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잔칫날’이 관객과의 만남을 앞두고 있다. /트리플픽쳐스
영화 ‘잔칫날’이 관객과의 만남을 앞두고 있다. /트리플픽쳐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무명 MC 경만(하준 분)은 각종 행사 일을 하며 동생 경미(소주연 분)와 함께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는 아버지를 간호 중이다. 하지만 갑자기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경만은 슬퍼할 겨를도 없이 장례비용조차 없는 빡빡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동생 몰래 장례식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지방으로 생신 축하연 행사를 간 경만은 남편을 잃은 후 웃음도 잃은 팔순의 어머니를 웃게 해달라는 일식(정인기 분)의 바람을 들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 재롱을 피운다. 가장 울고 싶은 날 가장 최선을 다해 환한 웃음을 지어야 하는 경만은 팔순 잔치에서 예기치 못한 소동에 휘말리며 발이 묶이게 된다. 한편 홀로 장례식장을 지키는 경미는 상주인 오빠의 부재로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주변의 잔소리만 듣게 된다.

제24회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비롯, 배우상(하준)‧관객상‧배급지원상까지 4관왕을 차지하며 ‘웰메이드 드라마’로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 ‘잔칫날’이 관객과의 만남을 앞두고 있다. 극장가에 온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까.

‘잔칫날’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 하준 스틸컷. /트리플픽쳐스
‘잔칫날’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 하준 스틸컷. /트리플픽쳐스

‘잔칫날’은 무명 MC 경만이 아버지의 장례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가장 슬픈 날 잔칫집을 찾아 웃어야 하는 3일 동안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단편 ‘연기의 힘’ ‘성재씨’ ‘꽃’ ‘사택망처’ 등을 통해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온 김록경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다.

분명 장례식장인데 웃음이 터져 나오고, 잔칫집인데 마음 한편이 아리다. 영화는 소중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도 마음껏 슬퍼할 수만은 없는 팍팍한 현실과 장례비용 마련을 위해 잔칫집을 찾아 공연을 해야 하는 경만의 상황을 유쾌하면서도 묵직하게 담아낸다. 행복과 슬픔,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우리의 삶, 그리고 그 삶 속 수많은 아이러니를 담담하게 그려 깊은 여운을 안긴다.

장례식장을 찾은 이들과 잔칫집의 마을 사람들은 지극히 현실적이라 웃기고, 화나고 아프다. 부의금의 액수를 고민하는 친구들, 돈 때문에 갈등을 빚는 친척, 하나부터 열까지 참견만 해대는 고모들까지 어이없는 상황들에 웃음이 터져 나오다가도 우리네 현실과 똑 닮아있어 더 씁쓸하게 다가온다.

‘잔칫날’에서 열연한 소주연(왼쪽)과 하준. /트리플픽쳐스
‘잔칫날’에서 열연한 소주연(왼쪽)과 하준. /트리플픽쳐스

그럼에도 경만이 견딜 수 있는 건 끝까지 자리를 지켜준 오랜 친구, 오빠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팬클럽 이름으로 몰래 화환을 보낸 동생, 그에게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 덕이다. 때론 더럽게 치사하고 다 포기해버리고 싶은 고된 삶이지만, 그럼에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준은 탄탄한 연기로 극을 이끈다. 울고 싶은데 웃어야 하는 아이러니한 경만의 상황을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딱 맞는 온도로 담아내 공감을 이끌어낸다. 압도적인 감정 연기는 물론, 춤과 노래까지 다재다능한 모습을 보여준다. 경미를 연기한 소주연도 제 몫을 해낸다. 다양한 감정의 눈물 연기를 선보여 몰입도를 높인다.

김록경 감독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를 말하고 싶었다”며 “익숙하다 보면 소중함을 알면서도 망각하고, 떠나보내면 후회를 하게 된다. 우리가 후회 없는 삶을 살 수는 없겠지만 조금 후회를 덜 하면서 살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슬픔이 필요할 때 슬퍼할 시간을 주는 것 역시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러닝타임 108분, 오는 12월 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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