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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씨네
[인터뷰] 이유미, ‘괜찮은 어른’이 되기 위해
2021. 04. 14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앞날이 더욱 기대되는 배우 이유미. /바로엔터테인먼트 ​
​앞날이 더욱 기대되는 배우 이유미. /바로엔터테인먼트 ​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앳된 외모에 교복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배우 이유미는 올해로 27세가 된, 연기 경력 12년 차 실력파 배우다. 풋풋한 거제 소녀부터 위태로운 가출 청소년까지, 극과 극의 캐릭터를 오가며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 특히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라면 파격 변신도 서슴지 않으며 독보적인 필모그래피를 쌓고 있어 이목을 끈다. 그의 앞날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2009년 CF를 통해 연예계에 데뷔한 이유미는 2010년 영화 ‘황해’로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영화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2013),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2016), ‘능력소녀’(2017), ‘속닥속닥’(2018) 등과 드라마 ‘미래를 보는 소년’(2010~11), ‘20세기 소년소녀’(2017) 등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그는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다채로운 매력을 보여주고 있는데, 드라마 ‘땐뽀걸즈’(2018)에서는 공부는 못하지만 댄스스포츠는 잘하고 싶은 거제 소녀 김도연 역을 맡아 열정적이고 순수한 모습을 뽐냈고, ‘365: 운명을 거스르는 1년’에서는 이미 리셋(reset)한 1년을 반복해 살아가는 리세터 김세린으로 분해 섬세한 감정 연기로 몰입도 높은 열연을 펼쳤다.

영화 ‘박화영’(2018) 속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10대들의 리얼한 생존기를 그려내 화제를 모았던 ‘박화영’에서 이유미는 눈치 없이 해맑은 모습으로 박화영(김가희 분)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세진으로 분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욕설과 흡연 등 파격적인 이미지 변신은 물론, 항상 웃음기를 머금고 귀여운 말투를 가졌지만 화가 나면 무섭게 돌변하는 반전 모습까지 완벽 소화, 호평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3년 만에 ‘박화영’ 이환 감독의 신작 ‘어른들은 몰라요’로 돌아와 기대를 모은다. 전작의 세계관에서 더욱 확장된 캐릭터인 10대 임산부 세진 역을 맡아 한층 성숙된 연기력으로 강렬하고 파격적인 열연을 선보인다. 특히 중심에 서서 안정적으로 극을 이끌며 주연 배우로 가능성을 제대로 입증했다.

개봉에 앞서 <시사위크>와 만난 이유미는 여린 외모 속 단단한 내면을 지닌 배우, 그리고 사람이었다. 여느 또래처럼 밝고 높은 텐션으로 기분 좋은 에너지를 뿜어내다가도, 깊은 고민에서 나온 어른스러운 대답으로 이마를 탁 치게 만들었다.

‘어른들은 몰라요’로 주연배우로서 가능성을 입증한 이유미. /바로엔터테인먼트 ​
‘어른들은 몰라요’로 주연배우로서 가능성을 입증한 이유미. /바로엔터테인먼트 ​

-처음 시나리오를 보고 세진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박화영’에서 세진도 어려웠지만,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가가기 쉬웠던 것 같은데, ‘어른들은 몰라요’ 세진은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컸고 이야기의 깊이도 깊었다. 그래서 처음 봤을 때 쉽게, 바로 (세진에게) 들어갈 수는 없었다. 세진은 대체 왜 이래요?라는 질문에 이환 감독님이 ‘그 나이여서 그래’라고 말했다. 그 답을 들어도 고민이 됐다. 내가 그 나이가 아니고, 어른이라서 그런 건가. 내가 대체 언제 어른이 됐지 생각을 하면서 세진이라는 인물에 대한 호기심이 더 생겼다. 내가 모르니까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더라. 이환 감독님과 많이 이야기를 나눴다. 계속 물어보면서 찾아가고 만들어가고 구체화시켰던 것 같다. 알고 싶고 궁금하고 답을 찾아가고 빠져들면서 자연스럽게 세진이 될 수 있었다.”

-‘박화영’ 세진과 ‘어른들은 몰라요’ 세진은 같은 인물인가.
“이환 감독님이 ‘박화영’ 세진의 캐릭터, 인물의 이미지나 특징만 가져오자고 했다. 실제로 연결되는 지점은 아니지만, 보는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 같다. 생각하는 사람 마음이잖나. ‘박화영’과 이어진다고 생각해도, 크게 중요하진 않다고 생각했다.”

