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는 밑도 끝도 없이 늘 ‘청춘’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20대들은 청춘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가 청춘을 무기삼아 강요해온 사회적 압박과 요구에서 벗어나겠다는 이들에게 던진 것은 ‘반항아’라는 시선뿐이다. 하지만 이런 시선은 20대들의 생각과 고민을 이해하지 못해서는 아닐까. 이번 연재는 이 같은 의문에서 출발했다. 20대를 향한 시선을 짚어보고 위로를 건넴과 동시에 이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전세계적으로 사용되던 "재능은 타고난다"는 말은 최근 한국 20대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재능을 제대로 찾거나 발굴한 기회조차 제대로 가져보지 못한 이들이 재능 대신 해온 노력은 외면받는 현실이 지속되고 있다. /픽사베이
전세계적으로 사용되던 "재능은 타고난다"는 말은 최근 한국 20대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재능을 제대로 찾거나 발굴한 기회조차 제대로 가져보지 못한 이들이 재능 대신 해온 노력은 외면받는 현실이 지속되고 있다. /픽사베이

시사위크=송가영 기자  누구나 한 번쯤 언급해봤을 “재능은 타고난다”는 말이 있다. 어느 분야에서 특출난 결과를 내는 사람에게 사용해온 이 말은 전세계 청년들을 비롯해 한국 20대들의 발목까지 잡고 있다.

지난 2010년 중반 한국 사회에 등장한 ‘재능기부’가 최근 20대들로부터 적잖은 분노를 사고 있다. 재능기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을 필요한 곳에 사용한다는 의미로 쓰였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재능은 당연하게 할 줄 아는 능력으로 치부되기 시작했고 ‘열정페이’ 등 불평등한 대우들이 등장하게 된 계기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한국 청년들에게 재능은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한 요소 중 하나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지난 2018년 광주과학기술원이 한국, 미국, 일본, 중국 등 4개국 대학생 각 1,000명을 대상으로 ‘청년의 성공요인에 관한 인식조사’를 실시한 결과 한국의 경우 ‘재능’이 22.1%로 2위에 올랐다. 

재능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을 하는데 필요한 재주와 능력’이다. 단순히 ‘타고난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발현시키기 위한 ‘노력’이 반드시 동반될 때 제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노력은 배제하고 타고날 때부터 ‘완벽한’ 재능으로 인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높은 취업 절벽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도 벅찬 한국에서 20대들에게 적지 않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는 재능 발굴은 사치다.

◇ 재능 찾을 시간 없어… “얼마나 더 노력해야해?”

청춘시대 시즌1부터 등장하는 윤진명은 방영 당시 20대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공감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힘들어도 내색할 수 없고 취업에만 매달려 보통의 삶을 갈망하는 윤진명은 많은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렸다. /JTBC 청춘시대 홈페이지 갈무리
청춘시대 시즌1부터 등장하는 윤진명은 방영 당시 20대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공감을 일으켰던 인물이다. 힘들어도 내색할 수 없고 취업에만 매달려 보통의 삶을 갈망하는 윤진명은 많은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렸다. /JTBC 청춘시대 홈페이지 포토갤러리

과거부터 자신들이 가진 재능을 찾을 기회조차 제대로 갖지 못한 20대들은 오롯이 노력만으로 자신의 삶을 찾아가고 있다. 이를 JTBC 드라마 ‘청춘시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청춘시대 방영 당시 20대들의 깊은 공감을 끌어냈던 인물은 ‘윤진명(이하 진명)’이다.

수년전 식물인간이 된 남동생과 그런 동생을 매일같이 수발하는 엄마, 매일같이 찾아오는 사채업자 등 어려운 가정사 속 어떻게든 보통의 삶을 살고자 하는 인물이다. 청춘시대 시즌1에서 진명은 누군가의 사원증을 보며 부러워하고 하루에 7~8시간을 아르바이트에만 매달리며 소위 ‘잘나가는 회사’에 취업하기 위해 오로지 공부에만 매달린다. 재능을 찾는 시간과 돈은 재명에게 사치다.

