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공유가 영화 ‘서복’(감독 이용주)으로 관객 앞에 섰다. /매니지먼트 숲
배우 공유가 영화 ‘서복’(감독 이용주)으로 관객 앞에 섰다. /매니지먼트 숲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삶과 죽음, 두려움과 욕망. 철학적이고 심오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에서 배우가 해내야 할 몫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피해 가고 싶었다. 하지만 피할 수 없었다. 영화가 준 ‘물음표’가 가슴에 깊이 박혀 떠나지 않았고, 곱씹고 또 곱씹게 만들었다. 배우 공유가 또 한 번 ‘도전’을 택하게 된 배경이다. 

공유는 지난 15일 극장과 OTT 플랫폼 티빙에 동시 공개된 영화 ‘서복’(감독 이용주)으로 관객 앞에 섰다. 영화 ‘82년생 김지영’(2019) 이후 2년 만의 스크린 행보. 매 작품,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다채로운 모습으로 관객을 사로잡아 온 그는 이번에도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며 이름값을 톡톡히 해낸다. 

‘서복’은 인류 최초의 복제인간 서복을 극비리에 옮기는 생애 마지막 임무를 맡게 된 정보국 요원 기헌(공유 분)이 서복(박보검 분)을 노리는 여러 세력의 추적 속에서 특별한 동행을 하며 예기치 못한 상황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건축학개론’(2012) 이용주 감독이 9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으로, 제작 단계부터 기대를 모았다.

극 중 공유는 전직 정보국 요원 기헌을 연기했다. 기헌은 과거의 사건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안고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인물. 죽음을 앞두고 내일의 삶이 절실한 기헌에게 인류 최초의 복제인간 서복을 안전하게 이동시키라는 임무가 주어지고, 특별한 동행을 시작한다.

공유는 체중을 감량하는 등 외적인 변화를 통해 죽음 앞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기헌의 예민하고 날선 이미지를 완성한 것은 물론, 실감 나는 액션 연기부터 서복을 만나 변화하는 감정선까지 섬세하게 담아내 호평을 얻고 있다. 다소 진부한 설정 탓에 작품을 향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지만, 공유의 호연에는 이견이 없다.

‘서복’에서 다시 한 번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 공유. /매니지먼트 숲
‘서복’에서 다시 한 번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 공유. /매니지먼트 숲

공유는 최근 진행된 온라인 인터뷰에서 <시사위크>와 만나 작품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특히 그는 코로나19 여파로 당초 개봉 일정 보다 늦어진 약 5개월 만에 관객과 만나게 된 것에 “높아진 기대치에 대한 부담을 느낀다”며 솔직한 마음을 털어놔 이목을 끌었다.

-지난해부터 기대작으로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라, 관객의 기대치가 높아져있지 않을까 싶다. 군 입대한 박보검의 부재로 홀로 홍보활동을 하고 있는 것도 부담감이 클 것 같은데.
“부담스럽다. 제때 개봉을 했다면 조금 덜 했을 텐데, 그때 당시 개봉에 맞춰 홍보했고 영화 얘기를 이미 했기 때문에 관객들이 영화에 대해 인지하고 알게 된 시기는 조금 지났다. 그래서 그동안 어떤 기대치가 더 쌓인 것 같아서 부담감이 있다. 박보검이 없어서 외롭긴 하다. 같이 했으면 더 재밌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엔 제안을 거절했다고 들었다. 마음을 바꾼 이유가 있다면.
“영화가 주는 질문, 물음이 계속해서 내 뒤통수를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이었다.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속에 있었나 보다. 그러던 중 이용주 감독님이 다시 적극적으로 연락을 주셨다. 만나서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눴다. 내가 영화를 해석하고 생각했던 방향성과 달랐다면 다시 제안해도 못했을 텐데 감독님이 생각한 방향성과 거의 일치했다. 그래서 내가 해야 하는 작품인가 보다 싶었다.”

-첫 등장부터 기헌의 피폐한 모습과 고통을 호소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체중 감량도 했다고. 어떤 준비를 했는지 궁금하다.
“처음 기헌의 모습을 보고 관객들이 뜨악할 정도로 더 피폐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는데, 감독님이 말렸다. 건강상의 문제도 그렇고 촬영 끝날 때까지 시간이 긴데 무리하지 말라고 오히려 감독님이 스톱을 시켰다. 영화에서 기헌의 전사를 다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에 초반 이미지를 심어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기헌이 느꼈던 혹은 느끼고 있는 고통스러운 나날들이 고스란히 첫 신에서 드러났으면 했다. 체중 감량을 하느라 음식을 자유롭게 먹지 못해 스태프들과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이 없었고, 숙소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는데 그런 점이 기헌의 어둡고 외로운 모습을 보이는데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다. 좋은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촬영 당시 나의 가까운 지인들이나 편한 사람들 앞에서 평소보다 다소 거칠었던 것 같다.”

