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를 넘어 안방극장까지 사로잡은 배우 서현우. /풍경엔터테인먼트
충무로를 넘어 안방극장까지 사로잡은 배우 서현우. /풍경엔터테인먼트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정해진 틀 안에서 주어진 역할만 해내는 배우가 있는 반면, 끊임없는 고민과 노력으로 보다 입체적인 캐릭터를 구축하는 배우가 있다. 이미 검증된 방식을 반복하며 안주하는 배우가 있는 반면, 매 작품 도전적인 시도로 스펙트럼을 확장시키는 배우가 있다. 작품 안에 그저 그 자체로 존재하는 배우 서현우가 그렇다.

2010년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으로 데뷔한 서현우는 연기 인생 10년 동안 연극 무대는 물론,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다채로운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영화 ‘고지전’(2011)을 시작으로 ‘관상’(2013), ‘베테랑’(2015), ‘1987’(2017), ‘죄 많은 소녀’(2018), ‘백두산’(2019), ‘남산의 부장들’(2020) 등과 드라마 ‘나의 아저씨’(2018), ‘시간’(2018), ‘모두의 거짓말’(2019)까지 수많은 작품에서 크고 작은 역할들을 소화하며 차근차근 입지를 넓혔다.

지난달 23일 호평 속에 종영한 케이블채널 tvN ‘악의 꽃’(연출 김철규, 극본 유정희)은 서현우가 10년 동안 갈고닦은 내공을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이다. 주로 스크린에서 활약하다 브라운관 첫 주인공을 맡게 된 서현우는 서스펜스와 유머, 멜로까지 아우르는 연기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그는 자신을 향한 쏟아지는 호평에 “신기하다”며 웃었다.

“다행히 많은 분들이 재밌게 봐주셨더라고요. 신기하기도 했고요.(웃음) 드라마 리뷰를 찾아보기도 했는데, 준비한 것보다 더 많이 해석해 주시고, 더 많은 걸 느껴주시더라고요. 너무 감사했습니다. 영화는 오랜 기다림이 필요하잖아요. 드라마는 확실히 바로 체감할 수 있으니까, 느껴지는 반응이 다르더라고요.”

‘악의 꽃’에서 서현우는 특종에 눈먼 주간지 기자 김무진을 연기했다. 과거를 숨긴 채 다른 인물로 살아가던 도현수(이준기 분)의 정체를 알게 되며 긴장감을 유발하지만, 이내 그의 조력자로 힘을 더하는 인물이다. 김무진은 겉으론 특종만을 쫓는 기회주의적 기자로 보이지만, 내면엔 인간적인 갈등이 내재된 입체적인 캐릭터다. 서현우가 “한 사람을 연기한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고 했을 정도로, 무진은 등장인물 중 가장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악의 꽃’에서 기자 김무진으로 분해 입체적인 연기를 보여준 서현우. /tvN
‘악의 꽃’에서 기자 김무진으로 분해 입체적인 연기를 보여준 서현우. /tvN

특히 김무진은 사건을 심각하게 파고들다가도 상황에 따라 유머러스함을 잃지 않고, 진중함과 능청스러움을 오가며 긴장감과 웃음을 동시에 선사했다. 전체적으로 무겁고 어두운 톤의 ‘악의 꽃’에서 시청자들에게 ‘쉼표’를 제공하기 위한 제작진의 의도다. ‘숨통을 트여주는 역할이면 좋겠다’는 감독의 요구에 서현우는 특유의 자연스러운 연기와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더해 유연하고 생동감 있는 김무진을 탄생시켰다. 

“작품에서 제가 수행해야 하는 포지션이 중요했던 것 같아요. 극을 너무 무겁지 않게 숨 쉴 수 있게 끌어줘야 하는 부분이 있었고, 책임감을 느꼈어요. 오히려 준비를 덜 하려고 했어요. 많은 설정을 입혀버리면 제약을 많이 받을 것 같더라고요. 현장에서 느껴지는 대로, 찾아지는 대로 하려고 했어요. 애드리브도 처음엔 많이 해볼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없었어요. 작가님이 이미 너무 재밌게 써놓으셨더라고요. 무진의 말투를 제 말투로 바꾸는 정도를 택했어요. 그래서 대본에 있는 대사를 함에도 애드리브처럼 느껴졌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사보단 행동으로 애드리브를 많이 한 것 같아요.”

‘배심원들’ 피고인부터 ‘테우리’ 짱구, ‘남산의 부장들’ 보안사령관 전두혁 등 주로 스크린에서 활약하며 굵직한 작품에서 강렬한 캐릭터 연기를 선보였던 서현우는 ‘악의 꽃’ 김무진을 만나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게 놀 수 있었다.

“무게감 있는 역할이나 특징이 도드라진 역할을 할 때는 조금 제약이 있어요. 캐릭터의 룰이라는 것이 있거든요. 김무진 같은 경우는 저도 연기하면서 잘 놀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하고 싶은 대로 막 했었고, 평소 제 모습이 반영된 것도 있고요. 자기 자신으로 연기를 하는 게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보통 배우들이 자신의 소스를 많이 아끼거든요. 그런데 김무진에게는 특별히 제 자신의 모습을 쏟아부었어요. 그래서 특히 더 애정이 가는 캐릭터예요.”

