례처럼) 제도나 시설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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