‘서복’에서 전직 정보국 요원 기헌을 연기한 공유 스틸컷. /CJ ENM
‘서복’에서 전직 정보국 요원 기헌을 연기한 공유 스틸컷. /CJ ENM

-기헌이 과거 트라우마를 갖고 있고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지만, 인물이 가진 배경에 비해 조금은 낙천적인 느낌도 들었다. 캐릭터 톤에 대해서는 어떤 고민을 했나.
“내가 생각한 기헌은 훨씬 어두웠다. 지금의 기헌보다 말수가 적고, 타인을 대하는 자세도 더 무례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사람들과 교류가 안 될 정도로 아웃사이더적인 기헌을 생각했는데, 감독님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동료들과 농담도 자주 하고 라이트한 사람이었는데 시한부 선고를 받고 변화한 인물이라고 설정한 것 같다. 마냥 어둡고 말이 없고 아웃사이더적인 캐릭터는 재미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장단점이 있는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난 다음엔 뭐가 더 낫고 뭐가 더 아니라는 판단은 들지 않았다. 그냥 선택의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촬영하면서 이용주 감독에게 질문을 많이 했다고.
“가장 많이 얘기한 건 앞서 말한 캐릭터의 톤에 대한 부분이었다. 준비하면서 감독님과 많이 대화했던 부분이고, 조금 고집을 부렸던 부분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또 감독님이 대사를 자주 바꾼다. 당일 현장 상황이나 그날의 분위기 혹은 리허설 과정에서 뭔가 걸리는 게 있으면, 배우와 상의해서 대사의 디테일한 부분을 잡아가는 경우가 꽤 많았다. 그래서 질문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대사가 바뀌는 걸 어려워하는 배우는 아닌데, 단어 하나라도 이게 나을까 저게 나을까 질문을 한 것 같다. 남들이 봤을 땐 똑같다고 느낄 수 있으나 어떤 조사를 붙이느냐에 따라 또 다르다.

이용주 감독님의 작품엔 영화 대사 같은 대사가 없다. 좋은 부분도 있었지만 어떤 신에서는 힘들기도 했다. 배우가 대사의 도움을 받을 때가 분명히 있다. 예를 들어 ‘도깨비’ 때 김은숙의 작가의 어떤 대사로 인해 배우가 힘을 다 빼고 뭔가 하지 않아도 채워지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이용주 감독은 영화 속 주인공이 할 법한 대사를 너무 싫어해서 현장에서 많이 수정했다. 생동감 있어 좋았지만, 때로는 대사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서복’에서 호흡을 맞춘 공유(왼쪽)과 박보검. /CJ ENM
‘서복’에서 호흡을 맞춘 공유(왼쪽)과 박보검. /CJ ENM

-서복을 보는 기헌의 감정은 어떻게 해석했는지.
“기헌은 서복을 처음 봤을 때 과학자들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라고 생각했을 거다. 시간이 지나면서 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 아이의 특별한 능력을 목도하게 되고, 점차 실감하긴 하지만 기헌은 서복을 그냥 아이처럼 본 것 같다. 자신이 보호해야 할 존재. 그러다 이 아이가 실험실에서 어떠한 생을 살았는지 듣게 되고 그를 경험하면서 연민이 생긴다. 서복을 탄생시킨 과학자나 다른 무리들과는 다른, 순수한 시선으로 서복을 바라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반면 관객의 시선으로 이 영화를 바라봤을 땐 다른 해석을 하기도 했다. 서복을 신격화시킨 존재라고 생각했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신이 죽음을 앞둔 유약한 인간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는, 그런 관계라는 생각도 들었다.”

-서복이 반복적으로 기헌에게 ‘왜 나를 지키려고 하느냐’는 질문을 한다. 그때마다 기헌의 표정에서 답이 다 달랐다는 게 느껴졌다. 기헌이 어떤 답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연기했나.
“기헌의 표정에서 답이 다 다르게 느껴졌다니 감사하고 다행이다. 비겁한 답일 수 있는데, 그때그때 그 상황에서 본능적인 나의 반응이었던 것 같다. 기헌 또한 정확하게 답을 갖고 표정을 지은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내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싶다. 조금은 더 편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영화의 말미 기헌은 고통 속에 살아왔던 날들과 사뭇 다른 마음이었을 거라는 건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공유. /매니지먼트 숲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공유. /매니지먼트 숲

-시한부인 기헌에게 삶에 대한 절실함은 어디서 온 것이라고 생각했나.
“죽음으로부터 자유롭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기헌에게 삶에 대한 절실함은 본능적인 거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다.”

-박보검과의 호흡은 어땠나.
“인성이 바른 친구라는 생각을 역시 했다. 작업하기 전에도 그렇게 예상했었는데 같이 작업하면서 더더욱 그렇게 느꼈다. 본인이 불편하거나 힘든 내색을 안 하는 친구였고, 집중력 있게 진중하게 연기를 하더라. 흠잡을 데 없었고, 예쁘고 착한 후배였다.”

-만약 영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잡을 것인가.   
“잡을 것 같지 않다. 삶과 죽음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정의 내릴 수 없는 아주 어려운 단어 같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생각과 행동은 제 명이 다하기 전에 후회 없는 삶을 살자는 거다. 그게 지금의 나로서는 최선이 아닌가 생각한다.”

-영화가 인간의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본인은 어떤 욕망을 갖고 있나.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았으면 좋겠다. 왜 서로를 해코지하지 못해 안달인지 모르겠다. 타인을 향한 시기나 질투, 여러 못나고 편협한 감정 때문에 싸우고 관계가 틀어지고 누군가는 상처를 받는다. 유약한 인간들끼리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란 건 알지만, 요즘 아시아인 혐오도 그렇고 이런저런 일을 접하면서 속이 상한다.

미국 영화배우 덴젤 워싱턴이 한 시상식에서 했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편협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다. 멋진 사람들은 그날의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위대한 사람은 아이디어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는 말이었다. 내가 꿈꾸는 세상이다. 아직 모자라고 부족하지만, 적어도 편협한 사람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살 거다. 그게 나의 욕망이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