서현우가 첫 브라운관 주연작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풍경엔터테인먼트
서현우가 첫 브라운관 주연작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풍경엔터테인먼트

이준기부터 문채원, 장희진까지 또래 배우들과 함께 한 시간은 물론, 김철규 감독과의 작업도 잊을 수 없는 경험이다.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소통하는 현장을 경험하면서 다음 작품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을 얻었다.

“상대 배우들도 또래였고, 촬영장에서 만나면 이 작품이 추적 스릴러가 맞나 싶을 정도로 화기애애했어요. 연기과 동기들과 같이 작업하는 느낌으로 굉장히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어요. 마음이 편하니까 의견도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었고요. 감독님하고도 소통을 되게 많이 했어요. 드라마 해본 역사상 가장 많이 감독님과 촬영감독님까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아이디어도 편하게 말했어요. 제 의견을 편하게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쾌감이 오더라고요 이번 경험을 통해서 다음 작품을 하는 데 있어서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아요.”

서현우는 평소 표현이 크지 않은 김철규 감독이 칭찬해 준 순간을 떠올리기도 했다. 오랜만에 재회한 해수가 무진에게 살인사건의 범인임을 고백하는 장면이다. 그 신에서 무진 역시 숨겨둔 감정을 터트렸는데, 극의 전체 흐름과 맞지 않아 전파를 타진 못했다. 하지만 서현우에겐 오래도록 기억될 순간이다.

“제가 그 장면 촬영 후에 카메라 뒤편에 앉아있는데 오셔서 저를 한참 보시더니 고개를 끄덕끄덕하시는 거예요. ‘왜 그러시냐’고 했더니 ‘무진이도 짠하다. 너무 좋았다’고 칭찬을 해주셨어요. 감독님이 평소에 엄청 차분하세요. 그런데 그런 얘기 해주시니 정말 기분이 좋더라고요. 내가 김무진을 잘 이해하고 가져가고 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고, 너무 감사했죠. 편집되지 않았다면, 감정이 과잉이었을 것 같아요. 해수가 살인을 했다는 충격적인 말을 듣고도 무진이가 담대하게 말을 들어주고, 무너지지 않고 버텨서 해수가 오히려 자기감정을 솔직히 꺼내놓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결과적으로 편집이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감독님이 그런 균형을 너무 잘 잡으시더라고요.”

올해로 데뷔 10년을 맞은 서현우, 그의 연기 인생은 이제 시작이다. /풍경엔터테인먼트
올해로 데뷔 10년을 맞은 서현우, 그의 연기 인생은 이제 시작이다. /풍경엔터테인먼트

자극적인 특종만 쫓던 무진은 진실을 알리는 진정한 기자가 된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후회하면서, 과거와 마주하며 비로소 성장한다. 서현우 역시 무진, 그리고 ‘악의 꽃’을 통해 한층 성장했다. 치열한 고민 대신 내려놓음을 배웠고, 주변을 둘려볼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얻어지는 것들에 대한 매력을 느꼈어요. 예전에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준비를 했거든요. 어떤 감독님은 ‘대본 그만 봐, 전사 그만 만들어’라고 했던 적도 있었어요. 이번에는 많이 비워냈어요. 연극이나 무대 공연하듯이 순간순간 리허설 때 찾아지는 것들을 발견하려고 애를 썼어요. 그런 연기적인 접근 방식에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현장을 돌아보는 시야도 넓어진 것 같아요. 스태프들하고 소통을 많이 할수록 시야가 달라지더라고요. 배려할 수 있는 부분도 달라지고, 분위기도 리드를 하게 되고 그런 점이 참 재밌더라고요. 앞으로 다른 작품을 하게 돼도 전체적인 시각으로 작품을 만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올해로 데뷔 10년을 맞은 서현우는 ‘배우스럽지 않은 배우가 되는 것’이 목표이자, 다짐이다.

“일상 속 사람들과 삶의 모습을 발견하지 않고 담아내지 못하면 배우로서의 수명은 뻔하다고 생각해요. 독립영화제나 단편영화제를 자주 찾아가요. 촬영도 하려고 하고요. 가서 영화를 보면 짧은 단편 안에 소름 끼치게 연기하는 사람들 되게 많아요. 연기라기보다 그 작품 안에 그냥 존재해버려요. 그 결을 잃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 감을 놓지 않기 위해서 배우스럽지 않은 배우로, 그 모토를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악의 꽃’을 통해 능력 있는 기자로 활약한 그에게 직접 인터뷰 기사의 제목을 부탁했다. 당황한 기색도 잠시, 서현우는 재치 있는 답변을 내놨다.

“‘겉은 바삭 속은 촉촉’ 서현우, 입체적인 배우를 꿈꾸다. 괜찮나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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