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누군가는 몰래 촬영하고, 누군가는 소비한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온라인 공간으로 퍼지는 젠더 폭력. 우리는 이것을 ‘디지털 성범죄’라고 부른다. 우리 사회의 디지털 성범죄는 생각보다 자주, 많이 일어나고 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두려움. 무엇이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디지털 성범죄가 사라지지 않는 현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편집자주]

올해 국민적 공분을 일으켰던 텔레그램 성착취 범죄 ‘n번방’과 ‘박사방’ 사건으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자, 방송통신위원회 등 정부 및 관계부처들도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예산을 늘리며 대응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그래픽=박설민 기자

시사위크=박설민 기자  올해 초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텔레그램 성착취 범죄 ‘n번방’과 ‘박사방’ 사건은 차츰 대중들에게서 흐릿해져갔던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금 불러일으켰다. 이에 국민들뿐만 아니라 정치권, 시민단체 등 각계각층에선 한목소리로 가해자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촉구했다. 

서울중앙지법 역시 이들의 범죄행위에 대한 심각성을 인정해 지난달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에게 징역 40년을 선고했다. 기존 아동·청소년 음란물 제작자들의 유기징역이 평균 2년에 그친 것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처벌 수위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들을 처벌하는 것보다 디지털 성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모니터링 등을 통해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조언한다. 피해자들의 고통을 경감시키는데 가해자 처벌 자체보단 빠르게 불법 촬영물들을 삭제해 최대한 피해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 각 기관, 디지털 성범죄 막기 위한 내년도 예산 증액

이 같은 전문가들의 지적에 각 정부 관계부처 및 민간협력기관들은 내년도 예산안에서 디지털 성범죄의 사전 예방을 위한 예산을 편성하고 하고 있다. 

먼저 정부 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3일 발표한 ‘2021년 방송통신위원회 예산안’에 따르면 방통위는 내년 불법유해정보 차단기반 마련 사업을 위해 총 27억6,500만원의 예산을 투입한다.

이 중 불법 음란물 유통 방지를 위해 웹하드 사업자에 대한 자동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과 인터넷 사업자에게 부과된 ‘불법 촬영물 차단 기술적 조치’ 의무 평가체계 마련을 위해 16억4,000만원의 예산을 투입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 역시 전년 대비 4.5% 증액된 362억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에서 디지털 성범죄 예방과 관련한 △불법촬영물 등 디지털 성범죄 정보 24시간 상시 자동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 △ 공공 DNA DB 공조시스템 구축 부문에 총 12억원의 신규 예산을 책정했다. 

디지털 성범죄 관련 예산을 기반으로 현재까지 인력에 의존하는 방식인 불법촬영물 모니터링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AI 자동모니터링 도입의 사전 단계인 ‘24시간 상시 자동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 사업에 5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지난해 11월 주요 정부부처와 체결한 '디지털성범죄 공동 대응을 위한 업무협약'의 후속조치 일환으로, 위원회에 ‘공공 DNA DB 공조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예산에는 7억원이 반영됐다. 공공 DNA DB란 Data(데이터)·Network(네트워크)·AI(인공지능) 데이터 베이스를 말한다. 경찰청, 방통위, 여성가족부 등에서 확보된 불법촬영물, 아동 성착취물 등의 영상물을 방심위에서 통합관리하고 민간 필터링 사업자들 역시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 저장소다. 

방심위 측은 “AI모니터링을 통해 불법촬영물 등 디지털성 범죄정보에 대한 신속한 모니터링이 가능할뿐만 아니라, 재유통 영상물의 지속 추적도 가능하게 될 것”이라며 “골든타임 내에 디지털성범죄로 인한 피해를 신속히 구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이어 “공공DNA DB 구축을 통해선 불법촬영물 신고·식별·심의·피해구제 등 전과정에 방송통신위원회·여성가족부·경찰청 등 유관기관의 공조체계가 전방위적으로 가동된다”며 “해당 영상물에 대한 필터링 실효성도 극대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울러 여성가족부 역시 내년 디지털 성범죄 근절 및 예방 분야에 올해보다 31억원 증진된 41억원의 예산을 투입한다. 해당 예산을 통해 성착취물 및 불법 영상물을 24시간 모니터링하는 인력과 전문 상담사 등을 충원한다는 계획이다. 

여성가족부 자체 디지털 성범죄 대응을 위한 전담부서도 신설할 예정이다. 해당 부서는 여성가족부에서 현재 운영 중인 ‘범정부 성희롱·성폭력 근절 추진 점검단’과 디지털 성범죄 관련 업무를 총괄해 운영할 것으로 예상된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변화라고 지적한다. 디지털 성범죄가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칠 수 있는 범죄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Getty images

◇ 전문가들, “가장 중요한 것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인식 개선”

다만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변화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일반인들이 가볍게 ‘야동’ 정도로 보고 넘어갈 영상물, 사진 등이 아닌, 피해자들의 인생을 망칠 수 있는 명백한 범죄행위라는 것을 인지해야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간한 미디어이슈 ‘단체채팅방을 통한 불법 촬영물 유모 관련 시민 경험 및 인식 조사’ 리포트에 따르면 카카오톡, 텔레그램 등 단체 채팅방에서 불법 촬영물을 받거나 유포를 목격했을 때 한 행동은 ‘조용히 혼자 봤다’고 응답한 사람이 64.9%로 가장 많았다. ‘불법 촬영물을 올린 상대방에게 항의했다고 답한 응답자는 23.2%에 그쳤다. 

‘사진이나 동영상에 대해 다른 이들과 품평하거나 얘기를 나눴다’는 항목에 대해 답한 응답자도 38.7%에나 달했으며, ‘다른 사람에게 사진이나 동영상을 전송했다’와 ‘다운로드 등을 통해 소지했다’고 응답한 사람도 각각 18.6%, 11.9%로 집계됐다. 

단체채팅방에서 불법 촬영물이나 음란물을 유포하는 행위가 발생하는 원인에 대한 질문에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가벼운 인식으로 인해 불법 촬영물 시청에 대한 죄의식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이라는 응답이 44.3%로 가장 많았다. 

경찰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단속을 경찰청, 방심위 등 관계 기관에서 꾸준히 진행하고 있지만 소비가 있으니 판매도 있는 것이기에 여전히 불법 음란물, 촬영물들이 유통되고 있다”며 “개개인들이 호기심으로라도 웹하드, 토렌트 등에 몰카 등의 불법 영상물을 다운로드나 업로드 하지 않도록 주의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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