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권.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하는 말이다. 누구나 당당하게 누려야 할 권리지만 교통약자인 장애인들의 손에는 쉽게 잡히지 않는 권리다. 거리의 각종 높은 턱과 취약한 교통수단은 이들의 자유롭게 거리를 다닐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기 일쑤다. 2005년 ‘교통약자의 이통편의 증진법’이 제정된 후, 장애인들의 이동권 보장을 위한 시스템이 개선되고 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편집자주>

특별교통수단인 ‘장애인 콜택시’의 지역마다 서비스 편차가 커 장애인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 사진은 창원시설공단 장애인 콜택시/창원시설공단, 뉴시스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지난해 정부가 ‘장애인등급제’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하면서 장애인들의 이동지원서비스에 변화가 일었다. 특히 특별교통수단인 ‘장애인 콜택시’ 서비스 이용 대상이 확대된 점이 주목을 끌었다. 기존에는 1·2급 장애인만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할 수 있었으나, 이제는 중증의 보행 장애가 있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된 것이다. 법정운행대수는 이용 대상 200명당 1대에서 150명당 1대로 상향됐다. 이처럼 이용 대상자들이 대폭 늘게 됐지만 장애인콜택시 보급 확대는 더딘 수준이다. 특히 지방으로 갈수록 지역 간의 서비스 편차도 커 이용자들의 불편이 크다.  

◇ “매일 아침 장콜 예약전쟁”… 속 타는 장애인들

<br>
지방의 장애인 콜택시 도입률이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어 지역 거주 장애인들의 서비스 이용 불편이 이어지고 있다. /뉴시스

“장애인 콜택시 예약을 못하면 날씨와 계절에 상관없이 전동휠체어로 한 시간 가까이를 달려 직장까지 출퇴근해야 합니다.” 

충남 세종시에 살고 있는 문경희 씨는 장애인 콜택시(이하 장콜)를 예약하기 위해 매일 아침마다 예약 전쟁을 치러야 한다. 문씨가 <시사위크>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밝힌 세종시의 장콜 서비스 이용 환경은 척박했다. 문씨의 설명에 따르면 세종시에 장콜이 도입된 지 10년이 흘렀지만 콜택시 수는 17대에 불과하다. 즉시콜도 되지 않아, 문씨는 매일 아침에 예약을 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문씨는 “매일 아침 7시 58분에 알람을 맞추어 놓고 알람이 울리면 콜택시 앱으로 예약전쟁을 하고 있다”며 “가끔 앱이 문제가 있을 때는 출근 준비도 못한 채 100통 가까운 전화를 걸어야 하는 어려움 속에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세종시의 장콜 서비스인 ‘누리콜’은 즉시콜이 되지 않는다. 세종시 중증장애인들이 콜택시를 이용하기 위해선 장애인들은 이틀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 1년 전까지는 일주일 전에 예약을 하는 시스템이었으니, 그나마 나아진 게 현재 수준이라는 게 문씨의 설명이다. 아울러 누리콜은 운행 시간이 제한돼 있다. 누리콜은 오전 6시 30분에 운행을 시작해 밤 11시 30분이면 운행이 종료된다. 문씨는 새벽에는 누리콜을 이용할 수 없어 항상 불안한 마음이라고 털어놨다.  

문씨는 “저는 남편과 둘이 사는 2인 가정”이라며 “만약 새벽에 저에게 위급상황에 생겼다면 남편이 운전을 할 수 있어 대처를 할 수 있지만 남편에겐 위급상황이 생겼을 때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남편은 119구급차를 타고 갈 수 있으나 저는 전동휠체어를 이용해야 하기에 구급차를 탈수 없다. 그럴 때 콜택시도 이용할 수 없으니 보호자로서 함께 갈 수 없다는 두려움이 항상 있다”고 말했다.  

인근 도시와의 서비스 격차도 문씨를 서럽게 했다. 문씨의 친정은 대전시라고 한다. 문씨는 “쉬는 날 힘들게 세종시 장콜을 예약해서 친정 부모님을 뵙고 다시 집으로 오기 위해 대전 장콜을 접수해서 15분 만에 대전 장콜을 타고 세종시로 넘어올 때는 눈물이 날 때가 많다”며 “세종시와 같은 시기 도입된 대전 장콜의 경우, 현재 170대가 상시 운영 중이다. 운영 대수는 장애인 인구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대전시는 필요시 즉시 콜을 부를 수 있게 이용자 중심으로 서비스가 개선되고 있는 반면, 세종시는 특별시가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교통약자 이동권에 대해서 낙후돼 있다”고 꼬집었다.

장콜은 휠체어리프트가 설치된 승합차로, 이동에 심한 불편을 느끼는 교통약자의 이동을 지원하기 위해 2006년부터 도입되기 시작했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에 따르면 시·군·구 등의 각 지자체 장들은 교통약자를 위해 특별교통수단(장콜)을 운영하고 5년 단위로 지방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을 세워야 한다. 

◇ 장콜, 지역 간 서비스 격차 커… 법정대수 못 맞추는 지자체 ‘수두룩’  

장콜은 휠체어를 이용해야 하는 중증 장애인에겐 가장 핵심적인 교통수단이다. 특히 지방에 사는 장애인일수록 장콜은 절실한 이동수단이 된다. 서울 등 수도권과 달리, 지하철이 깔려있지 않는 지역이 많은데다 저상버스도 이용하기 쉽지 않아서다. 

