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 경쟁 사회에서 예술은 하나의 숨구멍이 돼 왔다. 많은 이들은 책과 음악, 공연과 전시를 통해 일상의 지루함을 달래기도 한다. 예술인의 화려한 이면에는 하나의 작품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치열한 삶이 있다. 그러나 쉽지 않다. ′예술은 배고프다′는 인식은 예술계를 움츠려들게 만든다. 어떻게 하면 예술인들이 살만한 세상이 될 수 있을까. <시사위크>는 코로나19를 맞이한 예술계의 현주소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공연과 전시가 취소되면서 예술계는 생존을 ′위협′을 받고 있는 모습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시사위크=권신구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생활의 곳곳을 허물었다. 예술계도 그 여파를 피할 수 없었다. ‘관객’과 소통을 해야 하지만, 전염병의 위협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예술인들은 ‘예술계는 늘 힘들었다’고 말하지만, 이번에는 특히나 더하다는 분위기다. 

가뜩이나 약했던 경제적 기반 때문에 흔들림은 더욱 컸다. 언제 다시 활동을 시작할 수 있을지도 막연하다. 코로나19로 예술계가 마주한 것은 단순한 ‘위기’의 수준이 아니다. 생존의 ‘위협’인 셈이다.

◇ 공연·전시 직격탄 받은 예술계

밴드 만쥬한봉지 리더 최용수씨는 코로나19가 바꿔놓은 공연업계의 현실을 상세히 전했다. 그는 <시사위크>와 만난 자리에서 “공연이 10분의 1로 줄었다”고 언급했다. 

사실상 올해 상반기는 공연이 전무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올 초부터 극심해진 코로나19의 여파로 공연 생태계가 붕괴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공연계에서 ‘황금기’로 불리는 5월에는 단 한 건의 공연만 있었다. 코로나19 이전 일주일에 2건씩 공연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상황이다.

상황이 조금 괜찮아지는 듯했으나 지난 8월 ‘광복절 집회’ 이후 대규모 감염사태가 벌어지면서 타격은 다시 이어졌다. 그는 “(상반기 이후) 이 상황 안에서 자구책이 생기고 있었다.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생기는 추세였다”며 “그러나 광복절 집회 이후 그게 싹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후 일정에도 차질이 생기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는 “10월 공연을 위해서는 8~9월 초까지 기획단계에서 섭외를 들어가야 하는데 그 단계가 진행이 안 되고 있다”며 “현재는 서대문 형무소 정기공연 하나만 살아남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전시 예술계도 비슷한 상황이다. 현재는 많이 나아진 측면이 있지만,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기에는 타격이 극심했다.

한국화가로 활동 중인 오수지 작가는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올해 초반에는 타격이 엄청 심했다”며 “갤러리 자체가 휴관하고, 성과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지다 보니 작가들이 하려고 하는 전시들이 무산되거나 연기가 된 것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밴드 만쥬한봉지의 리더 최용수씨는 평소라면 가장 바빴던 시기인 5월에도 공연이 한 건 밖에 없었다라며 어려운 현실을 전했다. /만쥬한봉지 제공

◇ ‘신인’에게 더 가혹한 현실

최용수씨가 리더로 있는 만쥬한봉지는 올해로 8년 차에 접어든 실력파 밴드다. 그간 전국을 넘나드는 공연은 물론 라디오·방송 활동도 활발히 하며 업계에서 인지도와 명성이 높았다. 이렇다 보니 다른 밴드들에 비해서는 상황이 그나마 나은 편이다. 사실상 인지도가 없는 신인들의 경우는 더욱 어려운 현실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댈 수 있는 것은 각종 지원사업이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는 것이 예술인들의 전언이다. 지자체를 비롯해 예술인 지원단체에서는 지원금을 줄이는 대신 더 많은 사람들을 지원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더구나 코로나19로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에서 기성 예술인에 비해 신인들의 위치가 더 불안하다.

최씨는 “저 같은 경우는 경력이 있고, (사람들이) 아는 것들이 있으니까 그게 비교적 도움이 되는 편”이라면서도 ”갓 데뷔한 친구들은 지원사업에 지원하려 해도 경력을 증명할 수 있는 게 없다 보니 아쉬운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실이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공연예술기관이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한 이유로 ‘지원 신청 조건에 미달’(30.2%)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적합한 지원이 부족했다’는 것이 29.3%로 두 번째를 기록했다. 

익명을 요구한 도자기 작가 A씨는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지자체에서 예술인을 도와주기 위해 많은 프로그램을 만들고는 있지만, 문제는 조건이 까다롭다”라며 이러한 분위기에 공감했다.

이에 대해 최씨는 “개인적으로는 지원사업 심사과정에서 서류와 면접을 같이 진행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라며 “재단이나 센터의 입장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종이만 보고 파악을 하는 것보단 가능성을 볼 수 있는 방법이 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1월에서 8월까지 코로나19로 인한 공연·전시예술의 피해 규모는 2,646억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래픽=이현주 기자

◇ 자구책 찾는 예술계

김예지 의원실이 문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공연·전시 예술의 피해 규모는 총 2,646억원으로 추정된다. 공연예술 9,683건, 전시예술 1,553건이 취소된 것으로 추정된다.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예술계는 나름의 방법을 찾고 있다. 최근 전시 예술계는 ‘온라인 전시회’를 속속 내놓고 있다. 대면 전시가 불가한 예술인과 관객들을 위해 온라인을 통해 소통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유튜브 라이브′ 등을 통해서 접점을 늘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결국 미봉책에 불과하다.

제대로 된 작품 감상의 기회가 없어진다는 것은 작가들에게는 생존과 직결된 부분이다. 작가를 홍보할 수 있는 기회와 작품을 판매할 수 있는 장(場)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오수지 작가는 “회화작업이나 질감 작업의 작품은 (온라인에서) 표현을 보여주는 데 한계가 있다”며 “설치작업의 경우도 공간에서 보여주는 힘이 있는데 그런 것에 한계가 있다 보니 초반에 막막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도자기 작가 A씨 또한 “비대면 전시로 가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없어졌다”며 “작품 판매로도 이어지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 ‘예술인 고용보험’ 해법 될까?

장기화 된 코로나19 국면에서 직격탄을 받은 예술계를 두고 고사(枯死) 직전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도 이러한 분위기를 방증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부분은 최근 ‘예술인 고용보험′이 시행된다는 점이다. 오는 12월부터 예술인들 역시 고용보험 대상자에 속하게 됐다. 예술 활동이 끊긴 상황에서도 어느 정도의 생계 유지가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개선해야 할 부분은 많다. 일단 예술계에서는 이를 크게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다. 극히 제한된 대상자로 인해 제대로 된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여기에 예술 활동의 증명이 어려운 상황에서 이를 제대로 활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오경미 문화예술노동연대 사무국장은 서면 답변을 통해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통해 안정된 예술활동을 할 수 있도록 실효성을 가지려면 최대한 많은 수의 예술인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그동안 배제돼왔던 문화예술분야의 예술인과 예술 활동 증명이 어려웠던 예술인들도 고용보험의 적용대상으로 포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오 국장은 “예술활동을 어떻게 증명하고 인정할 것인지를 예술인에게 돌리는 방식이 아닌 관련된 예술비용의 수급, 지원내역 등으로 그 증명을 간이하게 해야 한다”며 “향후에는 근로계약서와 마찬가지로 예술계약이 정착화 될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하고 사용자가 계약서를 제출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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