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시사위크 특별기획] Ⅲ. 아동학대

어린이는 우리의 미래이자, 우리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어린이가 행복하지 않은 사회는 결코 희망적이지 않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린이 삶의 만족도가 OECD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그럼에도 어린이 행복권 신장은 우리 사회 화두에서 늘 벗어나 있다. 어린이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어린이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노력이나 인식을 찾아보기 힘들다. 어쩌면, 우리는 어린이들을 잘 키우고 있다는 깊은 착각에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 <시사위크>는 2020년을 맞아 우리 사회 곳곳에 놓여있는 어린이 문제들을 톺아보며 어린이가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그려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충격적인 아동학대 사망사건이 발생했던 2013년, 추모식에 참석한 아이들이 촛불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충격적인 아동학대 사망사건이 발생했던 2013년, 추모식에 참석한 아이들이 촛불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기다렸던 소풍날, 하지만 8살 아이에겐 그날이 비참한 마지막 날이 되고 말았다. 계모는 2,000원을 가져가고 거짓말을 한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가했다. 아이는 소풍을 보내달라며 애원했지만 폭력의 수위는 점점 더 높아져만 갔다. 그렇게 갈비뼈 16개가 부러지고 온몸에 멍이 든 아이를, 계모는 멍을 빼겠다며 욕조에 들어가도록 했다. 그곳에서 아이는 그대로 숨을 거뒀다.

온 국민을 분노와 슬픔에 빠뜨렸던 이른바 ‘서현이 사건’이다. 마치 얼마 전 벌어진 일처럼 충격이 생생하지만, 이 사건이 발생한 것은 2013년 10월이다. 어느덧 7년이란 짧지 않은 세월이 흘렀다.

시계를 다시 2020년으로 돌려보자. 지난 6월 천안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계모는 거짓말을 한다는 이유로 9살 아이를 여행용 가방 안에 가뒀고, 심지어 가방 위에 올라가 뛰거나 헤어 드라이기로 뜨거운 바람을 불어 넣기까지 했다. 7시간 동안 가방에 갇혀있던 아이는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틀 뒤 끝내 숨졌다.

7년의 세월을 사이로 두고 벌어진 두 사건은 무척이나 닮아있다. 비단 두 사건 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잊을만하면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해 세간을 들끓게 만들었다. 올해만 해도 천안 사건이 발생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창녕에서 아동학대 피해를 당해온 한 아이가 가까스로 탈출해 구조되는 사건이 충격을 더해줬다. 

지난 6월 천안에서 아동학대로 8살 아이를 숨지게 한 계모가 영장실질심사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6월 천안에서 아동학대로 8살 아이를 숨지게 한 계모가 영장실질심사에 참석하고 있다. /뉴시스

이처럼 굵직한 아동학대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강력 처벌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커졌고, 재발방지 등의 대책 마련도 분주하게 이어졌다. 그러나 아동학대 사건은 근절되지 않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나아지는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8월말 발간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제출한 ‘2019 아동학대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학대로 최종 판정된 사례는 3만45건에 달한다.

2010년엔 5,657건, 5년 전인 2014년엔 1만27건이었다. 최근 5년 사이에만 3배 늘어나는 등 해마다 가파른 증가세를 이어가더니 어느덧 연간 3만 건을 넘어선 모습이다.

아동학대 신고건수 역시 2014년 1만7,782건이었던 것이 지난해 4만1,389건으로 처음 4만 건대에 진입했다. 

물론 이 같은 수치는 과거엔 감춰져있던 아동학대가 더 많이 드러나고 있고, 이에 따라 아동학대에서 벗어난 아이들이 더 많아진 것으로도 해석 가능하다. 하지만 또 다른 집계 자료를 보면 이러한 긍정적인 해석도 이내 무의미해진다. 

지난해 아동학대로 사망한 아이는 42명에 달했다. 2014년과 2015년 14명, 16명이었던 것이 2016년과 2017년 36명, 38명으로 증가했고, 2018년 28명으로 감소했으나 지난해 다시 급증한 것이다. 이는 그동안 취해진 많은 대책과 조치들이 실질적인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우리는 7년 전 욕조에서 죽어간 아이를 떠나보내고 분노에 떨었다. 하지만 올해 또 다른 아이를 똑같이 떠나보내고 말았다. 또한 우리 사회엔 지금도 학대로 고통 받는 아이들이 셀 수 없이 많이 존재한다. 

이 아이들의 죽음과 고통을 무의미하게 만든 것은 우리 모두다. 가장 보호받아야할 존재가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되고, 끝내 목숨을 잃는 지경에 이르는 일이 반복되고 있지만, 우리는 그런 세상을 바꾸지 않은 채 방치했다. 이제는 분노에 그치지 않고 변화시켜야 한다. 더 이상 미안해하지만 말고 우리의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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