문제는 지방으로 갈수록 장콜 도입률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나마 서울 및 경기도 등의 수도권이 장콜 보급률과 서비스 개선이 속도를 내고 있는 반면, 다른 지방 지자체들은 갈 길이 먼 상황이다. 법정운영대수에 크게 못 미치는 곳도 허다하다. 

지방권의 특별교통수단인 장애인 콜택시 도입률은 저조한 실정이다. 법정운용 대수를 못 맞추는 곳도 허다하다. /그래픽=이현주 기자

문애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가 지난 8월 13일 ‘장애인이동권과 장애인등급제폐지에 따른 이동지원대책 토론회’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특별교통수단 도입률은 82.6%로 나타났다. 특별교통수단 운영대수는 3,549개로, 법정운영대수(4,294개)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해당 통계는 제1차 고시개정전문위원회 4차 회의 자료를 토대로 집계됐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법정운영대수를 충족하고 있는 지자체는 경기(도입률 141.7%), 경남(104.4%) 등 단 2곳뿐이다. 그나마 높은 수준을 도입률을 보이고 있는 곳은 광주(92%), 서울(89.5%), 제주(84.8%), 부산(81.4%)다. 

반면, 충북은 17개 지자체 중 도입률이 가장 낮은 49%에 불과했다. 충북의 장콜 운영대수는 101대로 법정운영대수(206대)의 절반도 못 미치고 있는 셈이다. 이어 전남(51.5%), 충남(53.8%), 인천(53.9%), 울산(54.7%), 강원(56.3%), 경북(57.9%) 등의 도입률이 50%대 수준을 보였다.  

지방 내에서도 지자체별로 조례와 운영 방침도 달라 서비스 편차도 크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는 “대중교통 체계의 범위와 서비스 시간, 이용요금, 예약시스템 등도 달라 지역 간의 편차가 크다”며 “어떤 지역에 사느냐에 따라 누구는 서비스를 누리고, 누구는 못 누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지역 간 격차에서 발생하는 일상의 차별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충남 천안에 살고 있는 휠체어 사용 장애인 유성희(63) 씨도 지역 간 서비스 격차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유씨는 “천안은 그나마 서비스 질이 개선이 되고 있는 편”이라며 “즉시 콜도 이뤄지고 있고, 콜이 많은 시간 대 아닐 때는 30분 이상 기다리는 경우가 많이 없다. 타 지역 장애인 분이 방문했을 때, 콜을 이용하기도 용이한 편이다. 하지만 지역마다 서비스 편차가 있어, 다른 지역을 방문했을 때 당황했을 때도 있었다. 같은 한국 땅인데, 왜 이렇게 다른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 “지역 간 격차 해소 위해 중앙정부 책임 강화해야” 

장애인단체들은 지역 간 격차를 메우기 위해선 중앙정부의 책임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박경석 대표는 “현재 특별교통수단은 시·군구 단위 조례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며 “운영 및 예산에 대한 부담을 지자체에 떠넘기고 있어 지역마다 편차가 큰 것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선 시·군·구가 아닌, 각 도와 광역시 차원에서 특별교통수단을 통합 관리·운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적극 도입하고, 중앙 정부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특별교통수단 이용 대상자가 확대되면서 장콜 수요는 더 늘어나게 됐다”며 “수요가 늘어난 만큼 공급도 이를 따라가 줘야 한다. 장콜을 제대로 늘리지 않으면 장애인끼리 서로 싸우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경석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는 지난 15일 <시사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장애인 콜택시의 지역간의 격차를 개선하기 위해서 중앙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미정 기자<br>
박경석 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는 지난 15일 <시사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장애인 콜택시의 지역간의 격차를 개선하기 위해서 중앙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미정 기자

장애인단체들의 간절한 외침에도 이동권 개선에 굼뜬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지자체도 상당하다. 세종시도 그 중 하나로 장애인단체들의 집중 질타를 받고 있다. 세종시 교통약자이동권보장 및 공공성강화를 촉구하는 시민사회단체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가 꾸려지기도 했다. 문경희 씨도 해당 대책위에서 이용자 대표로 참여해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세종시의 직접 콜택시 운영 △차량 2배 이상 증차 △즉시콜 시행 △24시간 운행△휴일·공휴일 운행 차량 증차 △시외 지역 연계 방안 마련 등을 요구하고 있다. 

세종시 장애인 콜택시 기사인 강태훈 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장애인들이 힘들게 콜 예약을 하고 차량에 탔을 때 굉장히 고맙다는 말을 한다”며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임에도 재차 고맙다는 말을 하는 이들을 보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세종시가 더 이상 이런 문제를 외면하지 말고 적극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종시 전체 장애인은 1만2,000명이며 이 중 중증장애인은 4,500명이다. 대책위는 특별교통수단 이용 대상 확대로 장콜 이용 대상자가 늘어났음에도 세종시가 보수적인 기준으로 대상자를 한정해 법정운영대수를 맞췄다는 논리를 피며 차량 증자를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세종시는 다수의 행정기관이 모여있는 곳이다. 행정 특화도시에 걸맞는 책임 있는 대처가 나올지 주목된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