-말투나 텐션, 분위기 등 세진의 특징은 어떻게 잡아나갔는지. 
“시나리오에 세진의 웃음소리나 말투가 정확히 쓰여있었다. 감독님이 바라는 세진의 이미지가 명확하게 잡혀있었다. 나는 거기에 맞춰 잘 따라가고자 했고, 매 순간 상의하고 확인하면서 세진에게 다가갔다.”

-안희연이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더라. 안희연이 연기가 처음이라 더 신경 써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안희연에게) 정말 감사하다.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웃음) (안희연이) 연기를 처음 한다고 해서 배려하기 위해 뭔가 하려고 하진 않았다. 내게도 좋은 배우로 다가왔기 때문에 응원하는 마음이 있었다. 나 역시 많은 에너지를 얻었다. 서로의 눈을 보면서 힘을 얻기도 했다. 촬영 전 워크샵 기간에 이미 친해져서 편한 것도 있었고, 얼굴만 봐도 마음이 안정됐다. 이야기하는 모든 것들이 다 응원으로 다가왔다. 서로 응원하고 믿어주고 그랬다.”

‘어른들은 몰라요’에서 안희연(왼쪽)과 연기 호흡을 맞춘 이유미. /리틀빅픽처스
‘어른들은 몰라요’에서 안희연(왼쪽)과 연기 호흡을 맞춘 이유미. /리틀빅픽처스

-‘뀨’라는 한 글자만으로 대화를 이어가는 장면도 인상 깊었는데, 실제 대본에도 ‘뀨’만 쓰여있었는지.
“나 역시 시나리오 보고 제일 놀란 장면이다. 정말 ‘뀨’만 쓰여있었다. 읽으면서 감독님에게 ‘뀨’로 대화를 해본 적 있냐고 물어봤을 정도다. 도대체 어디에서 ‘뀨’를 본 걸까 싶더라. 충격적이었다. 연기를 해야 하는데 너무 오글거리고 미치겠는 거다. 그런데 감독님이 세진은 그럴 수 있는 아이라고 생각했다더라. 세진의 특징을 더 꽂히게 만들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고 하셔서 열심히 했다”

-세진이 아파서 고통스러워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는 모습에서 그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달되더라. 촬영은 어땠는지.  
“다섯 테이크 정도 간 것 같은데, 첫 테이크를 찍고 모니터를 하는데 이상하게 안 아파 보이는 거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 땀이 뻘뻘 나고 힘은 드는데 왜 화면에서는 그런 느낌이 없지 생각했다. 그렇게 네 테이크를 더 갔는데, 계속 마음에 안 드는 거다. 그때 감독님이 세진의 방을 둘러보는 걸로 시작하는 게 어떻겠냐고 했고, 그래서 방을 둘러봤는데 세진의 것은 아무것도 없는 거다.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곳이었지만, 아이를 위한 것이지 세진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생각을 하니 갑자기 배가 너무 아프고, 목이 시큼 거리고 가슴이 뛰더라. 나는 분명히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고 있는데, 목소리가 안 나오는 거다. 그 촬영을 마치고, 마지막엔 기억이 안 나기도 했다. 다 해내고 나서 오는 쾌감도 있었다. 배우로서 내가 이런 걸 언제 느껴볼 수 있을까,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체력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힘든 작업이었을 것 같은데.
“촬영 끝나고 정말 오래 푹 잤다. 시간을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죽은 듯이 잤다. 아무래도 체력적으로 쌓였던 것 같다. 캐릭터와 일상을 구분하려고 애쓰지 않아서 오히려 (구분이) 잘 되는 것 같다. ‘이제 끝났으니까 내 몸에서 다 나가’ 이런 게 아니라, ‘나가려면 나가고 있으려면 있어라’라는 마음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다 보니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없다. 촬영할 때 근처 고시텔에서 한 달 반 정도 지냈었는데, 그 경험이 내게 많은 자유로움과 여유를 줬다. 좁은 공간인데도 처음으로 혼자만의 공간이 생기다 보니 자유가 느껴져서 세진이 더 가까이 다가오기도 했다. 그 자유가 나의 제약들을 풀어주기도 했다.” 

‘어른들은 몰라요’를 통해 다시 한 번 존재감을 뽐낸 이유미. /리틀빅픽처스
‘어른들은 몰라요’를 통해 다시 한 번 존재감을 뽐낸 이유미. /리틀빅픽처스

-‘제약’이라고 한다면. 
“뭔가 하려고 할 때 끝까지 해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예를 들면, 책을 읽다가 재미없으면 안 읽을 수도 있고 다른 책을 볼 수도 있는데 나는 재미없어도 한 번 펼치면 끝까지 다 봐야 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이런 사소한 것들이 되게 많은데, 세진을 통해 자유로워졌고, 소소한 해방감을 느꼈다. 그전에는 완벽한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런 사람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 내가 불완전한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됐다.”

