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폐기된 법안이 15,000여건에 달한다. 이 중에는 법안이 통과될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지만,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처럼 많은 법안이 국회에서 잠자는 이유는 이해당자들간의 첨예한 대립 때문이다. 일부 법안은 이해당사자들의 물밑로비로 논의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폐기되기 일쑤다. <시사위크>는 국회에 계류된 법안이 왜 처리되지 못했는지 그 과정을 쫓고자 한다. 법안이 발의된 배경과 국회에서 잠만 자야 하는지를 추적했다.

소년들의 흉악한 범죄가 언론을 통해 전해질 때마다 소년법 폐지 및 개정 요구가 분출되고 있다./게티이미지뱅크
소년들의 흉악한 범죄가 언론을 통해 전해질 때마다 소년법 폐지 및 개정 요구가 분출되고 있다./게티이미지뱅크

시사위크=김희원 기자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는 소년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소년법을 폐지하거나 개정해 가해 학생이 강력한 처벌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의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지난 1월 중학생들이 지하철 등에서 노인의 목을 조르고 폭행했지만 가해 학생들이 만13세로 촉법소년에 해당하는 연령이기 때문에 형사처벌을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소년법 폐지 및 개정 여론이 거셌다. 지난해 초에는 촉법소년이 훔친 차를 몰다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생을 치어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소년법 논쟁이 벌어졌다.

또 지난 2017년 인천에서 18세 소녀가 8세 초등학교 학생을 살해하고, 부산에서는 여자 중학생 2명이 또래 여학생을 폭행해서 피투성이로 만든 사건이 발생하면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소년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빗발쳤다.

범법 행위를 한 미성년자는 나이에 따라 크게 ‘범죄소년(만 14세 이상~만 19세 미만)·촉법소년(만 10세 이상~만 14세 미만)·범법소년(만 10세 미만)’으로 나뉜다. 범죄소년은 형사처벌은 받지만 소년법 특례 규정이 적용돼 완화된 기준으로 형을 선고 받게 된다. ‘형사미성년자’로 분류되는 촉법소년은 형사처벌은 받지 않고 보호관찰, 의료기관 송치, 소년원 송치 등 보호처분을 받는다. 범법소년의 경우는 형사처벌과 보호처분 모두에서 자유롭다.

그렇다면 최근 발생한 소년 범죄 현황은 어떨까.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이 대검찰청 자료를 분석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소년범은 지난 2009년 11만3,022명에서 2018년 6만6,142명으로 41.5%(4만6,880명)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성폭력 범죄 등 소년 강력범죄자는 2009년 3,182명에서 2018년 3,509명으로 오히려 9.3%(327명)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실이 대검찰청 자료를 근거로 제공한 '연도별 소년범죄 유형별 현황'이다./그래픽=이현주 기자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실이 대검찰청 자료를 근거로 제공한 '연도별 소년범죄 유형별 현황'이다./그래픽=이현주 기자

◇ “촉법소년 기준 조정해야” 

소년법을 폐지하거나 개정해 소년 범죄자들을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은 이 같이 소년 강력범죄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주된 이유로 들고 있다.

<시사위크>가 만난 전문가들은 소년법이 반사회성이 있는 소년들의 환경 조정과 품행 교정 등을 통해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돕기 위해 제정된 만큼 소년법은 폐지가 아닌 존치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소년법 악용 사례가 있는 만큼 소년 범죄에 대한 처벌 강화를 위해 소년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촉법소년의 나이를 ‘만 10세 이상 만 14세 미만’에서 ‘만 10세 이상 만 13세 미만 또는 12세 미만’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보호사건으로 처리할 것인지 형사사건으로 처리할 것인지의 기준은 나이가 아닌 ‘죄질’이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승 연구위원은 “촉법소년이 만 14세 미만이기 때문에 13세가 성폭행을 저지르고 살인을 저질러도 형사처벌을 할 수 없고 소년법상 보호처분 밖에 할 수 없다. 말이 안된다”며 “보호처분은 일시적인 폭행 등 경미한 범죄에 한해서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승 연구위원은 “촉법소년 기준 14세 미만을 13세 미만으로 낮추는 것은 당위적이고, 13세 미만 보다는 12세 정도까지 낮춰야 한다”며 “소년이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나이 기준이 아닌 죄질에 따라 보호사건으로 갈 것인지 형사사건으로 갈 것인지 결정하게 만들어야 소년법을 폐지하자는 얘기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도 촉법소년의 나이를 ‘만 10세 이상에서 만 12세 미만’ 정도로 낮추고 범죄소년에 대한 처벌도 더욱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살인을 저질러도 형사미성년자들은 처벌을 받지 않고 형사미성년자가 아닌 경우(범죄소년)에도 강한 처벌은 받지 않고 있다”며 “범죄 행위에 대해서 좀 더 규제, 제재를 강화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촉법소년을 만 14세 미만에서 12세 미만으로 낮춰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소년들의 인지 능력 수준이 과거보다 높아져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처벌을 제대로 받지 않는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보니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실정법에 따라서 형벌이 부과되고 자신에게 불이익이 올 수 있다는 것을 인식시켜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진우 법무법인 로엘 변호사도 촉법소년 나이를 조정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박 변호사는 “소년법을 폐지한다고 겁을 먹고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까. 그렇게는 생각 안한다”며 “다만 요즘 학생들이 신체적ㆍ정신적으로 성숙한 것은 맞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는 형사미성년자 연령을 만 14세 미만에서 1살 정도 낮추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박 변호사는 “살인이나 성범죄 등은 강하게 처벌하도록 법을 개정할 필요성은 있다”며 “단순 폭행 등은 교화 가능성이 있다고 보지만 흉악한 범죄는 엄하게 처벌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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