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폐기된 법안이 15,000여건에 달한다. 이 중에는 법안이 통과될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지만,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처럼 많은 법안이 국회에서 잠자는 이유는 이해당자들간의 첨예한 대립 때문이다. 일부 법안은 이해당사자들의 물밑로비로 논의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폐기되기 일쑤다. <시사위크>는 국회에 계류된 법안이 왜 처리되지 못했는지 그 과정을 쫓고자 한다. 법안이 발의된 배경과 국회에서 잠만 자야 하는지를 추적했다.

소년법 폐지 및 개정 반대론자들은 소년 범죄 처벌 강화가 능사가 아니라는 입장이다./그래픽=이현주 기자
소년법 폐지 및 개정 반대론자들은 소년 범죄 처벌 강화가 능사가 아니라는 입장이다./그래픽=이현주 기자

시사위크=김희원 기자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는 청소년들의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소년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치곤 한다. 또 국회에서도 이 같은 여론에 발맞추기 위해 소년 범죄 처벌 강화를 위한 소년법 개정안이 발의되고 있다.

범법 행위를 한 미성년자는 나이에 따라 크게 ‘범죄소년·촉법소년·범법소년’으로 나뉜다. 범죄소년(만 14세 이상~만 19세 미만)은 형사처벌은 받지만 소년법 특례 규정이 적용돼 완화된 기준으로 형을 선고 받게 된다. ‘형사미성년자’인 촉법소년(만 10세 이상~만 14세 미만)은 형사처벌은 받지 않고 보호관찰, 의료기관 송치, 소년원 송치 등 보호처분을 받는다. 범법소년(만 10세 미만)의 경우는 형사처벌과 보호처분 모두에서 자유롭다.

21대 국회에는 촉법소년 기준을 ‘10세 이상 14세 미만’에서 ‘10세 이상 12세 미만’으로 수정하거나 18세 미만인 소년을 사형 또는 무기형에 처할 경우 15년의 유기징역으로 형을 완화하는 조항(제59조)을 삭제하는 내용 등의 개정안이 다수 발의돼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대론자들은 소년 범죄를 줄일 수 있는 근본적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처벌을 강화한다고 능사가 아니라는 점에서 소년법 폐지는 물론이고 소년법 개정에도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최근 전체적인 청소년 범죄는 10년 전보다 폭발적으로 증가하기보다는 줄어드는 추세에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또 살인‧강도‧방화 등 강력범죄는 오히려 줄어들고 성폭력 유형의 강력 범죄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처벌 강화보다는 이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에 대해 고민을 더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이 대검찰청 자료를 분석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소년범은 지난 2009년 11만3,022명에서 2018년 6만6,142명으로 41.5%(4만6,880명) 감소했다. 또 살인‧강도‧방화 등 강력범죄도 2009년 1,608명에서 2018년 336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강력범죄 가운데 성폭력은 2009년 1,574명에서 2018년 3,173명으로 크게 늘었다. 성폭력 범죄자가 증가한 탓에 전체 강력범죄자 수도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실이 대검찰청 자료를 근거로 제공한 '연도별 소년범죄 유형별 현황'이다./그래픽=이현주 기자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실이 대검찰청 자료를 근거로 제공한 '연도별 소년범죄 유형별 현황'이다./그래픽=이현주 기자

◇ “어린 초범자들 교도소 보내면 뭐가 돼서 나올까”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소년 범죄가 현저히 감소하고 있다. 그 중에 유일하게 늘어나는 것은 성범죄다”라고 지적한 뒤 “소년법을 폐지하면 속은 시원할지 모르지만 결과론적으로 대안이 될 수 없다”라고 소년법 폐지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어 “청소년기는 사회적 규범이 내면화되는 굉장히 중요한 발달 단계인데 소년들을 교도소로 보내버리면 교도소에서 반사회적인 인물들을 모델링하면서 살게 될 것이고 결국 어린 초범자들이 성인 상습범이 돼서 교도소에서 나올 것”이라며 “친사회적인 성인이 되도록 해서 돌아와야 하는데 그럴 방법이 교도소 안에 있나”라고 따져 물었다.

이 교수는 촉법소년 나이 조정 등 처벌 강화를 골자로 한 소년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촉법소년 나이를 조정해도 소용 없고 아이들은 더 악화될 것”이라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검거되는 아이들 몇 명 형사처벌을 위해 연령을 낮춰봤자 뭐가 달라질 것인가”라고 강조했다.

이어 “교도소는 교육기관이 아니다”며 “아직은 교육시켜야 할 나이의 청소년들을 처벌 강화해서 교도소로 보내서 15년이든 20년이든 그 안에 있게 하면 뭐가 돼서 나올까”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김광민 부천시 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변호사)은 소년법을 잘 만들어진 법이라고 평가하며 폐지도 개정도 반대 입장을 밝혔다. 김 소장은 “소년법을 차근차근 보면 상당히 잘 만들어진 법이다”며 “폐지는 당연히 반대고 개정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고 밝혔다.

김 소장은 “소년법이 제역할을 못한다면 소년법의 문제가 아니라 소년법에 따라서 나온 결정, 그 결정이 제대로 집행될 환경이 못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법무부에서 운영하는 특수학교인 소년원은 특수학교 기능도 못하고 정원의 150% 정도로 과밀화돼 있다”고 지적했다.

또 “소년 범죄자를 보호관찰 처분을 해도 보호관찰관 1명이 300명에서 400명을 보호관찰하는 실정”이라며 “소년법에 따라 처분을 해도 제대로 집행되지 않기 때문에 효과를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김 소장은 이어 “전체 소년 범죄가 줄어들고 있는데 강력범죄 가운데 성폭력 범죄가 유일하게 증가하고 있다”며 “청소년들의 성범죄가 왜 이런 수준이 됐는지 이 문제는 일반 범죄 시각으로 보면 안되고 별도로 접근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영미 푸른나무재단(구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자문변호사도 “소년법 폐지는 무조건 반대다. 어른의 잣대로 아이들을 바라보면 안된다”며 “아이들을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육성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 소년법인데 어른의 잣대로 ‘너 나쁜 짓을 했으니 넌 벌을 받아야 돼’ 이렇게 하는 것은 정말 무책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촉법소년 나이 조정을 비롯한 처벌 강화를 위한 소년법 개정에 대해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엄벌주의로 가는 것은 맞지 않다”며 “성인 범죄자 못지 않게 못된 아이들이라는 이유로 곧바로 형사처벌을 하기보다는 범죄가 심각한 수준이라면 일단 소년원 2년을 보내고 이후 잘 살아가면 소년법 취지에 맞게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