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작품, 관객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기는 배우 엄태구. /넷플릭스
매 작품, 관객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기는 배우 엄태구. /넷플릭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허스키한 목소리에 선 굵은 외모, 강렬한 눈빛까지. 스크린 속 엄태구는 자신의 특징을 영리하게 활용해 독보적인 캐릭터를 완성한다. 반면 스크린 밖 엄태구는 말 한마디 내뱉는 데도 숨 고르기가 필요할 만큼 내성적이고 조용한, ‘반전 매력’의 소유자다. 그래서 매 작품 관객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기는 엄태구의 연기가 더 놀랍고,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2007년 영화 ‘기담’으로 데뷔한 엄태구는 수많은 작품에서 단역과 조연으로 활약하다 2013년 영화 ‘잉투기’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인간중독’(2014), ‘차이나타운’(2015) 등을 통해 선 굵은 연기로 존재감을 드러낸 뒤, 2016년 영화 ‘밀정’에서 일본경찰 하시모토 역을 맡아 대배우 송강호(이정출 역)에게도 밀리지 않는 카리스마를 뽐내며 관객을 사로잡았다.

첫 드라마 주연작 ‘구해줘2’(2019)에서는 트러블 메이커 김민철 역을 맡아 감정의 진폭이 큰 인물을 입체적으로 소화하며 주연배우로서 가능성을 입증했고, 첫 코믹 장르에 도전한 영화 ‘판소리 복서’(2019)에서는 순수한 열정을 지닌 전직 프로복서 병구로 분해 전작과는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줬다.

지난 9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낙원의 밤’(감독 박훈정)에서도 엄태구의 묵직한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다. 모두의 표적이 된 남자 태구로 분해 상업영화 첫 주인공을 맡은 그는 잔인하고 냉혹한 범죄 조직 에이스의 모습부터 모든 것을 잃고 쫓기게 된 인물의 절망과 상심, 불안을 깊은 감정 연기로 소화해냈다. 강렬한 액션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쉽게 잊히지 않는 독보적인 매력을 또 한 번 발휘하며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다.   

영화 ‘낙원의 밤’(감독 박훈정)에서도 엄태구의 묵직한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다. /넷플릭스
영화 ‘낙원의 밤’(감독 박훈정)에서도 엄태구의 묵직한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다. /넷플릭스

최근 진행된 온라인 인터뷰를 통해 <시사위크>와 만난 엄태구는 그 ‘태구’가 이 ‘태구’가 맞나 싶을 정도로,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매력으로 기자를 단숨에 매료시켰다. 질문 하나하나 신중한 답을 내놓으면서도 “답변이 제대로 됐는지 모르겠다”며 수줍게 웃었다. (*이 기사에는 ‘낙원의 밤’에 대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돼있습니다.)

-누아르 장르인데 서정적인 정서가 돋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시나리오를 보면서 또 완성된 작품을 보고 기존 누아르와 다른 ‘낙원의 밤’만의 매력을 느낀 지점이 있나요.
“‘낙원의 밤’만의 매력은 대본 구조가 정통 누아르로 쓰여있는데, 거기에 재연이라는 캐릭터가 들어옴으로 인해 새로움과 신선함을 동시에 겸비했다는 것입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새로운 누아르 작품이라고 생각해서 매력을 느꼈습니다.”

-같은 이름의 캐릭터 태구를 연기한 소감이 궁금하고, 태구라는 인물을 어떻게 바라보고 표현하고자 했는지요.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 다 ‘태구’라고 적혀있어서 신선하고 새로웠고 신기했습니다. 감독님이 나를 생각하고 쓰셨나 했는데, 첫 미팅 때 물어보니 아니라고 하셔서 아니구나 했습니다.(웃음) 태구라는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외형적으로는 9kg 체중을 늘리고, 거칠게 보이게 하기 위해 메이크업을 하지 않았습니다. 립밤도 바르지 않아 입술도 트게 두고, 그 일에 지치고 찌든 모습을 얼굴의 느낌에서 보여주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내적으로는 누나와 조카를 잃은 아픔, 그 감정들을 계속 갖고 있으려고 했습니다. 제주도에서의 촬영에서 마냥 웃거나 마냥 다운되면 안 될 것 같아 감정선을 잡는데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감독님께 그런 부분에 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고 촬영에 임했습니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배우 엄태구. /넷플릭스 ​
선과 악이 공존하는 배우 엄태구. /넷플릭스 ​