-본인의 학창 시절과 비교했을 때 세진과 같고 달랐던 점을 꼽자면.
“나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촬영을 다녔다. 큰 역할을 하진 않았지만, 엑스트라도 하고 홈쇼핑이나 공익광고도 했다.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간 것보다 엄마와 촬영장에 다닌 기억이 더 많다. 고등학교도 검정고시로 졸업해서 학창 시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없다. 10대 때부터 사회생활을 열심히 했다. 세진도 사회를 먼저 봤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다른 것 같다. 나는 그 사회에서 여러 어른들을 만나며 바른 방향으로 갔다면, 세진은 처한 상황에 물든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이 작품을 통해 ‘어른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봤을 것 같은데.
“만약 세진 주변에 내가 어른으로서 있었다면 나는 어떤 어른이었을까 고민이 되더라. 영화 속에 나쁜 어른도 있었지만, 또 완전히 나쁘다고 말할 수 없고 완전히 좋은 사람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어른이 나온다. 그래서 뭐가 맞는 건지 판단할 수 없었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어른이었는지 되돌아보게 했는데, 정의를 내리진 못하겠더라. 내가 어떤 어른인지 단정 지을 수 있어야 반성이라도 할 텐데, 도대체 어떤 어른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과거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 내가 어떤 어른이 돼야 할지 고민하기로 했다. 어떤 어른이 돼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나간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은 어른에 가깝게 가는 길이지 않을까 하는 해답 아닌 해답을 내리고, 계속 고민하고 있다.”

-본인의 10대 시절, 주변에 ‘괜찮은 어른’이 있었나.
“엄마였다. 어렸을 때 촬영장에서 만난 어른들은 인간 대 인간으로 다가왔다기보다, 선배나 스태프, 감독님 나보다 높은 사람으로 동등한 상태에서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내 주변에서 가장 좋은 어른이라고 한다면, 우리 부모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엄마는 항상 촬영장에 함께 다녔는데, 정말 대단해 보였다. 이 분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는데, 내가 하고 싶다고 하니까 직접 검색을 하고 오디션 정보를 찾아서 도와주셨다. 온라인 카페에 가입해서 등업을 위해 새벽까지 댓글을 달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멋있었다. 자식을 위해, 자식이 하고 싶은 걸 하게 하기 위해 그렇게까지 해주신다는 게 대단해 보였다. 물론 그 당시에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다시 그때를 떠올려보면 그런 마음이 든다.”

연기 경력 12년 차가 된 이유미. /바로엔터테인먼트
연기 경력 12년 차가 된 이유미. /바로엔터테인먼트

-어린 나이에 일찍 일을 시작함으로 인한 상처도 많았겠다.
“앞서 제약이 많았다고 한 게 어릴 때부터 일을 했기 때문에 생긴 거라고 생각한다. 어린 나이부터 많은 어른, 사회적인 직급을 경험하면서 나는 좋은 사람이어야 하고 착하고 올바른 사람, 완벽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던 것 같다. 그렇게 계속 살다 보니 제약도 계속해서 생겼고, 너무 어렸기 때문에 몸에 습성처럼 남게 됐다. 그런데 이제 진짜 나와 악수를 하기 시작한 것 같다. 첫 만남을 했고, 이제 드디어 피부와 피부가 만난 느낌이다. 나중엔 포옹까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웃음) 나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하고 고민하다 보면 더 많은 제약이 풀리지 않을까 싶다. 나를 사랑하는 법을 조금 더 알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면을 다지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최대한 가만히 있으려고 한다. 처음으로 가만히 있어보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쉬는 날에 꼭 뭔가 했어야 했다.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수 없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지금은 정말 가만히 있어보고 있다. 가만히 있어보니까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사람이더라. 그러면서 내면을 쉬게 해주려고 한다. 안 좋은 생각이 들면 그냥 한다. 받아들이고, 하고 싶을 때까지 한다. 즐거운 상상이 생기면 그것도 계속한다. 오롯이 나를 느껴보는 시간을 갖고 있다.”

-‘어른들을 몰라요’를 통해 관객이 무엇을 가져갔으면 하나.
“내가 영화를 보며 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 것처럼, 관객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으면 좋겠다. 내가 그 질문을 통해 성장하고 생각하는 것들이 생긴 것처럼, 관객들도 성장할 수 있는 영화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