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라고 해도 무방한 무한 경쟁이 펼쳐지는 척박한 세상에서 태어나자마자 친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의지할 곳 없이 외롭게 홀로 서야 하는 아이들이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베이비박스를 통해 매년 수백명의 아기들이 친부모에 의해 세상 속에 홀로 유기되고 있다. 우리는 뉴스를 통해 베이비박스 아기들의 슬픈 사연을 종종 듣는다. 베이비박스에 유기되는 아기들을 줄일 수 있는 현실적인 대책은 없을까. <시사위크>는 베이비박스 설치 11년의 실태를 점검해보고 유기 아동을 줄일 수 있는 근본적 대책에 대해 고민해보고자 한다.

서울 주사랑공동체교회는 지난 2009년 12월 국내 최초로 베이비박스를 설치했다./주사랑공동체교회
서울 주사랑공동체교회는 지난 2009년 12월 국내 최초로 베이비박스를 설치했다./주사랑공동체교회

시사위크=김희원 기자 지난 2009년 우리나라에 베이비박스(baby box)가 처음으로 설치된 이후 11년의 시간이 흘렀다. 베이비박스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아기를 키울 수 없는 부모가 상자 안에 아기를 두고 갈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베이비박스는 현재 두 곳에서 운영하고 있다. 서울 주사랑공동체교회가 지난 2009년 12월 국내 최초로 교회 담벼락에 설치했다. 이후 2014년 5월 경기도 군포시 새가나안교회가 두 번째 베이비박스를 설치했다.

주사랑공동체교회 설립자인 이종락 목사에게는 중증장애를 가진 친아들이 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중증장애로 인해 버림을 받은 아기들이 하나둘 이 목사에게 보내졌고, 그러던 어느 봄날 새벽 교회 문 앞에 아기가 버려졌다. 굴비상자 안에 담긴 아기를 발견한 이 목사는 이후 부모로부터 버려진 아기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베이비박스를 설치했다.

주사랑공동체교회가 운영하는 베이비박스에 올해 10월까지 1,801명의 아기들이 들어왔다./그래픽=이현주 기자
주사랑공동체교회가 운영하는 베이비박스에 올해 10월까지 1,801명의 아기들이 들어왔다./그래픽=이현주 기자

◇ 베이비박스 아기는 얼마나 되나 

그렇게 베이비박스가 설치됐고, 11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다. 두 곳에 설치된 베이비박스를 통해 친부모로부터 유기된 아기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었고, 올해 11월 10일 기준으로 1,935명(주사랑공동체교회 1,803명, 새가나안교회 132명)이나 된다.

주사랑공동체교회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4명, 2011년 35명, 2012년 79명, 2013년 252명, 2014년 253명, 2015년 242명, 2016년 223명, 2017년 210명, 2018년 217명, 2019년 170명, 2020년(1~10월) 116명의 아기가 친부모에 의해 베이비박스에 남겨졌다.

주사랑공동체교회 이종락 목사는 “베이비박스는 2009년 12월 설치됐지만 2010년 3월부터 아기가 들어왔고 지난달 10월까지 총 1,801명”이라며 “올해 11월 10일까지 들어온 아기들을 합하면 1,803명”이라고 설명했다.

군포 새가나안교회의 베이비박스 보호 아기는 2014년 28명, 2015년 36명, 2016년 29명, 2017년 13명, 2018년 10명, 2019년 8명, 2020년 8명이다.

군포 새가나안교회 관계자는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2014년 5월부터 올해 11월 10일까지 132명의 아기들이 베이비박스에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주사랑공동체교회에 따르면, 베이비박스에 아기들을 두고 간 친부모의 상황은 미혼인 경우가 50% 이상으로 가장 많았고 연령대는 20대가 50% 안팎인 것으로 집계됐다. 연도별로 보면 △2017년 미혼 68%, 기혼(양부모‧이혼) 10%, 외도 16%, 기타 6% △2018년 미혼 59%, 기혼 17.5%, 외도 17.5%, 기타 6% △2019년 미혼 63.5%, 기혼 15.3%, 외도 14.7%, 기타 6.5% △2020년 미혼 72.1%, 기혼 11.8%, 외도 13.2%, 기타 2.9%다.

연령대별 집계를 보면 △2017년 10대 14%, 20대 47%, 30대 24%, 40대 8%, 기타 7% △2018년 10대 14%, 20대 50%, 30대 23%, 40대 7%, 기타 6% △2019년 10대 11%, 20대 49%, 30대 28%, 40대 4%, 기타 8% △2020년 10대 12%, 20대 52%, 30대 28%, 40대 6%, 기타 3%다.

주사랑공동체교회 관계자는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아빠가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두고 간 극히 일부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아기의 엄마가 베이비박스를 찾는다”며 “친부모의 가정 상황 집계의 경우 기타에는 근친상간이나 외국인 노동자의 아기 등이 포함됐고, 연령대별 집계의 경우 기타에 50대 이상이거나 정신 병력 등으로 산모의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사례 등을 포함시켰다”고 설명했다.

베이비박스 아기들은 일시보호시설에서 임시 보호되다가 이후 입양 혹은 가정 위탁되거나 아동복지시설 등으로 보내지게 된다./뉴시스
베이비박스 아기들은 일시보호시설에서 임시 보호되다가 이후 입양 혹은 가정 위탁되거나 아동복지시설 등으로 보내지게 된다./뉴시스

◇ 베이비박스 아기들은 어디로 가나

친부모가 베이비박스에 버리고 간 아이들은 어떤 과정을 밟게 될까. 베이비박스 운영자는 베이비박스에 아기가 들어오면 관할 경찰서에 신고하고 지자체에 통보하게 된다. 관할 지자체는 아기를 인계 받아 병원 등에서 건강 상태 확인을 거쳐 일시보호시설에서 임시 보호되도록 조처한다. 이후 아기들은 입양 혹은 가정 위탁되거나 아동복지시설 등으로 보내진다.

감사원은 지난해 11월 발표한 ‘보호대상 아동 지원실태’ 감사 보고서를 통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베이비박스에 유기된 아기 962명 중 929명(96.6%)이 임시 보호되다가 아동양육시설 등 시설로 보호 조치됐고, 임시 보호 이후 가정보호(입양‧가정 위탁)로 조치된 아동은 33명(3.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처음에 아동복지시설로 보내진 베이비박스 아기들(929명) 중 차후에 가정보호로 변경된 아기는 입양 111명, 가정 위탁 17명으로 총 128명(13.8%)에 불과했고, 대부분(748명, 80.5%)이 현재까지 그대로 아동복지시설에서 보호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이 같은 상황에 대해 “보호대상아동에 대해 가정보호를 우선으로 하는 보호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우려가 있다”고 문제점을 진단했다.

주사랑공동체교회에 따르면, 2010년부터 올해 10월까지 베이비박스 아기 1,801명 가운데 친부모에게 다시 돌아간 경우는 208명에 그쳤다.

통계청 통계개발원은 2018년 하반기 ‘한부모가구 형성의 특성 분석’ 연구보고서를 통해 베이비박스 실태에 대해 “2009년 베이비박스가 설치된 이후로 베이비박스를 통해 유기되는 아기는 점차 증가하고 있다”며 “미혼모의 임신과 출산을 지원하는 사회적 체계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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