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에 초청된 ‘스파이의 아내’ 구로사와 감독. /부산국제영화제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에 초청된 ‘스파이의 아내’ 구로사와 감독. /부산국제영화제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이미 일본이나 세계적으로 알려진 역사를 바탕으로, 성실하게 그리고자 했을 뿐이다. 많은 분들이 다양하게 봐줬으면 하는 마음.”

26일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BIFF) 갈라 프레젠테이션에 초청된 영화 ‘스파이의 아내’(Wife of a Spy,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행사는 코로나19 여파로 온라인으로 진행된 가운데,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이 일본에서 온라인 화상 시스템을 통해 국내 취재진과 만났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일본을 대표하는 거장이다. 1983년 ‘간다천음란전쟁’으로 데뷔한 뒤 1997년 ‘큐어’를 연출하면서 세계적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01년 ‘회로’로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서 피프레시 상을 수상했고, ‘밝은 미래’(2002), ‘절규’(2006) 등으로 칸, 베니스영화제 등에 초청됐다. 또 ‘도쿄 소나타’(2008)로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심사위원상, ‘해안가로의 여행’(2014)으로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번 ‘스파이의 아내’로는 베니스영화제에서 감독상 트로피를 안았다.

‘스파이의 아내’는 지난 6월 NHK에서 방영했던 스페셜 드라마를 영화화한 것으로, 태평양전쟁 직전인 1940년, 일본의 엄청난 만행의 현장을 목격하고 이를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한 고베의 무역상 유사쿠와 남편의 대의에 동참해 기꺼이 스파이의 아내가 되기로 한 사토코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아오이 유우‧타카하시 잇세이‧히가시데 마사히로 등 스타 배우들이 열연했다.

주로 공포나 스릴러 등 장르 영화를 선보였던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1940년 일본이라는 시공간의 불안과 불온의 공기를 배경이자 주제로 삼아, 세 남녀의 얽히고설킨 애정과 신념을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로 완성했다.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기자회견에 참석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부산국제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기자회견에 참석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부산국제영화제

이날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처음 시대극에 도전했다”며 “주로 도쿄를 무대로 한 현대의 이야기를 만들었는데, 최종적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단정하고 판단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과거를 무대로 할 경우, 이미 역사이기 때문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알고 있고, 나름의 판단을 했기 때문에 확신을 갖고 그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고 첫 시대극을 연출한 소감을 전했다.

194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택한 것에 대해서는 “일본은 과거 중국과 한국을 포함한 여러 지역을 침공했다”며 “이 영화는 1940년 전후를 그렸는데, 전쟁의 기운이 농후하지 않았고, 자국 내에서는 나름대로 자유와 평화를 구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1940년이 되면 일본 국내에서도 전쟁으로 분위기가 바뀌어간다. 전쟁이 물밀듯 밀려오는 직전 경계에 해당하는 그 시기의 모습을 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스파이의 아내’는 실화를 영화화한 작품은 아니지만, 일본 731부대의 생체실험 등 자국의 전쟁범죄를 소재로 다뤄 크게 주목받고 있다. 이에 대해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엄청난 각오나 용기를 필요로 한 것은 아니었다”며 “물론 역사적 사실이 있다 보니 그것에 반하지 않게 맞는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은 있었지만, 크게 의식한 부분은 아니”라고 말했다.

일본의 과거사를 짚는 양심적인 목소리라는 평가에 대해서는 “그렇게 봐주면 감사한 일이지만, 나 자신이 은폐했던 것이나 숨겨졌던 일을 드러내는 작업을 새로 한 것은 아니”라며 “이미 일본인이나 세계적으로 알려진 역사를 바탕으로, 성실하게 그리고자 했을 뿐이다. 많은 분들이 다양하게 봐줬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스파이의 아내’가 영화적 재미 또한 갖춘 작품으로 연출하고자 노력했다고 밝혔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시대적 사건을 배치하면서 그 안에 서스펜스와 멜로를 어떻게 녹여낼 수 있을지가 더 큰 도전이었다”고 털어놨다.

‘스파이의 아내’에서 사토코로 열연한 아오이 유우(앞). /부산국제영화제
‘스파이의 아내’에서 사토코로 열연한 아오이 유우(앞). /부산국제영화제

‘스파이의 아내’는 스파이가 아닌 스파이의 아내를 주인공으로 한다. 관찰자면서도 당사자이기도 한 그녀의 시선으로 극이 진행돼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이에 대해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스파이가 아닌 그의 아내에게 초점을 맞추게 되면 그 당시 일본의 일반 사람들의 인식이 어땠는지 그려내기 더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고, 무슨 고민을 했고 무엇을 즐겼는지 등 일상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표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서스펜스의 긴장감도 높이는 효과를 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또 아내가 주인공이면 남편이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미스터리로 남을 수 있는 여지가 있어서 아주 빼어난 발상이라고 생각했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주인공 사토코로 활약한 아오이 유우를 향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사토코가 조카를 찾아 역에 방문한 뒤 그 조카로부터 남편에게 전해달라는 봉투를 받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그 순간의 표정에서 굉장한 강인함이 느껴졌다”고 아오이 유우가 활약한 장면을 떠올렸다.

이어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앞으로 뭔가 크게 바뀌지 않을까 싶은 장면인데 그전까지는 보통의 여성이었다가 그 내용물을 받는 순간 굉장한 것을 짊어지게 되는 것 같은 분위기를 표정으로 보여줬다”고 칭찬했다. 그러면서 “정말 연기를 잘 하는 배우”라고 덧붙여 눈길을 끌었다.

결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영화는 사토코가 갇힌 정신병원이 폭격으로 붕괴되고, 이를 보며 하염없이 울부짖는 사토코의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이에 대해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서스펜스나 멜로로만 그렸다면 굳이 그렇게 끝나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며 “가령 남편이 배를 타고 다른 곳으로 떠나버린 그 지점에서 끝나면 오히려 더 세련된 서스펜스가 됐을 거다”고 말문을 열었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그런데 한편으론 전쟁이라는 무거운 이야기가 배경으로 존재했다”며 “어떻게 전쟁과 결착시킬 것인가 고민했다. 사토코가 폭격 맞은 거리를 봤을 때 마지막에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울부짖는 것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혹은 전쟁에 대해 그녀가 느끼는 감정과 취할 수 있는 태도가 울부짖는 것밖에 떠오르지 않더라”고 이유를 전했다.

‘스파이의 아내’는 곧 국내에서도 개봉할 예정이다.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한국 관객과의 만남에 기대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는 “이 영화가 현대와 어떻게 연결될지는 관객들에게 달렸다”며 “역사에 대해 혹은 현대에 대해 어떻게 연결시킬지 자유롭게 생각해 주길 바란다. 한국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된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스파이의 아내’는 이날 오후 5시에 공식 상영됐다. 갈라 프레젠테이션은 거장 감독의 신작 또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화제작 가운데 감독 혹은 배우가 직접 참석해 영화를 소개하는 섹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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