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조사한 지역화페 발행지자체 수와 발행 액수. /그래픽=이현주 기자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조사한 지역화페 발행지자체 수와 발행 액수. /그래픽=이현주 기자

시사위크=정호영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 여파에 따라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지역화폐 발행 확대에 적극 나선 가운데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지역화폐는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지역경제 소비 진작이라는 취지로 전국에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다만 정부의 막대한 세금 투입을 전제로 지역화폐가 성행하게 된 만큼, 임시방편·고육지책에 지나지 않는다는 반론이 나온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조세연)에 따르면, 올해 지역화폐를 발행하는 지자체는 전국 243개 지자체 중 229곳(94.2%·2019년 177곳)이고, 발행액은 9조원대다. 2016년 지역화폐 발행액이 1,168억(발행 지자체 53곳)으로 집계된 점을 감안할 때, 불과 4년 만에 약 77배 증가한 셈이다.

그렇다면 지역화폐는 ‘세금 먹는 하마’일까, ‘지역 효자’일까.

◇ 경제학자들, 지역화폐 지속 가능성 '부정적'

지역화폐 도입 취지는 지역경제 활성화다. 특정 지역에서 전통시장·편의점 등 지정된 업종에 사용토록 해 침체된 지역 골목상권을 살리자는 취지다. 지역별 차이는 있지만 현금대비 평균 10% 수준의 할인율이 적용되며 발생 차액은 세금으로 충당한다.

특히 정부는 코로나19 여파를 고려해 올해 지역화폐 보조금을 8%(2019년 4%)로 상향했다. 보조금 중 2%만 감당하면 되기 때문에 지자체가 너 나 할 것 없이 지역화폐에 달려들었다.

올해 9조원 규모 지역화폐 발행액에 10% 할인율이면 정부·지자체 보조금만 산술적으로 9,000억원이 된다. 여기다 인쇄비·금융수수료 등 지역화폐 발행 시 들어가는 부대비용만 1,800억원에 달한다.

지역화폐의 효용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지역 소비 촉진 △지역 소상공인 보호 등을 거론한다. 지역화폐 예찬론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대표적이다.

이 지사는 지난 9월 19일 페이스북에서 “(지역화폐는) 양극화 완화와 경제회생을 위해 유통대기업 골목상권 잠식으로 피해를 입은 영세자영업자와 골목상권을 보호한다”며 “문재인 정부 포용정책 중 하나”라고 추켜세운 바 있다.

그러나 다수 경제 전문가들은 지역화폐의 지속 가능성에 부정적 견해를 나타냈다.

사실상 모든 지자체의 경쟁적 지역화폐 도입으로 발행 취지가 다소 모호해 졌고, 지역화폐로 인한 소수 특정업종 수혜보다 투입되는 세금 및 행정력 낭비가 더 심각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원식 건국대 글로컬캠퍼스 경영경제학부 교수는 29일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지역화폐는 세금 낭비”라며 “특정 지역에서만 사용 가능한 지역화폐보다 지방세 감면이나 창업 지원·기업 유치 등 주민 복지수준을 높이는 데 재정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울 소재의 한 사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 개입으로 지자체 지역화폐가 번지는데 경제 효과보다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화폐 유동성을 제한하는 동시에 괜한 관리비용에 세금을 낭비하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민의 금전적 지원을 전제할 때, 차라리 ‘반쪽 화폐’인 지역화폐 대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현금을 지급하는 편이 낫다는 견해도 있다.

박기성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역화폐에 대해 “실질적인 화폐 역할을 못하는 절름발이 화폐”라며 “소상공인을 금전적으로 지원한다는 전제조건하에서는 차라리 융통성 있는 소비를 할 수 있는 현금이 낫다”고 했다. 이어 “지역화폐는 미래 설계 여지를 없애는 비효율적 자원배분 정책”이라며 “지속 가능한 정책이 아니라고 본다”고 혹평했다.

반론도 있다. 강남훈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금으로 지원하면 안 쓰거나 저축할 수 있는데, 지역화폐는 소상공인 등에 용처가 한정돼 지역 골목상권을 살리는 효과가 크다”며 “코로나19로 인한 재난에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적절히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허태정 대전시장이 지난 5월 14일 지역화폐 '온통대전' 출시 기념식을 연 뒤 한 소상공인업소에 들러 '온통대전'을 이용해 빵을 구입하고 있다. (사진= 대전시 제공). /뉴시스
허태정 대전시장이 지난 5월 14일 지역화폐 '온통대전' 출시 기념식을 연 뒤 한 소상공인업소에 들러 '온통대전'을 이용해 빵을 구입하고 있다. (사진= 대전시 제공). /뉴시스

◇ 지역화폐의 미래

코로나19 사태가 정리될 경우 정부의 지역화폐 보조금 예산 단계적 감축 및 중단은 예정된 수순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3일 기재부 국정감사에서 “(코로나19) 위기가 마무리되면 (지역화폐는) 지자체 중심으로 가야 한다”며 “지자체에서 비용을 부담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각 지자체가 지역화폐 발행에 뛰어들었지만 코로나19 완화에 따른 정부의 지원 감축에 대한 심도 있는 재정적 방안 없이 발행에만 골몰할 경우 결국 피해는 국민 몫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부산시 지역화폐 ‘동백전’이 대표적인 사례다. 부산시는 지역화폐 구매 시 10% 캐시백 지급을 인센티브로 내걸었고, 가입자가 급증하면서 캐시백 예산도 덩달아 치솟았다. 결국 정부에 7,200억원 상당의 국비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일각에서는 영국의 브리스톨파운드나 일본의 아톰통화를 해외 지역화폐 성공사례로 들며 국내 지역화폐도 지속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다만 민간 주도로 안착한 해외 성공사례와 관 주도의 국내 사례를 단순 비교해선 안 된다는 반론이 나온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지역화폐는 민간 아이디어로 자생된다면 몰라도 국가가 세금으로 주도하고 지자체 카피로 발행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그 많은 지자체가 모두 지역화폐를 따라할 이유가 있느냐”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지역화폐에 들어간 돈과 효과를 면밀히 분석하고 명확한 효과가 없다면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현행 국내 지역화폐는 국가 전체 성장에는 관심 없는 지역 정치인들의 포퓰리즘이라는 생각”이라며 “지역민 인기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된 것 같아 유감”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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