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는 밑도 끝도 없이 늘 ‘청춘’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20대들은 청춘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가 청춘을 무기삼아 강요해온 사회적 압박과 요구에서 벗어나겠다는 이들에게 던진 것은 ‘반항아’라는 시선뿐이다. 하지만 이런 시선은 20대들의 생각과 고민을 이해하지 못해서는 아닐까. 이번 연재는 이 같은 의문에서 출발했다. 20대를 향한 시선을 짚어보고 위로를 건넴과 동시에 이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어떤 것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덕후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 사회도 세대를 불문하고 곳곳에 퍼져있는 덕후들에게
어떤 것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덕후가 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 사회도 세대를 불문하고 곳곳에 퍼져있는 덕후들에게 "열정있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유독 20대에게는 차가운 반응 뿐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시사위크=송가영 기자  누구나 한 번쯤은 어떤 것에 꽂혀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어떤 것에 깊이 빠져 헤어나오지 못해 스스로 휘감겨버림을 자초하고 마는 ‘덕질’조차 20대에겐 쉽게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다.

‘덕질’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깊이 빠져 관련된 것들을 모으고 찾아보는 등의 행위를 뜻한다. 이런 행위를 하는 사람을 통칭 ‘덕후’라고 부르며 분야에 따라 조금씩 명칭이 바뀌기도 한다. 지난해 옥션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 참여대상 750명 중 96%가 ‘어떤 분야에 푹 빠져 덕질을 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덕질에 빠진 분야를 살펴보면, 여성의 경우엔 ‘연예인’이 52%, 남성의 경우 ‘게임’이 48%로 가장 높았다. 덕질을 위해 ‘온라인 광클’을 대기해봤다거나 회사 연차쓰기, 덕질을 위한 해외여행, 매장 밤샘 줄서기 등을 해본 경험이 있다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이렇듯 최근 세대를 불문하고 다양한 분야를 향한 덕질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마저도 20대들에게는 철없는 행위라는 분위기가 여전하다. 이른바 ‘일코(일반인 코스프레) 해제’가 되는 순간 “어릴 때나 하던 것을 왜 아직도 하느냐”라는 반응들뿐이다.

◇ 평소엔 성실한 직장인… 주변시선에 묵묵히 ‘일코’만

지난해 방영한 tvN 드라마 '그녀의 사생활' 주인공 성덕미는 아이돌 그룹 화이트오션의 덕후다. 최애 차시안의 홈마인 그녀가 출연영상을 보며 "귀여워"를 외치는 모습(위쪽), 팬싸인회 앞쪽에서 최애의 얼굴을 보고 사진을 찍는 모습(아래쪽) 등은 덕후들의 공감대를 샀다. /네이버TV, 유튜브 공식 채널 tvN D 영상 갈무리
지난해 방영된 tvN 드라마 '그녀의 사생활' 주인공 성덕미는 아이돌 그룹 화이트오션의 덕후다. 최애 차시안의 홈마인 그녀가 출연영상을 보며 "귀여워"를 외치는 모습(위쪽), 팬사인회 앞쪽에서 최애의 얼굴을 보고 사진을 찍는 모습(아래쪽) 등은 덕후들의 공감대를 샀다. /네이버TV, 유튜브 공식 채널 tvN D 영상 갈무리

덕질을 향한 냉담한 반응에 덕후들은 일코 행세를 하는 것에도 적잖은 신경을 기울인다. 지난해 종영한 tnN 드라마 ‘그녀의 사생활’에서도 아이돌 그룹 덕후인 주인공은 자신의 취미생활을 숨기기 위해 필사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녀의 사생활’ 주인공 성덕미는 채움미술관 수석 큐레이터로, 작품을 보는 안목은 물론이고 뛰어난 사회생활로 주변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그런 그녀는 떠오르는 아이돌 그룹 ‘화이트오션’의 덕후이자 홈마(홈마스터)다. 

드라마 초반부터 그녀는 열정적인 덕후 생활을 보여준다. 직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그녀는 중요한 오프닝 행사가 끝나고도 아이돌의 출근길, 최애의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전력 질주한다. 

아이돌의 출근길 근처 캐비넷에 미리 대포카메라와 얼굴을 가릴 수 있는 후드, 마스크 등을 구비하고는 본격적인 덕질을 시작한다. 성덕미가 자신의 최애 차시안의 매 움직임을 좋아하고 “귀여워”를 습관처럼 내뱉으며 아낌없는 애정공세를 퍼붓는 모습은 뭇 덕후들의 가슴을 웅장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아이돌 좋아하는 사람 이해 못하겠다”며 질색하는 채움미술관의 엄소혜 관장 때문에 성덕미는 직장내에서 철저히 일코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모습 또한 덕후들의 공감을 적잖이 샀다. 

◇ “나이들어서 왜 하나” 핀잔도… ‘취향 존중’ 해주세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각자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오랫동안 덕질해온 이들은 자신들을 향한 날선 시선과 비판에 이미 익숙해진 모습이다. 유명 아이돌 그룹의 덕후 D씨(24)는 “10대 때부터 좋아했는데 그때보다 지금이 더 덕질하기 어려운 것 같다”며 “어릴 때나 좋아하지 지금은 왜 좋아하냐는 말도 듣는다”고 말했다.

그는 “친구들이나 다른 지인들은 ‘하고 싶은 거 한다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거들어주는데, 그러다보면 서로의 취향을 비난하고 비교하는 지경까지 갈 때도 있다”며 “그러다보니 뭘 좋아하는지 공개를 안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고 덧붙였다.

소위 ‘마이너 장르’ 덕질을 오랫동안 해온 W씨(28)는 “마이너는 공감대를 끌어내는 것이 쉽지 않아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익명 덕메이트들과 함께 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어쩌다 장르 이야기를 한번 한 적이 있는데 메이저냐 아니냐로만 구분 짓는 말에 씁쓸한 적도 있다”고 토로했다.

덕질에 필수불가결로 따라오는 ‘경제력’이 입방아에 오르는 것이 적잖이 불편했다는 덕후도 있다. PC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K씨(29)는 “벌어들이는 수익 모두 게임에 사용되고 있다는 편견에 늘 갇혀있다”며 “20대가 되고 경제력이 생겨서 덕질을 하면 낭비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어떤 것을 좋아해본 경험이 있다면 더더욱 취향 존중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뮤지컬 덕후를 자처한 L씨(29)는 “사람이 됐든 사물이 됐든 어떤 것을 정신없이 좋아해봤다면 남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충분히 존중해 줄 수 있을 것”이라며 “남이 좋아하는 것을 본인은 선호하지 않는다고 별종 취급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오롯이 자신이 즐거울 수 있는 덕질만 생각하며 애써 감추려고 노력하지 않는다고도 말한다. L씨는 “종종 30대, 40대에도 이럴거냐라는 핀잔을 듣기도 해서 행여나 누가 알까 숨어서 덕질을 한 적도 있다”며 “어떤 것을 좋아하더라도 그런 시선과 반응을 피할 수 없다면 이제 굳이 숨기지 않으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지금은 돌아오지 않고, 시간이 지나 많이 좋아하지 못했던 순간을 후회하기 싫어 더 마음을 다하고 싶다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자신의 온 마음을 다해 좋아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어떤 것을 좋아하는데 들이는 시간과 노력 중 아까운 것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평가하려는 행위는 지양해야 한다. 늘 그렇듯 타인의 ‘취향 존중’은 필수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