-액션 연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액션 준비는 어떻게 했고, 체력적으로 힘들거나 부상은 없었나요. 가장 기억에 남는 액션 연기를 꼽자면요.
“제가 한 장면 중에서는 사우나 신과 차 안에서의 액션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물론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저보다 함께해 준 무술팀이 정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액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그분들을 실제로 터치했을 수 있는데, 그분들은 프로이기 때문에 전혀 터치를 안 하고 액션을 하려고 고생을 정말 많이 하셨습니다. 현장에서 무술팀 분들의 노고가 기억에 참 많이 남습니다. 그리고 전혀 다치지 않았습니다. 안 쓰던 근육을 써서 다음 날 알밴 정도였습니다.”

-사우나 나체 액션 장면도 촬영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저는 맞고 누워있지 않았는데, 상대방 배우들이 습한 곳에 누워서 고생하셨던 모습이 선명히 기억납니다. 그분들은 보호대를 차지도 않고 액션을 하고 고생을 하셨습니다. 저는 민망하기만 했지, 다른 분들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민망하기만 했습니다.”

-재연(전여빈 분)을 향한 태구의 감정은 무엇이라고 해석했는지 궁금합니다. 단기간에 서로를 위해 목숨을 내놓을 정도가 되는데, 태구의 감정선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는지, 어떻게 해석했는지요.
“태구는 전부였던 누나와 조카를 사고로 잃고, 살아갈 힘과 목적성을 잃어버린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재연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를 얻었고, 재연에게서 누나와 조카의 모습이 보여서 조금이라도 더 살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요. 누나와 조카에 대한 죄책감이 재연을 살리기 위한 희생으로 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재연을 통해 누나가 보이기도 하고, 재연을 통해 조카가 보이기도 하고, 벼랑 끝에 있는 재연의 모습이 또 나의 모습 같기도 하고… 동질감과 연민을 느꼈는데, 삼촌의 죽음으로 인해 급속하게 더 크게 느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낙원의 밤’에서 재연을 연기한 전여빈(왼쪽)과 태구로 분한 엄태구. /넷플릭스
‘낙원의 밤’에서 재연을 연기한 전여빈(왼쪽)과 태구로 분한 엄태구. /넷플릭스

-연민, 동질감 외에 사랑도 있었다고 생각하고 연기했나요.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연민과 동질감도 사랑이라고 볼 수 있다면 사랑을 느꼈다고 할 수 있고, 연밀과 동질감을 사랑과 다른 색깔로 생각한다면 사랑보다는 연민과 동질감이 더 크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은 사랑 안에 연민과 동질감이 포함되지 않나 싶은데, 정도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박훈정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요.
“정말 좋고 감사했던 것은 한 신을 찍을 때 ‘무조건 이렇게 해야 돼’가 아니라 배우에게 스스로 열어주셔서 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더 좋은 걸 함께 찾아나가는 모습들이 감사했고, 좋았습니다. 또 현장에서 감명 깊었던 것 중 하나가 그날 찍은 분량을 그날 다 같이 모니터를 보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일을 하면서 처음 겪는 모습이었는데, 그게 너무 좋았습니다. 모두가 다 같이 고생하고 다 같이 모여서 그날의 현장 모니터를 보고 박수치고 고생했다, 수고했다 인사하는데 정말 한 팀이 된 것 같았습니다. 박훈정 감독님이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을 하시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현장에서 기둥, 선장님 같았습니다. 되게 멋있었습니다. 그래서 믿고 의지하고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시고 그랬습니다.”

