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브리그'에 이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로 인생캐릭터 경신에 성공한 박은빈 / 나무엑터스 제공
'스토브리그'에 이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로 인생캐릭터 경신에 성공한 박은빈 / 나무엑터스 제공

시사위크=이민지 기자  어떤 작품은 ‘흥행’ 유무를 넘어 배우에게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선물 같은 존재가 되곤 한다. 20대 막바지를 보내고 있는 박은빈에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딱 그런 존재다.

SBS 월화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연출 조영민‧김장한, 극본 류보리)는 스물아홉 경계에 선 클래식 음악 학도들의 아슬아슬 흔들리는 꿈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올 한 해 안방극장에서는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가 성행한 만큼, 잔잔한 감성 멜로를 다룬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드문 성공 케이스로 주목을 받았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있는 청춘 음악 학도들의 사랑과 현실 사이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은 쏠쏠한 듣는 재미를 안기며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만의 ‘클래식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첫 방송 시청률 5.3%(이하 닐슨코리아 전국 가구 기준)로 시작해 큰 기복 없이 5~6%를 유지하며 두터운 팬층을 자랑했다. 20일 방영된 마지막 회는 시청률 6.0%를 기록, 월화극 시청률 2위 자리를 지켜냈다.

극중 바이올리니스트 채송아 역을 맡은 박은빈 / 나무엑터스 제공
극중 바이올리니스트 채송아 역을 맡은 박은빈 / 나무엑터스 제공

이 중심에는 박은빈이 있었다. 지난 2월 종영한 ‘스토브리그’ 종영 이후 선보이는 첫 차기작이었던 만큼 시청자들의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컸던 바. 극중 박은빈은 채송아로 분해 흡입력 있는 연기력을 선보이며 인생 캐릭터를 경신했다. 

‘채송아’는 서령대 경영학과에 다니면서 4수 끝에 같은 대학 늦깎이 음대 신입생으로 입학한 인물. 그는 로맨스 연기는 물론, 현실과 꿈 사이에서 방황하는 청춘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려내며 시청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특히 첫 로맨스 드라마 여주인공에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게 몰입감을 선사하며 시청자들의 호평을 한몸에 얻었다.

결과를 떠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여러모로 박은빈에게 뜻깊은 작품이다. 올해 나이 29세, 20대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는 박은빈에게 20대 끝자락 청춘들의 이야기는 유독 남다르게 다가왔을 터. 20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박은빈을 <시사위크>가 만나고 왔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로 첫 로맨스 드라마 여주인공에 도전장을 내민 박은빈 / 나무엑터스 제공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로 첫 로맨스 드라마 여주인공에 도전장을 내민 박은빈 / 나무엑터스 제공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떠나보내는 소감이 어떤가.
“(작품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걸 20년 이상 겪었기 때문에 마지막이란 게 익숙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끝날 때마다 항상 어떤 이유에서건 눈물이 났던 것 같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그 어떤 작품보다도 눈물이 많이 날 것 같았다. 그런데 예상외로 눈물이 안 나더라. 다른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주연으로서 책임감을 막중하게 가지고 있었고 6개월 동안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았기 때문인 것 같다. 어려운 시국에 촬영을 잘 마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일단 너무 안도감이 들었다. 무사히 잘 마쳤다는 기쁨이 컸던 것 같다. 물론 좋은 분들을 매일 만나다가 당분간 못 만난다는 게 아쉽지만 잘 끝냈다는 것에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 채송아 역을 소화하면서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일단 송아 역 자체가 어떤 매력이 있을까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주인공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매력이 무엇일까 고민을 많이 했다. 보통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할 법한 고민을 가진, 비범하거나 타고난 재능을 갖고 있지 않은 평범함에서 오는 ‘공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송아가 화자로서, 청자로서, 관찰자로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극이다 보니 가장 중심이 되는 인물에 시청자가 거리감을 느끼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표현하는 굉장히 복잡한 감정들에 최대한 시청자가 불친절하지 않다고 느낄 수 있게, 어떤 감정인지 와닿을 수 있게 표현하는 게 제 숙제로 느껴져 (촬영하면서) 시시때때로 주어지는 과제들을 잘 풀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어찌 보면 시대가 원하는 사이다 캐릭터와는 거리가 멀지라도, 분명 송아 같은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았다. 스스로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다. 송아 같은 사람들이 캐릭터의 삶에 자신을 투영시켜 본인의 삶도 응원할 수 있게 되길 배우로서 가장 크게 바랐다. 송아를 사랑하는 분들이 자신의 삶도 사랑할 수 있게 되길 바라면서 연기를 했었다.” 

