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한 해에만 길에 버려진 동물, 13만5,000여마리. 우리나라에서 반려동물을 기르는 인구는 1,500만명에 육박하지만, 반려동물 관련 인식 정착과 제도 마련은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시사위크>는 유실·유기동물의 현황을 점검해보고 버려지는 동물의 개체수를 줄일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에 대해 고민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구조 당시 왕발이의 모습. 몸집에 비해 발이 지나치게 크고, 온 몸의 털이 빠져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동물권행동 카라
구조 당시 왕발이의 모습. 몸집에 비해 발이 지나치게 크고, 온 몸의 털이 빠져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동물권행동 카라

시사위크|파주=남빛하늘 기자  지금으로부터 1년여 전 4월의 어느 봄날. 새끼 강아지 한 마리가 경기도 파주시 한 개울가에 버려졌다. 당시 목격자가 보고 들은 것은 ‘서울 넘버를 단 차량’과 ‘강아지 비명 소리’ 뿐이다.

목격자에 따르면 도로 아래 개울가에 버려진 강아지는 비명을 지르며 땅 위로 올라가려 발버둥 쳤지만, 주인이 탄 차량은 이미 떠나고 있었다. 강아지는 그렇게 서울에서 파주로 ‘원정 유기’ 당했다.

◇ 왕발이의 계절은 어디쯤일까

이후 강아지는 마을 이장님의 보살핌을 받다가, 동물권 행동 단체인 ‘카라(KARA)’의 구조로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소재 ‘카라 더봄센터(이하 더봄센터)’에 입소했다. 구조 당시 발이 몸집에 비해 지나치게 컸던 강아지에게 카라 활동가들은 ‘왕발’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태어난지 3~4개월 밖에 되지 않았던 왕발이의 발이 지나치게 컸던 이유는, 알고 보니 홍역의 후유증일 가능성이 높았다. 또 모낭충으로 온 몸의 털이 다 빠지고, 피부가 갈라져 있었다. 몸이 가려운 와중에도 왕발이는 사람과 눈을 맞추며 사람에게 손길을 요청할 만큼 사람을 좋아했다고 한다.

지난 4월 7일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소재 ‘카라 더봄센터’에서 왕발이를 만났다. /사진=남빛하늘 기자
지난 4월 7일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소재 ‘카라 더봄센터’에서 왕발이를 만났다. /사진=남빛하늘 기자

그로부터 1여년이 흐른 지난 4월 8일, 기자는 더봄센터에서 왕발이를 만났다. 왕발이는 어엿한 성견으로 자라 있었다. 축 쳐져 있던 양 귀는 세모 모양으로 쫑긋 섰고, 네 다리는 길고 곧게 뻗어 있었다. 더봄센터 내 동물병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약욕을 하는 등 꾸준히 치료한 결과, 모낭충도 깨끗하게 나았다.

왕발이 전담 활동가와 함께 더봄센터 내에 산책길을 거닐었다. 왕발이는 활발한 성격 탓에 큰 몸을 흔들며 이리 저리 움직이려 했지만, “왕발이, 앉아!”하면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앉아 간식을 기다렸다. 오래 기다리는 건 어려웠는지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했지만, 사람과 눈 맞추고 소통하는 모습이 참 기특했다.

활동가가 “앉아!”라고 하자,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앉아 간식을 기다리고 있는 왕발이의 모습. /사진=남빛하늘 기자
활동가가 “왕발이, 앉아!”라고 하자,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앉아 간식을 기다리고 있는 왕발이의 모습. /사진=남빛하늘 기자

왕발이는 산책 중인 다른 강아지 친구들을 만날 때면 꼬리를 있는 힘껏 흔들며 반가움을 표현했고, 길목에서 마주친 다른 활동가에게 애교를 부리며 간식을 얻어내기도 했다. 또 대부분의 강아지들이 무서워하는 엘리베이터를 왕발이는 늠름하게 타고 내렸다.

이곳 더봄센터에는 200여마리의 강아지가 카라의 보호를 받고 있다. 왕발이는 유기의 아픔이 있었음에도 사람에 대한 친화도·사회성이 뛰어나지만, 이 외에 강아지들은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고 한다. 카라 관계자는 “더봄센터에서 지내는 아이들은 방치나 학대 속에서 구조돼 낯선 사람이 오면 짖고 흥분해서 싸우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한편 왕발이는 더봄센터에 입소한지 두 달 정도 됐을 무렵, 기적처럼 새 가족을 만났었다. 하지만 이후 몇달 뒤 입양자의 갑작스런 건강상의 문제로 인해 다시 더봄센터로 돌아왔다고 한다. 왕발이는 두 차례의 아픔을 딛고 다시 한 번 평생 함께 할 가족을 기다리고 있다.

왕발이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지하철역으로 가는 택시에 탔다. “저기가 뭐하는 곳입니까”라고 묻는 택시 기사에게 “버려진 강아지와 고양이를 보호하는 곳”이라고 답했다. 택시 기사는 한참을 운전만 하다 말했다. “(강아지 또는 고양이를) 데리고 왔으면 끝까지 책임져야지, 왜 버리나!”

택시 차창 밖으로 새하얗게 만개한 벚꽃나무들이 눈 앞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서울은 이미 벚꽃이 다 지고 떨어졌는데, 파주는 이제 막 봄이 시작된 듯 했다. 왕발이의 계절은 어디쯤에 머물러 있을까. 아직까지 개울가에 버려졌던 그날, 4월의 봄일까. 생각하다 문득 1년여 전 왕발이를 버린 당신에게 묻고 싶어졌다. “왕발이 버린 그날, 밤새 안녕히 주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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