진명은 위기를 맞는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동기와 같은 회사에서 면접을 봤지만 동기는 합격하고 자신은 다시 떨어졌다. 하우스메이트 ‘강이나’는 자신의 구두를 건네며 구두 때문에 떨어졌을 것이라고, 다음엔 붙을 것이라고 위로한다. 

그러나 진명은 이나에게 자신이 떨어진 것은 구두도, 스펙도, 부모님의 경제력 때문도 아니라며 “내가 조금만 더 잘하면 된다는 이야기인데 문제는 내가 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자책한다.

하지만 청춘시대 시즌2에서 진명은 엔터테인먼트 회사 면접을 보기 위해 대기하던 도중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엔터테인먼트 면접답게 다양한 끼를 선보이는 지원자를 보며 진명도 급히 공부를 하지만 이내 포기한다.

오로지 좋은 회사라는 목표만 갖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진명이 별다른 직무 경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자 면접관은 음악, 영화 등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잘 모르는 것이 아니냐고 질문한다. 진명은 “잘 모른다. 마지막으로 본 영화가 부산행이고 멤버 얼굴을 전부 아는 아이돌도 빅뱅”이라며 솔직하게 답한다.

진명은 한국 20대 청년들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모든 20대들이 진명처럼 어려운 가정사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수십시간을 오로지 취업에만 매달리고 자기가 가진 재능 발굴은 꿈도 꾸지 못하는 모습은 진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   

◇ 재능 아니고 노력… “노력 외면 말아 달라”

적지않은 20대들은 자신들의 재능을 발굴할 기회를 놓친 것에 아쉬움을 드러낸다. 그러나 재능을 대신해 자신들이 지금까지 해온 노력을 재능 또는 가장 기본적인 능력으로 치부하는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중견기업에 재직 중인 A씨(28)는 “재능은 타고난 것이라고 하는데 나의 경우에는 아직 잘 모르겠고, 찾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여력이 안된다”며 “당장 찾을 수 있다고 해도 여러 상황들을 생각해보면 망설일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재능이 있다면 좋겠지만 찾을 타이밍을 놓쳤고 그 빈자리를 채우려고 노력해서 여기까지 왔다”며 “노력해서 얻은 것들을 재능, 능력이라고 치부하며 가볍게 여기는 것은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노력에 따른 대가를 치르려고 하지 않는 점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스타트업에 재직 중인 I씨(29)는 “취업하려고 어려운 자격증을 공부해서 따냈지만 관련이 없는 직무를 하고 있다”며 “면접을 볼 때 해당 자격증을 보고는 나중에 직무와 상관없는 일도 잘하겠다고 하는데 황당했다”고 말했다.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B씨(28)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업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 회사에서 20대들이 가장 힘들었다”며 “SNS 업무는 자신들도 처음인데 SNS에 가장 많이 접근하니 기본적으로 업무를 할 줄 안다는 임원진들의 생각 탓에 담당도 아닌 일들을 추가로 해야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모든 일을 만능으로 할 수 있는 재능도 없고, 이 세상에 그 어떤 재능도 모든 일을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IT 회사에 재직 중인 M씨(29)는 “보통은 자신이 하지 못하는 일을 재능 또는 능력으로 치부하며 성과를 요구하는데 회사에게도, 본인에게도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사회생활이 처음이고 하고 있는 업무도 처음이고 이는 재능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며 “해당 업무부터 관련 없는 업무들까지 대한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는 사람들처럼 포장하기보다 모두 처음이라는 생각을 갖고 어려운 일은 함께하며 극복해나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재능은 누구에게나 확실하게 있는 것이 아니고 모르더라도 잘못이 아니라고 20대들은 입을 모은다. 자신들보다 발전한 세계에서 살아왔다는 이유만으로 재능을 대신 해온 이들의 노력을 외면하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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