- 극중 바이올리니스트로 나와 바이올린 연습을 많이 한 걸로 알고 있다. 바이올린 배워 본 소감이 어떤가. 
“현악기 중에서도 가장 고음을 내는 악기라 (잘 못해서 나오는) 소음공해로부터 벗어나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몸 전체가 악기와 혼연일체가 되어야 하다 보니 흉내를 내서 잘 해 보일 수 있기까지가 어려웠다. 조금만 어설픔이 들어가도 연주 장면의 리얼리티가 확 떨어져 정말 고민과 연습을 많이 했다. 3개월 집중 레슨을 받았고, 남은 3개월 동안은 한 달에 한 번 연습 받으면 다행일 정도로 스케줄이 매일 있었지만 틈틈이 하려고 노력했다. 극중 바이올린 전공생 캐릭터다 보니 일 년을 배워도 못할 수준의 어려운 곡을 소화해야 했는데 습득력이 빠른 덕분에 따라잡을 수 있었다. 하하.

대역 선생님의 힘을 빌릴 수도 있었지만 직접 연주를 하면서 연기를 하고 싶었다. 그래야 진정성을 더 드러낼 수 있다는 욕심 때문에 열심히 했던 것 같다. 감독님, 작가님은 이 정도까지는 예상을 안 했던 것 같다. 직업 자체가 배우라고 생각해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면 나머지는 채워주실 생각이었던 것 같다. (바이올린 연주 장면을 보고)나중엔 점점 놀라시더라. 하하.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의 기량을 펼치고 싶었고, 열심히 한 것 같아 만족하고 있다.”

김민재(좌)와 로맨스 호흡을 맞춘 박은빈(우) / SBS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방송화면
김민재(좌)와 로맨스 호흡을 맞춘 박은빈(우) / SBS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방송화면

- 박준영(김민재 분)과 만남부터 이별까지 연애 일련의 과정을 모두 보여줬다. 본인의 연애 경험이 투영되기도 했나.
“캐릭터랑 박은빈로서의 삶은 확실하게 구분하는 게 연기자로서 좋은 것 같다. 채송아와 저를 동일시했는데 ‘나라면 안 이랬을 텐데’하는 불편한 부분이 발생했을 때 이입이 확 깨질 수 있지 않나. 애초에 구분을 지어서 ‘나는 나, 캐릭터는 캐릭터’로 생각하는 편이다. 특히 채송아처럼 단기간에 극심한 희로애락을 겪는 역할일 경우 캐릭터와 구분을 짓는 게 훨씬 정신건강에 좋다고 생각해서 자전적인 경험을 녹인 것은 없다. 애드리브를 할 때 제 모습이 묻어날 수는 있지만, 자체적으로 제 삶이 투영된 부분은 극히 배제를 한 것 같다.”

- 김민재와의 호흡은 어땠나.
“케미는 좋았던 것 같다. 로맨스 장르라는 게 케미가 중요하다고들 하지 않나. 서로 이야기도 잘 통하고 작품에 임하는 마음이랄까 하는 부분들이 되게 잘 맞았던 것 같다. 저는 채송아로서 열심히 몰입해 연기를 하고, 민재는 준영이로서 연기를 했다. 각자 캐릭터로서 만나다 보니 시너지가 훨씬 잘 나왔던 것 같다.”

- 본인 또래 배우들과 연기할 때의 시너지가 있나.
“어렸을 때는 정통 드라마를 주로 하다 보니 어른들과 하는 작품이 많았다. 어른과 연기할 때 편한 느낌이 있는가 하면, 청춘들과 하면 다른 의미의 편함이 있다. 여러모로 저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 적응을 잘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있더라. 하하.”

- ‘스토브리그’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모두 신예 작가들의 작품이다. 신예작가와 호흡하면서 느낀 차별화된 포인트가 있나.
“사람마다 다를 텐데 기성 작가, 신예 작가들에 대해 함부로 일반화를 내릴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굳이 이야기를 하자면, 이신화 작가와 류보리 작가 모두 오랫동안 준비해온 작품이다 보니 전문성에 있어서 믿고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혹시 이런 부분에서 고증이 잘못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불안감을 전혀 배우로서 느끼지 않고 믿고 연기할 수 있었던 게 큰 장점이었다.”

'믿고 보는 배우'로 자리매김해 나가고 있는 박은빈 / 나무엑터스 제공
'믿고 보는 배우'로 자리매김해 나가고 있는 박은빈 / 나무엑터스 제공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재능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혹시 재능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 있나.
“누군가는 저를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스스로 생각하면 타고난 사람이라고 말하기엔 부끄럽고 노력해온 사람인 것 같다. 송아에게 마음이 갔던 것도 자신의 부족함을 너무 잘 알고 있지만 스스로 돌파하고자 하는 신념을 가졌기 때문이다. 월드클래스 피아노 반주자 박준영한테 ‘정경(박지현 분)이처럼 도와달라’고 하지 않고 ‘내 힘으로 해보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힘을 갖춘 인물이기에 참 노력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역시도 비슷한 상황이었다면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이 들더라. 남한테 의지하지 않고 두 발로 흔들림 없이 설 수 있는 사람, 자립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나와 송아가 맞닿는 점이 있었던 것 같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의지하려고 하기 보단, 때론 어려울지라도 할 수 있는 것들을 차근차근 해오면서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그게 내가 살아온 방향성인 것 같다.”