-전여빈‧차승원‧박호산과의 호흡은요.
“현장 모니터를 볼 때마다 연기한 모습을 보고 깜짝깜짝 놀랄 때가 정말 많았습니다. 대본에서는 재밌는 장면이 아니었어도 배우들을 통해 재밌게 되는 순간이 신기했고, 대단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셨습니다. 차승원 선배님이 에너지 드링크 챙겨주시고 촬영 끝나면 맛있는 것 사주시고, 어느 날은 박호산 선배님이 맛있는 거 사주시고, 또 어떤 날은 감독님이 맛있는 거 사주시고, 다른 날은 이기영 선배님이 맛있는 거 사주셨습니다. 저와 전여빈 배우는 참 많이 얻어먹었습니다.(웃음)”

반전 매력의 소유자 엄태구. /넷플릭스​
반전 매력의 소유자 엄태구. /넷플릭스​

-실제 낯도 많이 가리고 내성적인 성격이라고요. 지금 모습만 봐도 영화 속 태구가 맞나 싶을 정도인데, 본인과 정반대의 인물이나 세고 강렬한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표현하는데 끌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그러게요. 허허. 끌린다기보다 작품이 좋으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정반대에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되는데, 제 안에 있는 나의 여러 모습들을 보게 되는데 좋은 모습도 있고 안 좋은 모습도 있습니다. 현장에서 제 안에 있는 많은 모습들을 꺼내보려고 하기도 하고, 외적으로도 캐릭터에 맞게 준비하려고 합니다. 제 안에 다양한 모습들이 있습니다.(웃음)”

-내성적인 성격이 이 일을 하는 데 있어 힘들게 하는 지점도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나요. 
“되게 많은 시행착오도 있었고, 많은 경험들이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너무 심하게 낯가리고 그런 성격 때문에 이 일과 안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긴장을 많이 해서 현장에 가면 대사도 생각이 안 나고, 얼굴이 덜덜 떨리고 목소리도 작아서 이 일을 하는데 안 맞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변하진 않겠지만, 어떻게든 해보려고 말도 한 마디 더 걸어보고 노력했는데 오히려 더 어색해지더라고요. 그렇게 15년이 넘는 시간이 갔는데, 지금도 인터뷰나 예능에 나갔을 때 긴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매니저한테 내가 어떻게 연기를 하는지 신기하다고 기적 같다고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지금은 예전보다 조금 안정된 것 같습니다. 그것에 가장 영향을 준 건 ‘바퀴 달린 집’이었던 것 같습니다. 선배들과 동료 배우들이 정말 잘 챙겨줬는데, 말도 잘 못하고 그래서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방송이 나간 후 내가 이 일을 하는데 방해될 것 같고 고치고 싶다고 생각한 성격을 좋게 봐주시더라고요. 좋게 보일 수도 있구나 생각이 들면서 스스로 자신감도 얻었고, 굳이 바꾸려고 하지 말고 그냥 최선을 다해서 하자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고마운 프로그램입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나가고 싶습니다.”

-연기를 계속 해올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나요. 어떤 매력을 느껴 배우의 길을 걷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직업적으로 계속 투자하고 열심히 하고 모든 걸 쏟았던 게 이것밖에 없더라고요. 특별히 다른 취미도 없고 잘하는 것도 없어서 끝까지 어떻게든 버티고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막연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계속하면 잘 할 수 있겠지 하는 막연한 믿음. 또 하나는 1, 2년 전 작품을 보면 잘 모르겠는데, 5년 전 10년 전 15년 전 작품을 보면 그래도 그때보다 조금은 느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 위안이 됩니다. 계속 이렇게 열심히 하다 보면 5년 후, 10년 후에는 더 늘 수 있겠단 생각으로 진정성 있게 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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