-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하면서 배우로서 깨닫게 된 점이 있나. 
“처음부터 흔들리지 않고 꼿꼿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점점 나에 대해 알아가면서 연기할 때의 안정감이 두터워지는 느낌이 드는 것 같다. 물론 지금 단언할 수 없고, 내년이 돼 바로 와장창 무너질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스스로 확신하는 단계에 다가서는 게 쉽지 만은 않았다. 점점 자아의 힘이 생기면서 박은빈으로서의 삶을 잘 영위해야 캐릭터로서의 삶도 건강하게 살아낼 수 있더라. 이런 부분들은 20대 때 스스로 부딪히면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열심히 살았던 만큼 나름 보람 있었다고 평가를 내려주고 싶다.”  

- ‘스토브리그’에 연이어 좋은 성과를 거두면서 ‘믿고 보는 배우’ 수식어를 얻고 있다. 믿고 보는 시청자들이 많다는 것에 대해 부담감이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
“‘믿고 보는 배우’라고 지칭해 준다면 너무 든든하고 감사한 말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결과를 생각하면서 선택을 하고 싶지는 않더라. 왜냐하면 항상 최선의 선택을 하려 노력하겠지만, 그 최선의 선택이 지나고 보면 최선이 아닐 수도 있지 않나. 그런 것에 일희일비(一喜一悲) 하다 보면 선택에 대해 스스로 후회하고 자책하게 되고, 그런 상황이 만들어지는 게 과정을 허무하게 만드는 일인 것 같더라. 웬만하면 결과가 어떻게 되든 간에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선택을 하자고 생각이 바뀌게 된 것 같다. 이번 작품도 흥행 쪽으로 생각을 전혀 안 하고 시작했었다. 나름 여러 이유로 29살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었던 총체적인 마음이 반영된 선택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였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그 과정이 행복했는데, 행복한 만큼 재밌게 봐주신 분들이 많다고 해 기쁘다. 다음 선택도 ‘배우의 커리어로 좋은 게 뭘까’라기 보단 박은빈으로서 지치지 않고 계속 연기할 수 있는가를 고민할 것 같다.”

- 특별출연 말고는 영화 출연을 거의 하지 않았다. 영화 욕심은 없나.
“이젠 영화배우와 드라마배우의 경계가 없어졌지만, 어렸을 때 꿈이 뭐냐 물으면 영화배우라고 할 정도로 영화 출연을 꿈꿨다. 영화에 대한 갈망은 항상 있었다. 많이 못 했던 이유는 요즘은 달라진 것 같지만 영화 스케줄을 내는 게 기약이 없다고 느꼈다. 항상 학교를 다녀야 하는 데 기약 없는 기다림이 필요한 작품이 많았다. 그래서 섣불리 참여할 수가 없었다. 또 영화를 안 한다고 스케줄이 비는 게 아니라 드라마를 많이 출연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 인연이 없었던 것 같다. (배우) 일을 계속하다 보면 연결고리가 생길 거라 믿고, 언젠가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1998년 SBS 드라마로 데뷔해 어느덧 23년 차 배우가 된 박은빈 / 나무엑터스 제공
1998년 SBS 드라마로 데뷔해 어느덧 23년 차 배우가 된 박은빈 / 나무엑터스 제공

- 1998년 SBS ‘백야 3.98’로 데뷔해 연차로만 따지면 중견 배우 수준이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 만족하는 편인가.
“예전에 누군가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있냐고 물은 적이 있는데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아무리 생각해도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없더라. 다시 잘 살아내는 게 힘들게 느껴졌달까. 설령 후회가 되는 지점이 있을 수도 있지만, 열심히 살았다는 것을 스스로 부정할 수 없기에 그냥 잘 견뎌왔다고 말해주고 싶다.”

-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
“언제부터인가 계획을 잘 세우지 않게 됐다. 계획을 세우고 나서 지키지 못하면 스스로 구속하는 게 되고, 자괴감 느낄 빌미를 제공하는 것 같더라. 이루지 못할 꿈은 품지도 말자, 순리대로 살자, 털털하게 살자 생각을 어느 순간부터 갖게 됐다. 이루고 싶은 꿈을 물으면 추상적으로 행복한 사람이 돼 행복한 사람으로 살자 정도 밖에 생각이 안 난다. 하하. 그 과정이 스트레스가 적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욕심이라는 게 생길 때 내가 욕심내도 되는 것인지, 나만의 이기적인 욕심으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건지 잘 구분하자 정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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